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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ug 21. 2019

언젠가는 엄마도, 엄마의 삼계탕도 사라진다.

2019 우리家한식 공모전 응모작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에 삼계탕도 포함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신기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삼계탕은 집에서 엄마가 끓여준 것만 먹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고향이 강화도인 까닭에 인삼은 어련히 좋은 것을 구했을 터. 두꺼운 부분보다 얇은 뿌리의 쓴맛이 강한 삼을, 나는 어려서부터 곧잘 먹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것마저 골라내는 남동생과 달리 칭찬을 받아 그랬는지 더 신나서 먹었던 것 같다. 크고 나서는 인삼이 달게 느껴지고, 나이를 먹었구나 싶어지면서 삼계탕은 정말 약이라고 생각한다.


한여름 삼복이 다 지나기 전에 삼계탕을 먹는 일은 명절보다 더 잘 지켜온 우리 집 연중행사다. 복날이 아니어도 먹긴 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삼계탕 없이 여름을 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국어사전 속 보양식이라는 설명보다 내 몸이 먼저 입증한다. 매년 더위 안 먹고 냉방병 한번 없이 잘 지낸 걸 보면 다 엄마표 삼계탕 덕분이리라. 


삼계탕 일정이 잡히면 엄마는 전날 저녁부터 솥에 황기를 팔팔 끓여 황금빛 물을 만든다. 재래시장 몇십 년 된 단골 가게에서 어린 생닭을 구해온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속을 꽉 채운 닭을 끓이기 시작한다. 몇 시간씩 불을 때는 데다, 머리는 뜨겁고 배는 차가운 엄마 체질 때문에 더 더워하는 엄마를 걱정하다 보면 어느새 완성된다. 찬장에서 꺼내 헹궈놓은, 국대접보다 훨씬 큰 삼계탕 전용 사기그릇. 그 안에 한 마리씩 예쁘게 다리를 꼬고 앉은 닭 위로 핀 조명을 비추듯 국물을 끼얹는다.    


무대 위 양쪽 커튼을 열듯 닭 배 속을 가르고 대추부터 쏙쏙 골라낸다. 독소를 흡수한다 해서 대추는 먹지 않고 사라지는 엑스트라가 된 지 오래다. 덩어리진 찹쌀밥을 꺼내어 객석을 채우듯 걸쭉한 국물에 풀어놓는다. 제철에 사다 저장해둔 옥광 밤이 데구루루. 주인공처럼 강렬한 향을 뽐내며 등장하는 인삼 무리. 누그러져 생기다 만듯한 통마늘이 어슬렁거린다. 우연히 내 사랑 닭똥집을 카메오로 만나는 날은 저절로 박수가 나온다. 다 됐고, 일단 세트 같은 닭부터 해체를 시작한다. 우정 출연 반찬은 이 계절에 딱 얼음 동동 오이지와 짠지, 빨간 고추장 푹 찍은 풋고추다.     


올해도 말복이 되기 전에 엄마 집에서 동생네 식구들과 한 상에 둘러앉았다. 식탁은 좁아서 항상 거실에 널찍한 교자상을 편다. 칠순을 바라보는 아빠와 엄마, 남동생과 올케, 초등학생 큰 조카와 올케 품에 안긴 작은 조카까지. 뜨끈한 삼계탕 한 대접씩 앞에 놓고 엄마의 사랑을 파헤쳐 입속으로 넣는다. 뜨거운 희생을 꿀꺽 삼킨다.      


여전히 인삼을 골라내며 특히 오이를 안 먹는 동생에게, 오이지 앞에서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내 이유식에는 고기며 온갖 채소를 몇 쪽씩 넣어 끓인 물에 밥을 말아 먹여서 딸은 골고루 잘 먹는 것 같다고. 두 살 아래 남동생 때는 소고기 수프라는 게 처음 나왔는데 간편하니까 그것만 먹여서 편식한다는 거다. 뭔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지만, 또 어쩐지 논리가 맞는 것 같은, 매번 반복되는 엄마 말씀.     


엄마 또 시작이냐며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넘긴다. 엄마 말은 들으면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니까, 그렇고말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를 지극정성으로 먹인 엄마의 음식이, 곧 지금의 나다. 엄마의 삼계탕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다가올 그 어느 날, 엄마도 사라지고 엄마의 삼계탕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다. 뜨겁게 데어서 심장이 통째로 아파온다.    


나에겐 아직 아이가 없다. 엄마 손맛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훗날 아이처럼 되어버릴 내 엄마를 정성껏 대접하기 위해, 그리고 또 언젠가 홀로 남을 나를 잘 먹이기 위해, 나도 서서히 삼계탕을 끓이기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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