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th.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로
이 도시는 매일 새벽마다, 중력을 거스르는 욕망을 태워 거대한 라이브 쇼를 시도한다.
지상에서 하늘로 띄워 올리는, 세계 최대의 ‘공중 시(詩)’가 쓰인다.
미리 짐을 꾸려둔 덕분에 아침 준비는 수월했다. 카파도키아의 마지막 일정, 남은 과제는 오직 하나다. 에어 벌룬. 벌룬 쇼를 보기 위해 대중교통 대신 카이세리 공항으로 가는 직행 차량을 예약해 두었다. 운이 좋다면, 3일 만에 하늘을 수놓는 장관을 보고 떠날 수 있다.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바람은 잔잔하다. 오늘은 왠지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아침이다. 숙소 옆 언덕으로 올라 벌룬이 떠오를 계곡 쪽을 바라본다. 언덕에는 우리 둘뿐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벽의 도로에는 벌룬 바구니를 실은 트럭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벌룬 쇼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직접 보고 싶어 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 장관은 쉽게 보장되지 않는다. 바람이 잠잠해야 하고, 시야가 맑아야 하며, 하늘의 기류가 고요해야 한다. 그래서 비행은 늘 일출 직전, 세상이 가장 고요한 순간에만 딱 한 번 허락된다. 금빛 햇살이 계곡에 스며드는 찰나, 수십 개의 벌룬이 동시에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보면 누구나 탄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오기 전부터 예약을 걸어두고, 바람의 허락을 기다린다. 이곳에서 벌룬을 탄다는 건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의식’에 가깝다. 이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바람이다. 우리는 단지 그 바람의 순간을 잠시 빌려 쓰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새벽의 어둠을 밀어내며 벌룬의 풍선 머리들이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한다.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엔진의 불꽃이 한순간 푸른 어둠을 환히 밝힌다. 불꽃이 꺼지면 다시 새벽의 정적이 돌아오고, 또 한 번 불꽃이 터질 때마다 벌룬은 붉게 물든다. 거대한 벌룬들이 하나둘, 꽃봉오리처럼 피어난다. 불꽃의 붉은 숨결이 바람 속에 피어오르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또 다른 벌룬이 열린다. 그리고 이내 어둠과 빛이 맞닿는 새벽의 경계 위로, 수십 개의 벌룬이 솟아오른다. 색색의 풍선들이 계곡 위를 유영하며, 마치 하늘이 천천히 숨을 쉬는 것 같다. 바람의 리듬에 맞춰 벌룬들이 오르고, 내려앉고, 흔들린다. 이것은 춤이다. 하늘의 춤, 바람의 춤, 그리고 인간의 꿈이 한자리에 포개지는 환상이다.
“아, 이거였구나.”
사진으로, 영상으로 수없이 보아왔던 장면이었지만 현실의 풍경은 그 어떤 기록보다도 더 거대하고 생생하다. 파스텔 톤의 하늘, 옅은 안개, 그리고 그 위를 유영하는 벌룬의 물결. 공기는 여전히 차지만, 마음은 뜨겁게 벅차오른다. J와 나는 숨을 죽인 채 서 있다. 몽환적 광경이 우리를 완전히 삼켜버렸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이 함께 빚어낸, 살아 있는 예술이다.
벌룬 쇼의 감동을 뒤로한 채, 우리는 예약해 둔 차량에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괴레메의 바위산들은 점점 멀어지고, 아침 빛이 번지기 시작한 마을도 서서히 뒤로 밀려난다. 카이세리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초원에는 이른 햇살이 부드럽게 깔리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J는 이내 곯아떨어졌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탓인지, 버스 의자에 몸을 맡기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든다. 창가에 고개를 기댄 채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숨결, 흔들리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다. 카파도키아의 풍경이 멀어지며, 여행의 시선은 서로 다른 속도로 교차한다. 한쪽은 이미 다음 목적지를 향하고, 다른 한쪽은 아직 떠나온 풍경에 머문다.
카이세리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여행자들의 얼굴에는 공통된 기색이 있었다. 피곤함과 설렘, 그리고 ‘다음 여정’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기대. 우리가 탈 비행기는 썬익스프레스(SunExpress)다. 이름처럼 햇살을 따라 안전하게 나는 항공사이길 바라본다. 카이세리에서 안탈리아까지는 약 한 시간 반 남짓. 아나톨리아 고원 위 도시에서 지중해 해변 도시로 가는, 짧지만 극적인 이동이다.
