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점심 약속이 있었다. 애들이 메뉴 고르기 쉬운 한식집이나 이태리 레스토랑이 아니라, 독특한 메뉴들이 가득하고 인테리어도 멋진 식당으로 갔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근데 상대방도 나도 초등학생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인지라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고 말았다.
육아........라기엔 이제 초등학교 최고 학년으로 훌쩍 커버린 아드님을 키우다보니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여러가지 소주제들이 있었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된 것은 수학에 관련된 것이었다. 언니의 아들은 수학적인 관심이 많아서 몇 년전부터 (궁뎅이를 의자에 지긋이 붙이고 공부다운 공부를 하는 *_*!!!!) 수학 학원에 꾸준히 다녔다고 했다. 처음에 다녔던 곳이 안 좋아서 2번 정도 옮기게 되었고 이 지역 프랜차이즈 수학 학원들의 장단점을 나눠주게 되었다. 우리 아드님은 수학적인 머리가 특출나진 않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이 미국에서 크는 아시안 남자 아이라면 기본(?)으로 가져가는 옵션으로 알려져있고 당장 내년에 중학교에 보낼 처지인데 나는 미국 교과 과정을 잘 모르다보니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를 한참 이어갔다.
다음날 언니에게서 카톡이 하나 왔다.
: 우리 어제 애들 수학 얘기했다고 유튜브랑 인스타에 온통 수학 교재 광고가 떠 ㅋㅋㅋ 무서운 세상
전 세계 사람들의 집중력을 도둑질하고 있는 실리콘 밸리 한 가운데에 살고 있건만 순진(단순 무식에 더 가까운가.....)하게 살고 있는 나는 언니가 우리랑 대화를 한 뒤에 집에 가서 수학 관련된 검색을 해서 그런 알고리즘이 돌아가나보다 추측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언니가 따로 서치를 한 게 아니라 전화기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서 이런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게 아니던가?!!! 뜨악!!! 'Hey Siri' 음성으로 활성화되는 세팅을 꺼두는데도 이런다는 데 기술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새에 통제 불능한 상황이 바로 코 앞임을 느낀다.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있는 나와 언니는 ㅋㅋㅋ 같은 가벼운 톡으로 이 사건을 웃어 넘겼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섬뜩함을 느꼈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스마트기기들 넘쳐난다. 지금 나도 모바일에서 글을 쓰는 중이고 저기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도 스마트 폰을 보는 중이며, 개를 산책시키는 여자도 한 손에는 목줄 한손에는 스미트 폰을 들고 있다. 도청이 일반화되기 너무나 쉬운, 사생활이 노출되기 너무 쉬운 우리의 일상을 되돌릴 수 없고 그저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사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실존했던 천재들에 관한 소설 <매니악>을 읽었었다. 나랑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엿보았다.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올바른 윤리관을 가지고 있기를, 그리고 그들이 광적으로 무언가에 열중할지언정 미치광이는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