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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Apr 10. 2023

문화충격3: 사랑(받은 물건)은 돌아오는 거야

미국의 개인주의 덕분일까

미국에서 사는 동안, 꼼꼼쟁이 신랑을 제외하고,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물건이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일이 한 번씩 있다. 물건을 잃어버린 걸 깨달은 순간마다 다시 찾을 확률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물건은 아주 작았고 우리가 칠칠치 못하게 물건을 흘리고 떠나버린 공간은 아주 넓었기에.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고 혹시 모를 희망의 끈을 붙잡아 분실 신고를 하면 감사하게도 모두 우리에게로 돌아와 주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믿기 힘들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눈앞에 보이는 물건들이 이렇게 증명해 준다.


'사랑(받은 물건)은 돌아오는 거야.'


여기로 오기 전 20년을 살았던 한국에서도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일이 세 번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중 두 녀석은 내 품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강남으로 이사를 간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캐릭터 곰돌이가 그려진 빨간 지갑을 쓰고 있었다. 비싼 건 아니지만 언니가 영국에서 사다 줬던 거라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아끼는 지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지갑이 사라지고 말았다. 큰돈이 들어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그 지갑이 (기적처럼?!)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옛 말에 등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는가. 내 자리에서 대각선에 앉아있던 여자애의 가방 안에 똑같이 생긴 지갑이 나타났다. 그때 나는 지갑 안에 달려있는 태그도 감히 떼지 못하고 쓰고 있었다. 그 친구한테 이거 내 지갑 아니냐고 한번 보자고 말했는데 그 지갑 안에도 태그가 달려있었다. 내가 이유를 말하며 이 지갑은 잃어버린 내 지갑 같다고 말하자 그 친구는 자기도 태그를 떼지 않고 쓴다며(;;;) 이건 자기 지갑이라고 우겨댔다. 내 이름을 적어놓은 게 아니라서 자기 거라고 우기는 뻔뻔한 여자애 앞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던 억울한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썸남과 영화를 보려고 나가려는데 택시에다가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 ㅜㅠ 아이씽!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정신도 딴 데 팔려있어서 그 후 썸이고 나발이고 고등학교 내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탁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던 슬픈 사건의 전말. 당시 내가 아무리 연락을 드려도 택시 기사님은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대한 답장도 주지 않았다. 내 생애 첫 핸드폰은 어디론가로 영원히 사라졌다. 아마도 운전을 아주 잘하는 인기 기사님과 함께. 며칠 내내 손님을 끊임없이 받느라 고등학생의 핸드폰 되찾아 줄 단 15분의 시간은 절대 낼 수 없을 만큼 바빴던 그분은 지금 부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는 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전공을 선택하게 된 2학년 이후 사물함을 배정받는데 개수가 한정되어 원하는 곳을 맘대로 고를 수는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는 4개의 층으로 쌓인 상자들 중에서 땅바닥에 가까운 1층칸. 서서 사물함을 여닫을 수 있는 3층칸이 명당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쓰면 쓸수록 나는 1층칸이 맘에 들었다. 1층칸이 왜 좋았냐고 묻는다면 여기는 몸을 수그려서 물건을 빼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서 자물쇠를 걸어두지 않아도 분실의 위험이 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물쇠 열쇠를 돌리거나 비밀번호를 맞추는 동안, 나는 그냥 쭈그려 앉아 바로 문을 열어 책을 넣고 뺄 수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이렇게 편리하고 평화롭게 살았는데 결국 막판에 분실....비슷한 일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내가 자물쇠로 물건을 열고 닫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지인(친하지는 않지만 같은 전공이라서 얼굴은 아는 정도의 선배)이 내 허락 없이 물건을 빼서 썼고 그 책을 찾느라 사물함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 책을 돌려주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던 건 코찔찔이 초딩 때 일이기라도 했지, 다 큰 성인, 그것도 공부 좀 한답시고 대학교를 다니는 선배에게서 두꺼운 전공 서적을 넘겨받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를 내 주변을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한 원망이 담겨있었다.


달랑 3번 가지고서 일반화하면 안 되겠지만 사람의 마음 안에 심어져 있는 이기심이 실망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같은 학급의 나름 친했던 친구가, 너무나 바빠서 물건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택시 기사가, 나를 이용해 먹은 듯한 대학의 선배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기 물건을 아무 데나 흘리고 다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덜렁 지수가 높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너무나 가혹한 세상 아닌가! 다행히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다시금 주인에게 돌아오는 미국은 한국보다 덜렁이들을 위한 복지가 조금 더 잘 되어있는가 싶다.




릴리야, 화났니?

시간순으로 나열을 해보면 제일 처음에 잃어버린 건 둘째의 올빼미 인형이다. 동물원에 갔다가 둘째가 기념품으로 골라왔던 녀석인데, 그 당시 기념품 가게에 수달이나 펭귄 등 귀여운 인형이 아주 많았는데 굳이 약간 화가 난 눈매를 띤 하얀 올빼미를 고른 둘째의 독특한 취향이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여하튼 '릴리'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기가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고 나름 해리포터의 팬이었던 내 눈에도 점점 헤드위그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나름 우리 가족에게 애정을 받은 인형이었다. 재작년 연말에 방목형 목장(Ranch)이 있는 호텔로 여행을 갈 때도 인형을 가지고 갔는데, 식당이나 호텔 방에 두고 나왔다가 뒤늦게 인형을 찾아 울먹거리는 일이 두어 번 생겨서 불안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호텔의 어딘가에 인형을 두고 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하하!