이번 여행의 중간 목적지는 원래 파묵칼레(Pamukkale)였다. ‘하얀 석회 언덕 위의 천국 같은 온천 마을’. 수많은 여행자의 사진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곳이다. 고대 히에라 폴리스의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곳은, 오랫동안 나에게도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곳’이었다.
우리 여행의 지도에서 그곳이 지워진 이유는 2가지다. 파묵칼레가 속한 데니즐리 지역은 우리의 여행 스타일과 맞지 않는 곳이다. 우리는 ‘한 지역을 스쳐가는 구경’이 아니라, ‘며칠이라도 머물며 그 땅의 생활을 느껴보는 경험’을 선호한다. 무엇보다 최근 여행자들의 평이 좋지 않다. 석회층이 예전처럼 하얗지 않다는 말, 상업화된 온천 시설, 짧은 체류에 비해 긴 이동 시간… 그럴듯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비행기와 버스를 갈아타며 이틀을 소모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카이세리 평원이 끝날 즈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조금 전까지 수십 개의 벌룬이 떠 있던 그 하늘이다. 이제 그 자리를 비행기가 대신할 차례다. 이륙의 순간, 마음속에 새벽 벌룬의 장면이 겹쳐진다. 하늘은 늘 새로운 출발의 배경이 된다.
공항의 규모는 대개 도시의 크기와 비례한다. 안탈리아 공항은 인기 휴양지의 명성에 걸맞게, 크지는 않지만 산뜻하고 정돈된 분위기다. 도착 게이트를 빠져나와 수하물 벨트 앞에 선다. 여행자들의 표정에는 각기 다른 여정의 피로와 기대가 섞여 있다. 잠시 후, 우리 캐리어가 굴러 나온다. 손잡이를 잡아드는 순간, “앗.” 소리가 절로 터진다. 한쪽 모서리가 찌그러져 있다. 순간, 기분도 살짝 찌그러진다.
공항 수하물이 거칠게 다뤄진다는 것은 전 세계 여행자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공항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수하물은 크기와 모양, 색깔에 상관없이 그저 '짐짝'이 된다. 20킬로그램 내외의 수백 개 짐을 정해진 시간 안에 옮겨야 하는 기계와 노동자에게 세심함까지 바라긴 어렵다. 그래서 여행 고수는 멋진 캐리어보다 튼튼한 캐리어를 좋아한다. 이왕이면 웬만한 상처에도 끄떡하지 않는, '로마 병정'같은 제품을 고르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해도, 찌그러지고 부서진 순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잠깐 고민하다가 수하물 클레임 사무실을 찾아갔다. 안에는 이미 짜증이 한껏 오른 중년 여성이 직원과 언성을 높이고 있다. 잠시 후, 그녀는 체념한 듯 굳은 얼굴로 문을 나선다. 내 차례가 되자 직원의 시선이 캐리어에 먼저 닿는다.
“안을 열어보시겠어요?”
낯선 이 앞에서 캐리어를 여는 건 썩 내키지 않았지만, 별 수 없다. 캐리어를 열자 그는 찌그러진 모서리를 가리키며, 손으로 세게 눌러보라고 한다. 힘을 주니 모서리 일부가 ‘따각’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찾는다.
“나머지도 시도해 보세요.”
나는 손바닥에 힘을 주어 다시 누른다. 완벽하진 않지만, 모양은 대충 복구되었다. 그가 웃으며 말한다.
“Nice! it's okay now.”
'뭐지? 내가 '자가 수리'하러 여기 온 게 아닌데?'
시키는대로 따라 한 내 자신에 어이없었지만, 더 길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직감한다. '온전한 복구는 아니지 않냐'고 따져 보상을 받더라도, 여행자의 소중한 시간까지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이게 터키식 해결법인가요?”
