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인 중에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인데 영화 감독이신 분이 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으니 동화 창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영화를 한편 소개시켜주셨는데, 트레일러를 보자마자 반해버려서 그 날 당장 아마존에서 구매해서 아이들을 재우고 2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반짝반짝 눈 뜨고 귀를 쫑긋 세운채 밤 12시를 맞이했다. 그 어떤 위기가 닥쳐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성룡, 이연걸, 견자단을 좋아했던 나에게 무협과 사이언스 픽션, 코메디를 결합한 영화라니! 개인 취향을 저격해버린 이 작품은 이미 장르만으로도 10점 만점에 9점을 받아버리고 말았고, 작품을 보고 난 뒤에는 1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다가오는 10월 12일에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저와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은 꼭 보시기를!
(좌) 티저 포스터: 구글 아이 ㅋㅋㅋㅋㅋ (중) 2차 포스터 (우) 국내 포스터
감독을 맡은 두 사람의 대니얼 - 대니얼 콴과 대니얼 쉐이너트 - 은 대니얼스(Daniels)라는 듀오팀으로 창작활동을 함께 해왔다. 2016년에 스위스 아미 맨이라는 첫 장편 영화를 선보여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경력만 말하면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데 트레일러를 보니 해리포터에서 해리로 열연했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시체같은 모습으로 무인도로 떠밀려 오더니 소위 우리들에게는 만능 맥가이버 칼이라 불리는 스위스 아미같은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인간으로 나무를 자르고, 물이 터져나오고, 총알(?)을 발사하는 듯한 어이없는 모습에 또 빵터져버리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오늘밤에 이것도 결제해서 봐야겠다. 흐흐흐.)
ㅋㅋㅋㅋㅋ해리포터 제트스키 ㅋㅋㅋㅋㅋ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대니얼스 감독들은 영화 작업을 하기 전에는 주로 뮤직 비디오를 감독해왔었다. 아무래도 그 덕분에 색감이라던지 앵글부터 의상이나 특수효과들에 이르기까지 조금 기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액션과 사이언스 픽션 장르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수면의 과학' '이터널 선샤인' '무드 인디고'를 선보였던 미쉘 공드리 감독도 좋아하는데 이 감독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걸 보면 앞으로 나는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 영화 감독들을 눈여겨 봐야할 것 같다.
머릿 속 상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해낼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 너무나 대단한데, 내가 유독 더 빠져드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상상이 저 멀리 요정과 마법사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발닿고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인 듯 하다.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로 직역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도 양자경이 열연한 여자 주인공은 나랑 별 다를 바없는 처지이다.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이민 여성. 내가 발딛고 사는 세상이랑 똑같아 보이는 그곳에서 그녀가 선택되고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엿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는 에블린, 매일매일의 내 모습이다.
일상이 깨졌다!
영상이 아닌 글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에서는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데 그도 이렇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닌데 내 마음에 유독 남는 장면 중 하나는 3부작 장편 소설 1Q84에서 주인공인 아오마메가 택시를 타다가 고속도로 중간에 내려 고속도로 벽에 난 입구를 빠져나가 계단을 타고 내려갔더니 우리와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세상, 아오마메가 1Q84라고 명명한 세상으로 통과하는 장면이다. 나는 미국의 외곽지역에 살다보니 고속도로를 지나갈 때가 많은데 그곳은 매일매일 스쳐지나가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하지만 그 곳에 사람이 우뚝 멈춰선다면, 그것만으로 일상이 깨어지고 깨진 틈 사이로 특별함이 피어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도,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도 내가 애정하는 점은 무료해보이는 나의 일상 어딘가 Somewhere에도 특별한 무언가 Something가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증폭시켜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빵터질 정도로 웃기기도 하고 마음 속 어딘가가 찌릿해지는 느낌을 주었던 부분도 이런 기대감에 닿아있다. 주인공인 에블린이 멀티버스에 흩뿌려진 수많은 에블린들의 능력을 빌려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더 없이 특별한 영웅으로 선택받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워낙 아무 능력없이 바닥에 있기 때문이란다 ㅋ너무나도 웃픈 나의 현실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 감독을 하시는 동화 창작 워크숍 동기분이 말씀하시기를 이 작품은 엄청 저예산으로 찍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주다니 너무 고맙다. 나도 이런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넘나들면서, 내 작품을 볼지도 모를 그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현란한 빛은 아니더라도 그와 그녀가 미처 보지 못한 어딘가를 비추어 낼 작은 반짝임이 되기를 소망한다.
*감상 포인트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멀티버스를 넘나든다는 설정 때문에 1인 다중 인격체가 되는 배우들의 연기가 제법 볼 만하다. 어리버리한 모습이다가도 한순간에 카리스마 넘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뿅!하고 변하는 것이 이래서 배우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