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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건축주' 출간소식과 프롤로그

땅과 공간에 관한 어느 건축가의 이야기

by 윤우영

그동안 브런치에서 시작한 글들이 쌓여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공간에는 몇개의 글밖에 공유하지 못했지만 첫 독자를 만나고 하나의 책으로 맺음을 하게 되기까지 이 공간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만나뵙게 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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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스케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책의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저의 다른 활동들도 함께 보실 수 있고 무엇보다 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에게 궁금한 이야기들은 함께 만드는 공간이나 메일로 적어주세요. 브런치 공간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답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http://dancewithspace.com


책의 프롤로그를 공개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진심을 담았습니다. 그럼 책으로 뵙겠습니다.


고통스럽고 찬란한 시간들

그날 광화문의 저녁은 함께한 지인들의 걱정과 응원이 가득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진심을 쓰세요. 땅과 공간을 사랑한 건축가의 진심 있잖아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어요?”


어디까지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마음만은 건축주’인 모든 독자들에게 쓰는 글이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건축가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내게도, 독자들에게도 이 기록이 땅을 발견하고 사람을 발견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을 발견하는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흑석동의 작업실은 번잡한 골목의 반지하에 있었지만, 항상 햇살이 가득했다. 석양이 깔리던 제도판 위도 그러했고, 밤새고 맞이하던 아침의 창문도 그러했다. 지금은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자리를 잡아 골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시장길을 돌아 이어진 좁고 긴 오르막길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 젊은 날의 건축 수업 거의 전부를 그곳에서 듣고 배웠다.


드르륵 문을 열고 몇 단 계단을 내려서면 큼지막한 제도판 두어 개와 잉크가 번진 A1 사이즈의 트레이싱지가 이제 좀 쉬자는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책이 있었고, 술이 있었고, 무엇보다 건축이 뭔지도 모

르고 밤새 떠든 동기들이 있었다.


내가 입학했던 1985년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매캐한 연기와 어두운 세상으로 가득했고, 복학한 1990년에도 세상은 여전했다. 혁명가이거나 아니거나를 강요하던 그 시절의 작업실은 문만 닫으면 다른 세

상이 되었다.


모든 친구의 아지트였고, 공부방이자 카페였다. 그곳은 그렇게 같이 읽고 같이 글을 쓰던 문청들의 여관방이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끙끙거리며 우드록을 잘라 붙이던 오공본드 냄새는 또 어땠는가. 반지하 작업실 위로 낮게 깔리던 골목길의 새벽안개가 설마 그보다 더 짙었을까. 졸업을 앞둔 강의실에는 수시로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들이 방문했다. 모두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지원하라는 홍보였고 부탁이었다. 물론 지원한다고 전부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혹독한 취업난은 없었다.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얼마든지 대기업 회사원이 될 수 있었다.


대형 건설사의 배지를 달고 3년을 근무했다. 100만 호 주택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일산 신도시는 천지개벽 중이었다. 비포장 2차선 자유로를 달려 해 뜨면 출근하고 해 지면 퇴근했다. 허허벌판 아파트 현장에 10미터가 훌쩍 넘는 콘크리트 파일이 쌓여 갔다. 가설 사무실이 채 마련되지 않은 터라 한낮의 더위는 끔찍했다. 해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승용차를 빙빙 돌려 만든 그늘에서 하루 종일 붙어 지냈다. 기초 파일은 바둑판의 검은 돌처럼 현장을 채워 나갔다. 쿵쿵거리는 옆 현장의 파일 박는 소리와 함께 리듬감도 실렸다면, 그 여름의 한낮은 낭만적이었을까.


입주 점검도 끝나고 환영의 플래카드가 한때 논밭이었던 현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렇게 아파트 현장 하나를 끝내고 퇴사했다. 계획된 일이었다. 건축 설계 일을 평생 하고자 했고, 그전에 반드시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설계사무소 입사가 오래도록 혹독한 시련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아파트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설계사무소였다. 모든 디테일을 그곳에서 배웠으나 아파트 한 가지 용도에만 빠져 있으니, 학교 앞 작업실에서 꾹꾹 다져 온 건축의 갈증을 풀기는 힘들었다. 정신 차리라는 뜻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한번 해보라는 뜻이었는지 사무소 소장은 공모전 참가를 권했다. 4・ 19 기념도서관의 공모전이었는데, 말단 직원인 나를 팀장으로, 경력자 두 명을 팀원으로 구성했다. 물론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그 한 달 동안의 야근과 철야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순간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할 때면 항상 꺼내 보는 장면이다. 제도판 위의 스탠드 하나였지만, 텅 빈 사무실 전체를 밝히고도 남는 환한 불빛의 한 장면이었다.


건축사 사무소를 개설하고 난 후 모든 시간은 고통스러웠고 또 찬란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부채는 늘어났고, 매번 새롭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는 그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하기야 회사의 대표가 될 때까지 경제관념이라곤 배운 적도, 배울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으니 그 고통은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고통을 잊을 만큼 항상 새로운 땅과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이 주어졌다. 그 해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나면 또 빚이 생겼다. 쳇바퀴 돌듯 20여 년을 보냈다.


광화문 길거리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윤 건축사처럼 바쁜 사람도 처음 보고, 그런데도 그렇게 돈 안 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처음 본다고. 돌아보니 모두 떠나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왜 바쁜지도 정확히 몰랐고, 일을 하면서도 왜 계속 부채가 쌓여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날이었다. 그동안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 과정을 기록해 봐야겠다고 결심한 날이.


말간 얼굴로 마주한 이 기록은 흑석동 작업실에서 밤을 지새우던 젊은 날의 내게 보내는 편지다. 건축 설계를 하며 만난 진심 어린 건축주와 건축주를 가장한 사기꾼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숱한 사연을 가지고 비로소 한 뼘 땅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 나의 건물들에 보내는 감사 인사다. 무엇보다 복사지에 갇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그 많은 스케치에 대한 인사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기록은 그리기만 하던 내게 ‘건축을 쓰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시작이며, 땅과 사람과 공간이 함께 만들어 내는 ‘설렘’을 알게 해준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동안 건축설계를 하며 만난 모든 사람은 둘 중 한 곳에 속해 있었다. 이미 건축주인 사람이거나 앞으로 건축주가 될 사람이었다. 이 책은 그들과 함께한 아슬아슬하고 유쾌하고 또 힘들게 싸운 기록이기도 하다. 여덟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모두 서로 다른 용도의 건축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이야기다. 하나로부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땅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땅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건축의 모든 문제를 풀어 줄 해답 역시 그 땅이 가지고 있다. 그 땅에 보내는 박수갈채의 이유를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땅을 바라보는 건축주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에 숨겨진 땅에 대한 진심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일 뿐이다.


이 책이, 아직 ‘마음만은 건축주’인 모두에게는 투자와 투기가 아닌 애정과 생명으로 땅을 바라보는 첫 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미 건축주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땅이 자기에게 건네는 내밀한 이야기를 알아차리는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


건축을 쓰는 동안 딸아이는 목련이 터지듯 청춘이 되었다. 이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성장할 것이다. 동반자가 될 딸에게 미리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너는 나의 힘이다. 사랑한다.

-마음만은 건축주,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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