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튼튼한 다리에 아치형으로 뻗은 등을 가졌다. 내가 부족할 것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내 다리가 너무 답답하다. 나에게 푹신한 엉덩이를 한껏 부비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풍성한 살집과 다르게 움직임이 너무나 가뿐하다. 그들은 나를 떠나 일어나 걷고 돌아다닌다. 어떨 때는 하늘 높이 펄쩍펄쩍 뛰기까지 한다. 자기가 원할 때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가 원하는 움직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것인가?! 새처럼 날아다니는 인간은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의 주변에서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그들은 나에게 꿈을 불어넣을 영화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하루하루를 감상하면서 나는 내 다리와 바닥 사이에 공기를 끼워넣는 상상을 해본다.
조금 허튼 생각같지만, 그나마 이러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건 바로 나인 것 같다. 붙박이장 이 녀석은 벽에 박혀서 움직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나마 다리가 있는 책상이랑 식탁은 덩치들이 원체 커서 움직이기가 성가실테다. 나는 비록 스스로 움직일 순 없지만 인간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높이뛰기를 연습하고 있다. 식탁 아래에 있다가 뒤로 점프를 하기도 하고, 뒤에서 다시 앞으로 점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름 자랑거리인데, 집안 곳곳으로 움직여 본 경험도 꽤 있다. 높은 찬장에 있는 접시를 내리려는 큰 여자를 돕기 위해 부엌으로 가본 적도 있고 원래 있던 곳은 거실인데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베란다라는 곳에 나가서 따뜻한 햇볕도 쪼여보았다. 아, 언젠가 그 햇볕의 눈부심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이 집에 살고 있는 작은 여자가 나에게 와 앉았다. 장갑을 던져버리고 내 좌판과 그녀의 엉덩이 사이에 끼워넣은 맨 손의 차가움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추위를 뚫고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은 사람들이 종종 말하는 겨울이라는 계절인가보다. 이렇게 추운데 작은 여자는 왜 한달 전부터 입던 저 똑같은 얇은 회색 주름 치마와 검은 스타킹만 신고 밖에 나갔던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은 여자는 치마에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덜덜 떨며 내 앞으로 작은 전기난로를 데려왔다. 베란다에서 느꼈던 따스함과 비슷하여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작은 여자의 방에 갈 일이 생기거든 붙박이장한테 이 곳에는 옷이 몇 개나 있는지 한번 물어봐야지. 얼마 전에 큰 여자가 큰 남자와 나누던 대화에서 미니멀 라이프 어쩌구하면서 부엌이랑 옷장을 정리한다고 그러던데......큰 여자는 큰 남자가 아니라 바로 이 작은 여자에게 먼저 조언을 구했어야 했다. 작은 여자의 옷장에는 분명 옷이 몇벌 없을 것 같다.
작은 여자는 나와 난로만 남겨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책상과 함께 있을 때의 고요함은 익숙한데 난로와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분 나쁜 뜨거움까지 전해졌다. 내가 괴롭든 말든 저 친구는 자기 할 일에 참 열심이다.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참을 수 없는 뜨거움과 어색함을 피해 달아날 수 있을텐데.......! 바닥에서 떨어질 수 없는 무겁디 무거운 내 다리가 이렇게 원망스러울가 없었다.
앞다리가 살짝 휘어져버렸다. 의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계속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큰 여자는 기우뚱거리는 것이 못내 싫었는지 이리저리 휴지를 끼워서 수평을 맞추곤 했고 큰 남자는 지저분한 게 보기 싫었는지 너덜거리는 휴지를 빼내서 버리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햇살이 참 좋았던 날.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까지 곁들여져 베란다로 다시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날이었다. 그 바람은 겨울의 것이 아니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 순간, 나는 덜컹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뛰어올랐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전에 이 느낌을 놓쳐서는 안될 것같은 급한 맘이 들어서 본능적으로 한번 더 뛰었다. 덜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