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경’ 그리고 ‘유산’

대사&지문

by 일무

처음 쓴 단편 시나리오에서 ‘완경’(‘폐경’이라는 말 대신 사용함)을 다뤄야 했기에 공부가 필요했다. 내 딴에는 인터뷰라 생각하고 엄마와 이모, 선배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깊은 속내를 듣지는 못했다. 이미 그 시기를 넘긴 지 오래여서, 자녀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지나가기도 해서 월척 같은 생생한 경험을 기대한 계획은 실패했다. 더구나 미혼 여성의 완경을 써야 했기에, 대상자가 거의 없고 아무리 친해도 구체적인 질문을 건네기 어려웠다.

갱년기라 이름 붙인 이때의 여러 증상과 치료 방법도 사실상 출산 여성을 기준으로 한 자료였다. 아쉬운 대로 책과 인터넷을 더 뒤져보다가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평균적으로 50세 전후일 뿐, 개인에 따라 그 시기를 예측할 수가 없는 완경. 어리석게도 수명이 길어지니 막연히 출산 가능 시기도 길어질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가만, 내 나이도... 어쩌면 내 인생에 임신이, 출산이, 아이가 없을 수 있겠구나.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결혼은 어떻게든 한 번은 해볼 수 있다. 서류상으로 만도 가능하고, 노년이 돼서도 짝만 있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되는 경험을 못한 채 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건 여대를 졸업해서 남녀공학 캠퍼스를 모른다는 아쉬움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번 생에서 여대생으로 20대를 보낸 것, 뭐 후회는 없다. 14년 넘게 한 직장에서 청춘을 바친 것,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내 자식이 없고,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다는 건 쓸쓸하고 억울해지는 이 기분, 왜일까. 그래서 이 상태로 완경을 맞게 되었을 때, 나의 지난 인생이 막 후회되고 돌이키고 싶을까 봐 겁이 나는 거다. 막상, 지금 낳는다고 해도 두렵고 싫을 거면서.


어쨌든 도저히 모르겠는 그 감정을 코앞에서 들여다봐야 했다. 주인공이 산부인과에서 완경 이야기를 듣게 되는 신을 쓰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도 없는 그 어마어마한 느낌이 어떤 것일지는 여전히 모른 채. 그저 그녀와 함께 울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나서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준비 또한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룹으로 라이프 코칭을 함께하는 이들과 전주 여행을 갔을 때, 코치님은 나의 이런 혼란함에 ‘유산(Legacy)’이란 단어를 툭 던져주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식을 유산으로 남기고 세상을 뜨는데, 아무리 지지고 볶고 해도 그 자녀의, 후손의 기억 속에서만 부모는 존재하게 된다. 두고 갈 자식이 없게 될 나라면, 나는 무엇을 나의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가. 나는 그때 이후로 나만의 Legacy를 찾고 만들어두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완경 공부를 시작할 즈음이었나, 세이브 더 칠드런에서 매년 기부받는 모자 뜨기를 처음 해봤다. 생후 한 달 내 사망하는 신생아 260만 명. 아기에게 털모자를 씌워 체온을 2도만 높여도 저체온인 신생아를 살릴 수 있다고 한다. 동영상도 보고 뜨개질 잘하는 엄마한테 검사도 받으면서 손바닥만 한 모자 2개를 완성했다. 조물조물 찬물로 빨고 잘 말린 후 모자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날아가서, 귀한 그 아가를 꼭 살려달라고.

회사 사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을 때는 들을 일이 없던 앰뷸런스 소리를 길에서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치르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사이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속으로 중얼거린다.

‘부디 무사하시길... 당신의 건강을 기도합니다.’

알지 못하는 이의 생명을 위해 간절히 비는 그 마음을 계속 실천해보려 한다.


오래전 <집사부일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신애라 편을 보다가 운 적이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기질 테스트를 통해 출연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또 울컥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었다. 다음날 그녀는 자신의 입양한 아이들, 미국에 거주 중인 또 다른 입양 가족들과 소풍을 가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 공부하는 그녀의, 입양에 대한 가치관을 처음 접하면서 내 가슴 한 구석이 몽글몽글했다. 무언가 다른 방식의 엄마도 존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속의 임수정 배우를 인상 깊게 본 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 <당신의 부탁>을 최근에 찾아보았다. 32살인 여주인공이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갑자기 남편의 16살 아들을 떠맡아 함께 살아가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는 핏줄이나 모성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저 아픔 있는 두 사람이 담담히 서로에게 기대는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 스스로를 지켜가면서도 한 사람의 엄마가 되어가는 그녀를 보며,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모양새의 엄마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잘 모른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인지, 엄마가 될 수 없다면 그게 정말 한없이 슬픈 일일지. 내 의지가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계속 덤덤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어쩌면 엄마가 아닌 상황을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나의 완경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 시기를 잘 보내고 완숙한 여인이 된다면, 내가 남길 유산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생각을 이어갈 것이다. 나의 어떤 것으로든 남기고 떠날 그 무엇, 그것으로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따스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