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어떻게 글쓰기 습관을 장려하는지 알아봅시다.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 읽어보셨나요? 저는 어려서 읽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나중에 커서 읽어보니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너무나 많아 첫 인상이 180도 바뀌어 버린 동화랍니다. 여러 챕터 중에서도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의 대화가 참 유명하지요.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중략)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하게 밝아질꺼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음악소리처럼 나를 밖으로 불러낼꺼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이 없는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꺼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꺼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꺼야....."
(중략)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멀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 꺼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이야기를 읽어보면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이것은 비단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아이가 앞으로 배워가야 할 많은 첫 경험들에도 해당되지요. 글쓰기도 그 중 하나이고요. 어떻게 하면 조금씩 조금씩, 부담스럽지 않게 아이와 글쓰기 간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가 컸을 때는 글쓰기를 통해 기쁨을 누리고 자신의 삶을 환하게 밝힐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그러려면 일단 여우의 조언대로 오해의 근원인 말을 줄이고 기다려주는 참을성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될 것 같아요. 아아아~ 쉽지않아~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지난번 글에서는 "피트와 함께 한 주말"을 통해서 미국 초등학생들이 글쓰기와 어떻게 친해지는지 알아보았어요. 편지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개인적인 목적(일상 기록)을 가진 일기 쓰기 숙제였지요. 1탄이 있으면, 2탄도 있는 법! 이번 글에서는 일반 수업과 학교 행사를 통해 독자와의 관계성이 좀 더 뚜렷한 글쓰기를 알아보도록 할께요.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에는 말하기. 듣기. 쓰기. 꽤 딱딱한 제목의 교과서를 중심으로 글쓰기를 처음 만나기 시작했는데요. 게다가 많은 선생님들이 외우기 혹은 따라쓰기를 시켜서 재미없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대회라는 걸 통해 경쟁을 하고 억지로 쥐어짜낸 경험이 있어서인지 글짓기라는 게 한동안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바야흐로 2020년, 이제는 시간도 많이 흘렀지요. 한국의 초등학교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을지 궁금해요. (한국에 계신 분들 댓글 부탁드려요. 3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혹은 그대로일지(!!!) 정말 궁금해요.) 여러분의 댓글을 기다리며, 저는 첫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통해 미국의 아이들이 어떻게 글쓰기를 경험하는지 알려드릴께요.
아이 학급에는 Writer's Workshop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작가 워크샵, 작가들이 와서 가르치는 수업은 아니고 바로 우리 아이들이 직접 "작가"가 되어보는 수업이랍니다. 학부모인 제가 직접 수업 참관은 못하지만, 담임 선생님께서 보내주시는 이메일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아이들이 배운 내용에 대해 발췌/정리해보았어요. 이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은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한 과정, 즉 아이디어를 짜내고 계획을 세운 뒤,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을 배웠고요. (We learn that when writers write a story, we think of an idea, plan, and then write!). 지난 학기의 경우에는 아이들 각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제를 한가지 선정해서 정보 제공 목적의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Students are creating informationbooks about a topic they know a lot about).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어떻게 글을 시작하고 끝맺음을 하고 그림에 제목을 붙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We are working on writing teaching books, informational writing. We are learning about how to write an introduction, and ending, and how to label our pictures).
고양이 피트와 함께 주말을 보내며 급우들에게 편지 형식의 일기를 쓰는 숙제처럼 자기가 좋아하고 잘 아는 주제를 선택해서 정보전달용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에 좋은 접근인 것 같아요.
아이를 직접 교실에 데려다줄 때 작문 관련 내용들이 눈에 띄어서 사진 찍어놓았어요. 하단 사진은 그날 수업할 내용이 적혀있는 칠판이었는데, 정보 전달 목적의 책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제가 정확하게 이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2번 Planning 항목을 보시면 Say it on your fingers 보이시나요? 1번에서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한 걸 입으로 말하며 정리하라는건데, 손가락을 관객삼아 말해보라는 거 맞지요? 손가락에게 말하는 어린이 작가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엄마 미소가 떠오릅니다 ㅎ 그 옆에는 Sketch across pages 순서에 맞추어 종이에다가 그림, 글을 써서 정리하라는 전통적인 옵션도 보여요.
교실을 둘러보니 글짓기를 위한 기초 지식들이 정리 되어 있어요. 영어의 대문자, 소문자, 글자 사이 간격 띄우기 등등 올바른 글짓기를 위해 기억해두어야 기본 규칙들을 배우고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눈에 익히라고 포스터가 교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네요.
