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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랑 Nov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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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의 자기 상실이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이 세상에서 아주 조용히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손실도 이렇게 조용하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

그 애는 저에게서 그렇게 아무 숨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애가 떠난 후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저는 그 마지막 작별의 속삭임에 피폭된 건지도 모릅니다.

저로 말하자면 그 이후로도 가을이 다시 올 때까지 아주 무탈하게 보냈습니다. 스물한 살인데도 키를 재보면 여전히 항상 키가 크고 있었습니다. 매일 복숭아 아이스티 따위로 배를 채우는데도 그랬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쩐지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게 되었는데 제 머리카락보다도 검고 발바닥이 항상 미지근한 그런 고양이였습니다. 이 커다란 고양이는 되레 흥분하면 제 손을 살짝 깨물고는 했는데 저도 이제는 꽤 뻔뻔해져서 말랑말랑한 예의 그 발바닥을 붙잡고 깨무는 시늉을 하곤 했습니다.

봄날에 저를 어린 강아지만큼이나 기쁘게 해 주었던 벚나무들이 버찌보다도 더 명랑한 빨간 잎을 흔드는 계절이 오기까지 저는 짧은 머리를 다시 조금씩 길렀습니다. 그 밖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언덕 같은 고양이의 이마를 긁어 주거나 저에게 꽃을 사주는 남자애들과 호숫가의 연인들을 따라하기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받는 날이면 커피를 파는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몇 권씩 사모으곤 했습니다. 저는 주로 시집 같은 얇은 책들을 좋아하는데 어딜 가든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영화를 꼬박 챙겨 보았고 여전히 밀크글라스에 커피를 담아 마셨습니다. 일정한 시기마다 책들을 성경처럼 끼고 다녔고 밑줄을 긋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아직 은색 교정기가 어색하고, 소주 맛도 너무 맛이 없고, 안경을 끼면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워서 그만.

그런 사람입니다. 얇은 테 안경에도 상처를 입고 훌쩍훌쩍 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창피한 기분이 들거나 부끄러울 때면 늘 다음 생에는 토끼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로 토끼가 되어서 클로버 언덕을 총총 뛰어다니다가 벌과 나비를 갉아먹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들켜도 입술과 뺨을 붉히지 않고 눈만 벌겋게 충혈시키면 되니까요.

가을 아침 공기 속은 햇살에 잎사귀가 다 비쳐 보일 정도로 맑은데 제 이리저리 모난 마음 모양도 다 비쳐 보이면 어떡하나요. 아무리 두꺼운 스웨터를 입어도 서늘한 아침에 배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듯 괜히 근질근질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공기가 얽혀지는 바람이 한 차례 불면 맨질맨질한 농구코트 바닥은 얼굴보다도 큰 플라타너스 잎으로 덮이고 저는 종아리가 차가워지는 줄도 모르고 거기에 오래도록 앉아서 그 풍경에 물감처럼 뭉그러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또 어느 때에는 종아리 위로 양말을 길게 당겨 신어야 할 만큼 눈이 펑펑 내릴 것이고 체크무늬 목도리를 빙빙 둘러서 외출하지 않으면 안 될 계절도 올 것입니다. 그것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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