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순환 속으로 사라진 큰이모

대사&지문

by 일무

지난 추석 우리 집 풍경은 그동안 지내온 모습과 달랐다. 명절이면 자식에게 음식 해 먹이느라 여전히 등골 빠지는 엄마와 이모들이 각자의 집을 빠져나갔다. 전날까지 엄마가 준비해 놓은 양념 LA 갈비, 소고기 뭇국 등에 밥만 새로 해서 추석 아침을 먹었다. 엄마 없이, 그렇게 추석 당일 두 끼를 올케와 내가 차리고 치웠다. 50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그녀들이 여느 명절과 다르게 보낸 그날.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할머니는 딸 아홉을 낳았다. 큰이모의 첫 딸인 사촌언니와 할머니의 마지막 딸인 막내 이모는 동갑이다. 그러니까 외할머니는 큰 딸과 같은 시기까지도 그 커다란 배를 끌어안고 있던 것이다. 막내가 끝내 또 딸임을 알게 된 순간,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뭐든 또 낳아보고 싶었다 했다. 그놈의 고추가, 아들이 어쩜 그리도 안 나올까. 그 시절 아들 못 낳는 시집살이의 고통을 토해내고 들이마시며, 그래도 할머니는 버텼을 것이다. 그 이쁜 딸들을 먹이고 입히고 시집보내야 했을 테니. 결국 막내 이모 다음으로,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 외삼촌이 태어났다. 외할머니와 그녀의 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나는 다 모른다. 청소년 시절에야 외삼촌의 비밀을 알았고, 나이 들어 그녀들을 생각하면 가끔 뜨거운 게 올라올 때가 있다.


딸 아홉에 사위 일곱, 그들의 자녀 둘셋씩. 외할아버지의 친척과 손님까지 명절이면 상이 몇 개씩 차려진다. 그 많은 음식이 생겨났다 사라지고 치우는 데도 여자가 많다 보니 후딱 처리된다. 외할아버지와 이모부들이 있던 남자 상, 나이대도 참 다양했던 우리 아이들 상, 그리고 이모들이 앉았던 여자 상. 성별이 남자라면 절대 부엌에 갈 일은 없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TV나 신문을 보고, 화투를 치거나 술을 마시고, 별다른 대화나 화목함도 없이 쭈뼛쭈뼛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이모들은 주방에서 삼삼오오 일하거나, 작은방에서 교대로 누워 쉬고 과일을 깎아먹거나 했다. 애들은 애들끼리 밖에 나가 놀고, 젊은 이모들이 섞여 윷놀이 같은 걸 했다.


이모가 여덟이어서, 또 그 이모들이 낳은 딸들까지, 온통 다채로운 여성으로 채워진 내 인생의 장면들은 선물 그 자체다. 사실 선물이기는 한데, 이게 조금 애매하긴 하다. 빛바랜 사진처럼, 레트로가 대세인 카페의 낡고 검은 자개농 문짝 같달까. 옛날에는 모두가 그러려니 저런 게 여자의 삶인가 보다 하면서 그 희생에 그저 감사했다. 아, 지금도 아주 많이 감사하다. 그들의 내리사랑, 자식을 끔찍이 여기는 삶의 기준, 섬기고 베푸는 부지런함 등 여인의 미덕이 되는 그녀의 일생.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여든이었던 큰이모가 위대한 순환 속으로 사라졌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후, 다른 느낌의 쓸쓸함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두렵다. 언젠가는 그들이 태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내 엄마까지 포함해 사라질 여자들. 추석 당일 발인을 위해, 남편과 자식을 두고 집을 나섰던 그녀들. 어쩌면 처음으로 혼자였을 그녀들의 명절에 작은 위로가 깃들기를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들을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기억하는 일뿐이다.
그것이 내가 받은 수많은 선물에 대한 아주 작은, 유일한 답례다.


큰이모의 끝은 어쩌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종말을 예고한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가부장제와 차별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낸, 끝내 버텨낸 여성들. 이기적 이게도 나는 그녀들의 희생과 사랑을 먹고 자랐음에도 그녀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우대나 특혜를 바라는 여성도, 피해 의식에 쩔어 상처 받아 몸을 낮추는 여성도 아니다. 모순 가득한 구조와 악습을 나의 배경에서 걷어내 버리고, 그저 한 인간으로 나를 지켜내며, 또렷하게 살아가고 싶다.

일단 돌아오는 명절부터 달라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행동하자,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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