학교 수업에서 만든 책들은 옛날에 우리가 썼던 그림 일기장 같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종이 몇장을 스테이플러로 고정시켜 준 것이 있었고, 종이 몇장을 반으로 접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형태로 고정시켜 주기도 했어요. 그리고 종이에 구멍을 3개 뚫어서 털실로 튼튼하게 고정시켜준 책도 있었어요. 두꺼운 색종이로 제일 앞에 표지까지 만들어주면 제법 그럴싸한 책처럼 보입니다. 요즈음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아이와 함께 책만들기 프로젝트 어떤가요? :D (이 포스팅을 읽은 후 ㅎ) 고고씽~
상단 우측에 있는 초록색 표지/검은색 털실로 만든 책은 첫째 아이의 생일에 받아온 생일 카드책인데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와 그림을 그린 것을 모아서 만든 책이예요. 내용을 보여드리기 위해 아래 사진을 더 추가해보았어요. 학생들은 축하 메시지를 적으며 문장쓰기 연습을 할 수 있고 결과물은 우리아이에게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책으로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프로젝트예요. 사진에서 아이의 실명은 제가 어설프게 모자이크 처리 했어요. 양해부탁드릴께요.
미국 아이들은 어떻게 책하고 친해질까? 라는 글을 통해서 파티, 게스트리더, 강아지에게 책 읽어주기 등 여러가지 재밌고 신나는 경험을 책과 접목 시켜 아이들의 독서 활동을 장려하는 것을 관찰했었어요. 글쓰기 활동도 예외가 아니지요. 신나고 재미있는 이벤트와 함께라면 아이들이 글쓰기를 좀 더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꺼예요.
지난 2월에 우리 학교 학부모 교사 연합회(PTA: Parent-Teacher Association) 주도하에 제1회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Fair 과학 박람회가 열렸었어요. 첫 행사이고 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이다보니 적극적인 참여자보다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지켜보았고요. 행사는 물풍선 날리기 대회(Water Balloon Launcher Challenge), 과학 관련 게임들 (STEM Games), 프로젝트 발표 (STEM Independent Projects) 등으로 꾸며져 있었어요. 제가 관심있게 지켜봤던 부분은 바로 프로젝트 발표 부분인데요. 아이들이 만든 부스를 읽어보면서 논픽션 스토리텔링에 대한 가능성도 지켜볼 수 있었어요.
이 학교의 특징인지, 미국교육의 특징인지 잘 모르겠는데...완벽하게 해내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무언가를 도전하고 경험하는 데에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어요. 이번 행사도 원래 저녁에 진행했던 STEM night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STEM Fair의 포맷으로 변경했다고 해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간대를 좀 더 낮시간으로 옮기면서 아이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좀더 주도적으로 행사의 참여자가 되기를 기대했다고 해요 (Desire for more kid-imagined and kid-led projects) 부모가 도와주면야 결과물이 더 그럴싸해 보이겠지만, 그건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기회를 의도치 않게 뺏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아래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제목을 붙이고, 표를 만들고, 그림을 배치하고, 설명을 써놓은 것이 보여요. 너무나 기특해서 박수가 저절로 나와요. 짝짝짝!
제가 어렸을 때 잠깐 예체능을 전공한 적이 있었는데요. 하도 경쟁 시키고 순위를 매겨서 스트레스 주고 전공을 통한 성공의 길을 너무 좁게 알려주다보니 너무 좋아했던 무용이었지만 예고진학을 포기한 마음 아픈 경험이 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 누군가 나에게 조금 더 넓은 길을 알려줄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무용수는 아니지만,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무용 평론가, 치료사 등등 무용과 관련된 많은 길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해요. 무용은 이제 제 삶에서 거의 없어졌지만 아이의 교육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 때의 경험이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아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주기 위해 좀 더 열린 마음과 다양한 경험으로 도와주고 싶어요. 다른 엄마, 아빠, 교육자 분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지요? 오늘 하루도 모두를 응원합니다.
이 글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경험, 공간,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기록하는 SEESAW의 브런치 매거진 중 "해외 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Image Credit: https://snail2016.tistory.com/entry/%EC%96%B4%EB%A6%B0%EC%99%95%EC%9E%90%EC%99%80-%EC%97%AC%EC%9A%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