내가 웃으며 묻자, 그도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맞다. 여행은 늘 '그럴 수도 있다'. 사소한 문제에 집착해선 안된다. 평소보다 관대함을 5배쯤 부풀려 안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할 필요도 없다. (네가)됐으면, (나도)됐지! You're Ok? I'm Ok!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공항의 외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공기가 다르다. 따뜻하다. 이스탄불과 괴레메에서 느꼈던 온도와 달리 공기에서 남쪽의 기운이 느껴졌다. 공항에서 트램을 타고 İsmetpaşa 역까지 간 후, 다시 우버를 갈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안탈리아는 고대 리키아와 로마, 비잔틴과 오스만이 차례로 흔적을 남기고 간 도시다. 이곳 역시 역사의 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다. 한때는 항구 도시였고, 지금은 ‘터키의 리비에라’라 불리는 대표적 휴양지다. 숙소는 안탈리아 구시가지의 심장, 칼레이치(Kaleiçi) 안에 있었다. 오스만 시대의 골목과 지중해풍 저택이 뒤섞인 마을로 좁은 돌길 사이로 상점과 레스토랑이 이어지고, 골목 곳곳에 부겐빌레아 꽃이 흐드러져 있다. 도시는 깨끗하고 활기차다. 공기에서 햇살의 냄새가 났다.
에어비앤비 앱이 안내한 주소에 도착하자, 작고 예쁜 호텔이 눈앞에 나타난다. 에어비엔비에 호텔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내부를 가정집처럼 꾸미는 곳도 있는데 그런 종류인 것 같았다. 입구에서 건장한 중년의 남자가 “Hello, welcome!” 하며 달려 나와 우리를 반긴다.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 캐리어를 직접 들어 옮겨 준다. 거듭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곳은 정말 따뜻한 곳이구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투숙객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던 그의 표정이 잠시 멈춘다.
“오늘 숙박 명단에 당신 이름이 없는데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에어비앤비 예약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잠시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미안하지만, 저희는 이 호텔이 아닙니다.”
순간 머쓱해졌지만, 그의 미소는 여전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흘리며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옆 건물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우리가 들어가는 걸 지켜보다 곧 다시 나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런 일이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Welcome! You must be our guests!”
인상 좋게 생긴 남자가 우리 캐리어를 들어 옮기며 문을 활짝 연다. 이런저런 인사말이 오간 후, 내 이름을 확인하는 그의 손이 다시 멈췄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을 쉽게 기억하고 부르게 하려고, Choi 만 사용했는데도, 자꾸 다시 묻는 이유는 뭐지?
“Choi. From Korea.”
그는 명단을 위아래로 두 번이나 훑고 나서, 내 폰의 예약 정보를 보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죄송하지만,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당신이 찾는 주소는 우리 호텔이 아니라 바로 뒷집입니다.”
억울했지만 '내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끌고 들어왔잖아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작은 체구로 캐리어를 두 개나 들게 한 것이 미안해, 이번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곱절로 하고 나왔다. 밖으로 나와 우리는 마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구역에 숙소들이 이웃하고 있는 동네였다. 착오와 수고 가운데도 웃음과 친절을 잃지 않는 이곳의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골목 안쪽, 진짜 숙소의 현관문을 열리자 짙은 오크 색깔의 내부가 보이고, 오래된 나무 향이 풍겼다. 19세기 가정 저택을 개조한 듯한 고풍스러운 집. 나무로 된 계단과 단단한 창틀, 우아한 문양의 커튼이 어우러져 있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주인 역시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는다. 기후의 온기가 사람들의 마음에도 스며든 걸까. 이 도시는 처음부터, 내내 따뜻하다.
늦은 점심을 겸해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칼레이치(Kaleiçi) 동네 골목은 드라마 세트장처럼 환하고 예쁘다. 하얀 담벼락 위로 부겐빌레아가 흐드러지고, 돌길 사이로는 고양이들이 느릿하게 햇살을 쫓았다. 소품 가게와 카페, 레스토랑이 이어져 있고, 오래된 오스만 풍 저택의 발코니가 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거리엔 휴양지 특유의 느긋함과 화사한 공기가 흐른다.
