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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Jul 12. 2020

실패는 아닙니다만,

비혼입니다 :)


누구에게나 해볼 수 ‘있는’ 일과 해볼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십여 년 전 강원도에서 막국수를 먹다 목구멍이 뻣뻣해지고 호흡 곤란이 왔을 때 너무 무서웠다. 나는 ‘메밀’ 알레르기가 있다. 한정식 식당의 메밀차, 재래시장의 메밀전병, 제주 음식인 몸국 등등 먹어볼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생에서는. 통일이 된다 해도 북쪽 맛집에서 평양냉면을 시도조차 해볼 수 없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에는 ‘실패’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해볼 수 있는 일에는 다르다. 대부분이 하는 일이라면, 그러지 못한 이에게 쉽사리 실패라 이름 붙인다. 마흔 살을 넘기고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내게, 누군가는 의아해하며 실패의 프레임을 뒤집어씌운다. 하긴 전에 나부터도 그러했다. 40대 전까지 어떻게든 하루빨리 연인을 만들고 시집을 가고 엄마도 돼야,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해볼 수 있는 일이니 당연히 내 차례가 올 거라 믿었다.      


시간이 쌓이고 조바심은 쑥쑥 자라서 나는 어두운 그늘로 내몰리고 말았다. 선 본 남자의 경제력에 혹해서 불안 밖으로  나를 꺼내 주기만 매달리다 크게 엎어진 적도 있다. 그 당시의 나에겐 처참한 실패였다. 상처 투성이로 바닥까지 추락한 나는 영원히 건져 올려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바보처럼 엉엉 울었다.  



             


요즘도 여전히 나를 처음으로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 가면 한 마디씩 묻곤 한다.

“왜, 결혼 안 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 나이 여성에게 으레 있어야 할 것 같은 남편과 아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안타까움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마흔 하고도 얼마의 세월이 더 흐른 뒤, 나는 이제는 활짝 미소를 전하며 답한다.

“비혼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전송하는 깊은 인정의 스마일 :) 이모티콘이기도 하다. 유일하고 특별한 내 삶은 당신의 우려만큼 실패하지 않았으며, 그저 선택의 문제인 결혼을 거부한다는 느낌표 ! 이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고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상태 메시지이다.

    

앞으로 더 나이를 먹으면서 ‘1인분의 삶’을 계속 혼자 챙겨야 한다는 것이 가끔은 막막하고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온 정성을 다해 식구들을 보살피책임감 과연 어떤 것일지 궁금도 하다. 다 경험하지 못한다 해서 이해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해볼 수 있는 선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세상에 사랑을 남기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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