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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Jul 16. 2021

친애하는 그대들에게

제42회 근로자문화예술제... 에 출품을 하지 못한 글

이것은 고백이다.

지난 십여 년 나와 함께 일해 준 동료들에게 이 글을 선사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음반을 팔았다. 오프라인 매장은 아니고,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공식적인 첫 직장으로 입사할 당시는 벤처 붐 속에 인터넷 서점이 걸음마 단계였다. 오죽하면 합격 소식을 전하고 회사 이름을 말했을 때, 인터넷을 잘 모르던 엄마는 딸이 집집마다 다니며 책을 팔아야 하냐고 걱정을 하셨다.

그 책들이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는 회사에서 작은 구멍가게 느낌으로 음반 판매를 담당했다. 직종으로는 ‘MD’에 속하지만 직접 상품을 기획하기보다 음반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을 웹에 전시하고, 실물을 입고 후 출고시키는 과정의 책임자 정도 되겠다. 가장 중요한 상품 발주, 매출 관리, 상품과 연계된 이벤트 진행까지. 예를 들면 이렇다.

‘방탄소년단(BTS)’의 새 음반이 나오게 되면 발매일 전에 예약판매 및 이벤트를 오픈하고 고객 주문을 받는다. 직거래처와 물량을 협의하고 입고하면 최대한 빠른 출고가 관건이다. 고객은, 특히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새 창작물을 기다리는 팬심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까. 회사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졌고 음반 부서도 커 나갔다. 새 음반의 첫 입고 물량도 점점 늘어났다. 그때마다 물류센터에 상품이 잘 도착하고, 신속하게 문제없이 배송되고, 그 결과로 고객 클레임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20대 중반에 입사하여 본사 MD 자격으로 거대한 물류센터에 처음 갔던 날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제일 큰 서점보다 많은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건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매일 상품이 들어오고 지정된 구역별로 진열되며 집책(피킹) 과정을 통해 그날의 출고 물량을 쳐내야 하는 나날들. 당시의 어린 마음으로 물류라는 곳은 굉장히 남성적인 세계였다. 대형 화물차가 드나들고, 지게차가 수많은 물량을 이동시킨다. 거칠고, 몸을 쓰며, 그만큼 힘이 필요하다. 육체와 권력의 힘은 당연하게도 강력한 수직 구조의 조직을 만든다. 물류의 책임자나 중간 관리자는 대부분 남자였다. 간혹 스피커의 우렁찬 목소리에 따라 일사불란한 분위기는 군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세계 속의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방인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물류 사람들이 어려웠다. 대부분의 일처리가 도서 쪽에 맞추어진 시스템인 데다, 어린 여자애가 이런저런 요청을 하는 게 왠지 그들에겐 마뜩잖을 것 같았다. 또 음반 상품별로 특이사항이 많아 자잘한 요청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물류는 내 편이 아닌 것만 같았다. 왜 매출을 내는 나를 이렇게나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 울컥하던 날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연차가 올라갈수록 내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들과 싸우기보다 지혜롭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배워갔을 터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퇴사를 하는 즈음까지도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나는 마흔 살을 기점으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 4년을 쉬었다.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지만, 경제적인 활동으로 수입을 벌지도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아 내 살 길은 나 홀로 책임져야 한다.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은 계속 사라져 갔다. 여러모로 사업을 구상해 보기도 했으나, 당장은 월급이 필요했다. 십 년이 넘는 온라인 쇼핑 MD 경력, 또 그만큼 많아져 버린 나이. 내가 새로 출근을 할 곳은 거의 없었다. 주부는 아니지만, ‘주부사원 가능’한 고객센터와 물류센터 일을 몇 군데 지원하고 면접도 보았다. 그러다 잘 나가는 새벽배송 업체의 물류센터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반갑고도 두려운 물류.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전에 다루었던 음반 상품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 식품 등의 새로운 상품군. 나의 입사와 동시에 새로 오픈을 하는 신규 물류센터. 낯선 만큼 새로운 일을 배우게 된다는 설렘에 용기를 냈다. 그 무엇이 펼쳐지든 일단은 입사를 했고 계약직으로나마 사원이 되었다. 이전에 내가 일하던 환경, 급여, 직책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20대부터 60대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재고를 관리하는 팀에 모였다.    

  

아직 두터운 패딩을 벗지 못한 2월, 세밑 추위가 가시지 않은 물류센터의 공기는 차가웠다. 입사 첫날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쇳덩이 같은 안전화부터 받았다. 높게 적치되어 있는 팔레트 위 물건들, 몇십 대가 오가는 지게차, 날것 그대로의 건물 구조물까지 자칫하다가는 몸이 다칠 수도 있는 작업 현장. 이후 오리엔테이션과 안전 교육 등을 거치며 기분이 이상했다.

‘아, 내가 정말‘현장’이라는 곳에 있구나.’

사실 첫날은 교육 시간이 많아 현장 경험이 거의 없었음에도,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이 다 신기할 정도였다. 머리가 희끗한 분부터 젊은이까지 몸을 써가며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의 업무는 상품들을 직접 만지고 개수하면서 재고의 수량을 파악하는 일이다. 식품이 많다 보니 유통기한 별로 폐기 처리를 하며 고객에게 상품이 나가지 못하도록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첫날이던 그날, 오전 10시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하던 순간. 해는 져서 어두워지고 30분 정도 타고 가야 하는 경기도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다. 첫 출근의 긴장이 확 풀려 그랬는지 머리통 안쪽이 지끈거리고 뒷목이 뻣뻣해져 왔다. 머리와 어깨를 의자에 기대어 창문을 바라봤을 때, 묘하게 울컥해서 하마터면 펑펑 눈물을 쏟을 뻔했다.

지난 십여 년간 나 혼자 일하며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20대의 어린 내가 마흔에 이르기까지, 나의 상품들을 직접 나르고 포장했을 수많은 이의 손, 그 넓은 센터를 온종일 걸었을 그들의 발이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를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일했던 그 손과 발이 나와 함께 일했기에, 나는 매출 목표를 달성하고 인센티브를 받았으며 승진을 했다. 알바인 단기 사원부터 주부 사원, 계약직 혹은 무기계약에 이르렀을, 어쩌면 그러다 다칠 뻔하거나 다치기도 했을, 야근과 연장을 감내했을 내가 다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얼굴을 생각했다. 그 고귀한 노동과 땀방울이 참으로 귀하다. 감사하다.      


얼마 전 나는 6개월 재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느덧 물류는 물류만의 방식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내 몸으로 익혔다. 곧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라는데 내가 배정받은 온도대가 ‘상온’이므로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땀을 흠뻑 쏟는다. 그럼에도 내 손으로 박스를 나르고 내 눈으로 상품을 확인한다. 이제는 제법 가벼워진 안전화를 꼭 조여 매고 하루 2만 보 가까이 센터를 걷고 또 걷는다. 상온뿐 아니라 거대한 냉장고와 냉동고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함께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동이, 모든 현장에서의 일들이 다 의미가 있음을. 과거의, 또 지금의 내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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