식당들도 그 분위기에 걸맞게 세련되어 보인다. 구글 맵을 열어 후기 300개 이상, 평점 4.8의 식당을 찾아갔다. 낯선 여행지에서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통계와 평균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웨이터는 숙련된 손놀림으로 우리를 뒤편 정원 쪽 자리로 안내한다.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운 테이블. 은밀하고 따뜻한 자리다. 그의 친절은 정중했다. 메뉴는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었지만, 오늘은 조금 색다른 걸 시도해 보기로 헀다. 터키 음식은 이미 충분히 맛봤으니, 치즈가 듬뿍 올라간 샐러드와 이탈리안 피자, 그리고 맥주 한 병을 주문한다. 샐러드를 반쯤 먹었을 때 피자가 등장한다. 피자의 모양은 완벽하다. 마치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 앞에 세워둔 ‘이런 게 바로 피자야!' 라고 말하는 모형 같다. 하지만 한 조각을 떼어 입으로 베어 무는 순간, 기대는 쉽게 바스러진다. 두꺼운 도우는 퍽퍽했고, 토핑 아래 치즈는 덩어리째 굳어 있다. 남은 샐러드와 맥주를 마신 후,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식당을 나가는 우리에게 웨이터는 환한 미소를 담아 인사했지만, 내 입안의 실망을 덮기엔 부족했다. 친절이 맛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다른 방향으로 구역을 한 바퀴 더 돌았다. 골목마다 매끄럽게 닳은 대리석 바닥이 햇빛을 반사하고, 상점마다 전시된 상품은 단정하게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투어 상품을 파는 여행사 간판과 기념품 가게가 이어지고, 많은 관광객의 웃음소리가 바람처럼 흘러간다. 숙소 근처 작은 식료품점에 들러 토마토, 계란, 요거트, 그리고 물을 샀다. 진열대 상품은 충분치 않았지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J는 대용량 요거트를 들고 만족스럽게 웃는다.
휴식을 취한 뒤, 숙소 인근의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으로 저녁 산책을 나섰다. 칼레이치의 골목을 벗어나자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공원은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고, 베이지색 벽돌 길 사이로 키 큰 야자수와 가로등이 줄지어 서 있다. 키 큰 야자수의 풍경만으로도 이곳이 이전 여행지와 다른 곳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지중해의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파도처럼 지나간다.
우리는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길이는 길지 않았지만, 바다를 끼고 쾌적하게 조성된 산책로는 달리기에도 알맞아 보인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잔잔한 수면 위에 요트 몇 척이 떠 있다. 바람이 거의 없어 돛은 느슨하게 늘어져 있고, 선체가 미세한 파도에 맞춰 천천히 흔들렸다. 멀리 부두 쪽에는 몇몇 사람들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바다의 빛을 담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난간에 얹은 채 수평선을 바라봤다. 햇살은 아직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았지만, 공기 속엔 저녁의 예감이 스며 있다. 산책을 하는 사이, 바다의 색은 점점 깊어지고, 하늘의 푸른빛은 미묘하게 연해지고 있었다. 그 사이를 요트의 흰 돛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따라 천천히 흐른다. 저녁이 서서히 공원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바다는 잔잔한 유리판처럼 빛을 모았다. 벼랑 끝 성벽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콘얄티 해변 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오늘의 석양은 유난히 조용하다. 햇살은 구름에 반쯤 가려, 붉지도, 황금빛도 아닌 은은한 빛을 남긴다.
어제의 석양과 비교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쉬움은 없다. 매일의 석양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만약 매번 석양이 장엄하고 감동적이었다면, 바닷가 사람들은 심장이 물러져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오늘 같은 평범한 석양이야말로 마음을 쉬게 하는 선물일지 모른다. 해는 천천히 지평선 아래로 기울고, 바다는 저녁의 색을 머금는다.
맥주와 견과류를 손에 든 나, 아이란과 조각 치즈를 옆에 둔 J. 우리는 바다를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아 사그라드는 석양을 즐긴다. 말없이 바다를 응시하며 좋아하는 트럼펫곡 <바다의 협주곡>을 듣는다. 이 곡은 바다가 지닌 힘과 외로움, 그 너머의 유연함을 그대로 품고 있다. 한 음 한 음이 파도처럼 밀렸다가 빠지고, 절정에서는 금관의 날카로움이 파도 끝의 흰 포말처럼 터진다. 그 안에는 들뜬 환희도 있었고, 아련한 슬픔도 있었다. 마치 바다가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바람에 실어 보내는 것처럼.
이어지는 연주곡들을 들으며 우리는 안탈리아 밤바다 앞에서 은밀하게 ‘밤의 블루스’를 춘다. 여행의 노래는 매일 다른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춤을 추듯 하루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