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글.
나의 열아홉의 시작은 어쩌면 그 날 아침 등교길 무수히 떨어져 붉은 길을 이룬 새빨간 벚나무 잎사귀 중 하나를 집어들었던 때 부터 일지도 모른다. 이슬을 촉촉히 머금은 그 숨쉬는 듯한 붉음이 탐이 나서 가장 넓고 매끄러운 것을 골라 친구에게 엽서를 한 장 쓰고 싶었다. 그 때 저 멀리까지 아스팔트 위에 뒹구는 붉음들은 사실 사월 어느 한때 연초록색 이파리들의 소리없는 죽음이었을테니.
딱딱한 벚나무로 줄지어진 등교길에 서서 입김을 하얗게 뱉어내던 그 때 나는 세상에 대해 신중한 편이 아니었다. 초콜릿 상자의 가지런한 초콜릿들을 집어지는 대로 꺼내었다. 방문을 닫고 어떤 빛도 허락하지 않은 채 노래를 틀어 놓고 춤을 추었다. 항상 두 볼과 입을 발갛게 물들였지만 눈을 충혈시키는 것에는 욕심내지 않았다. 연필과 향수를 훔치고, 이어폰을 훔쳤다. 항상 중력에 잠이 들었고, 깨어 있을 때에는 관성에 몸을 맡겼다. 단풍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질 수 있게 된 세상이 유년시절의 그것과 같기를 바랬다.
그렇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오른쪽 손의 중지가 서서히 약지에 기댄 듯 휘어가고 있다는 것, 이리저리 쓸린 팔꿈치가 진한 나무색이 되어 간다는 것, 단순히 맨 끝 줄의 책장에 꽂혀 있는 세계문학전집을 전부 읽어보려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는 건 의아해할 만한 생각이라는 것,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먼저 자신의 노란 속부터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 뭐 등등.
11월 달력을 넘기자마자 가을은 손아귀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날씨는 손바닥의 아주 조금 남은 모래가루도 훌훌 털어버린 듯이 이내 첫눈으로 거리를 마구 휘저었다. 누군가가 구름에 미친듯이 총질을 해서 얼음파편이 공중에 부유하는 듯했다. 차가운 공기는 거리의 풍경뿐만 아니라 내 살갗까지도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그 때문인지 요즘 들어 유난히 손목에서 새끼손가락 끄트머리까지 보이는 혈관이 얼어터질 듯 시퍼렇다고 생각했다. 내 피부는 얇아서 혈관이 잘 비쳐보였으므로 가끔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그걸 관찰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게 없었다. 내 몸 안에서 제멋대로 푸른 가지를 친 나무가 살갗에 들러붙어 육체를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서 맥박이
. 탁
. 탁
. 탁
. 탁
푸른 생선처럼 고동치는 소리를 지그시 눈을 감은 채로 듣는 것. 그러면 내 기억 저편으로부터 자꾸만 잊을 만한 사람들의 얼굴이 서서히 수면 위로 겹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려던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는데. 그저 수면에 내 얼굴을 흐릿하게나마 비춰 보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잔으로 정성들여 물을 떠서 비를 뿌리고 싶었을 뿐인데. 고삼 후기가 아니라, 나는 자꾸 열아홉 후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