집으로 돌아와 호텔 웹사이트로 들어가 분실 신고를 했다. 사진을 첨부하고 우리가 투숙한 호텔방 번호, 그리고 호텔 로비 쪽에 두고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코멘트와 함께. 이틀 정도 후 인형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고 2주 뒤에 릴리는 택배 상자에 실려 둘째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다음은 첫째의 미키 마우스 야구 모자(라고 썼지만 실제 모델명은 골프 모자 ㅋ)이다. 이건 디즈니 랜드에서 잃어버렸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디즈니 랜드에 처음 갔을 때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건데,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고향(?)을 방문했을 때 잃어버리게 되었다. (친구들이랑 회포라도 풀었던 거니?) 우리가 갔던 날 해가 쨍쨍해서 모자를 씌웠건만, 덥다고 여기저기 벗어두더니 역시나 바이바이~

모자 앞부분에 미키마우스 자수가 그려져 있는데 그러면 아드님 초상권을 너무 침해하게 돼서 ^^;;

디즈니 랜드라는 놀이동산의 규모는.....구글에 검색해 보니 롯데월드가 32 에이커인데 우리가 모자를 잃어버렸던 어드벤처 파크가 72 에이커로 거의 2배 크기에 달한다. 더군다나 분실물 센터는 어드벤처 파크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디즈니 랜드 파크 100 에이커까지 관할하게 된다. 롯데월드의 5-6배 크기의 땅에서 쏟아져 나오는 분실물을 상상해 보라. 거기서 어린아이의 모자 하나 찾아내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일처럼,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분실물 신고는 했다. 왜냐하면 이 모자를 잃어버렸다가 (내가 그 장소로 다시 뛰어가서) 찾아온 일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대로 잃어버리기에 좀 아까운 마음이 있었고 디즈니라는 회사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정품 모자인지라 인터넷에서 정확한 모델명을 검색해서 사진과 함께 넣어두었는데 결국 모자는 몇 주 뒤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대망의 분실물은 역시나 원조 덜렁이 나 아니겠는가?! 집 근처에 있는 꽤나 큰 놀이동산에서 잃어버린 내 핸드폰! 연말에 아이들이 있는 몇몇 집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놀러 갔는데 첫째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러 가고, 나는 둘째와 단둘이 (360도 회전하는 롤러코스터가 아닌) 오르락내리락하는 어린이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차를 타기 직전 나머지 일행에게 이제 기차를 탈 건데 저녁 먹게 카페테리아 쪽에서 만나자고 카톡을 보내고 승차를 했다. 그리고 신나게 기차를 타고 내리자마자 출구의 끝에 있는 사진 코너로 가서 기차를 타는 동안 찍힌 우스꽝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찾는데.......으앙, 없다!


아무리 가방과 호주머니를 뒤져봐도 없다. 불과 2-3분 전에 카톡을 보낸지라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핸드폰을 잃어버린 장소는 어린이 기차 레일 아래 어딘가 일 테고, 거기에는 풀숲과 시냇물이 조성되어 있었다. 12월의 어스름한 저녁은 금방 새까맣게 변했고, 유원지의 비명 소리와 무성한 풀 숲 사이로 무심하게 콸콸 흘러가는 물이 암담하게 느껴졌다. 기차 레일이 지나가는 자리라 샅샅이 그 자리를 뒤져볼 수도 없었다. 저기 어딘가에 있다는 건 분명하건만. 여하튼, 핸드폰이 없는 채로 아이 둘을 데리고 나머지 일행들과 어찌어찌 연락을 해가며 정신없이 마무리를 했다.


반가운 핸드폰!  (중고폰에 카톡을 깔아서 확인했으니) 약 한 달 정도 확인할 수 없었던 카톡들이 쌓여있다.

분실 신고를 했고, 그 후 몇 주 동안 당신의 분실물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못 찾았다는 슬픈 업데이트만 받아왔다. 이 사람들 정말 찾으려고 하는 건 맞겠지? ㅜㅜ 생각하며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이제는 케이스를 종료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신랑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임시로 쓰다가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중고폰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중고폰의 경우 배터리 문제가 많았다. 하나는 배터리 문제였는데 잘 이용하다가 배터리가 15% 정도 남게 되면 급속하게 배터리가 떨어져서 갑자기 전원이 꺼져버리는 일이 계속되었고, 그 뒤에 구입한 2번째 중고폰은 하루쯤 잘 썼는데 그다음 날부터 아예 켜지지가 않는 찝찝한 상황이 펼쳐졌다. 결코 싸지 않지만 문제가 많아 쓸 수 없는 애물단지 중고폰 2개를 두고 다시 신랑의 임시 핸드폰으로 돌아왔다. 중고폰을 판매한 곳에서 환불을 제대로 안 해준다는 리뷰를 보아서 걱정을 끌어안고 결국 큰돈 주고 새 핸드폰을 구매하는 게 맞나....... 고민하던 찰나에 놀이동산 분실물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직접 받지 못해서 음성사서함으로 남겨주셨는데 내 핸드폰으로 추청 되는 물건을 찾았다고 한다. 분실신고를 한 지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고 놀이동산을 찾아갔는데 정말로 잃어버린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외형 모서리 끝이 살짝 깨어져 있지만 안에 담긴 내용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그대로.     


미국의 특별한 점이라고 하기에 분실물이 주인에게로 돌아오는 건 어느 나라에서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의 민심도 많이 달라졌을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이 글을 쓰기 전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미국에서 분실물, 어떤 개인에게 속해있는 물건이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체계화가 된 것은 개인주의 덕분이 아닐까. 이기주의가 아니라 그야말로 나라를 구성하는 개개인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개인주의. 나라가 세워질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개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존중해오려고 했기에 (물론 총기소지도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ㅜㅜ ) 개인에게 속하고 그들에게 사랑받은 물건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의 체계가 발달하게 된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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