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th. 카파도키아_괴레메(3)
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요일을 잊었을 때’다.
"어?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그건 단순히 날짜를 까먹은 게 아니다.
‘의무의 시간표’에서 벗어난 신호이자, '자유'가 시간의 주인이 되었다는 증거다.
벌룬을 보겠다는 마음이 먼저 깨어난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몸이 스스로 시간을 알아차린다. 새벽 5시 40분. 창밖은 아직 어둡다. 기온을 확인해 보니 8도. 일교차가 크다. 가져온 옷 중 가장 두터운 후드와 바람막이를 겹쳐 입고 로비로 내려간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부딪힌다. 저절로 목과 어깨가 움츠러든다.
마을은 아직 잠들어 있지만, 도로 위는 이미 차량들로 부산하다. 커다란 바구니를 실은 픽업트럭들이 줄지어 이동한다. 헤드라이트가 도로 위에 길게 이어지고, 차량의 불빛을 따라 내 기대감도 움찔거린다. 잠시 후면 카파도키아의 하늘이 색색의 벌룬들로 부풀어 오를 것이다. 우리는 트럭들이 향하는 방향을 좇아 마을 건너편 낮은 언덕으로 걸음을 옮긴다. 지도 앱에 표시해 둔 작은 뷰포인트. 눈앞에서 벌룬이 부풀고 떠오르는 순간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선택한 자리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언덕에는 우리와 러시안 커플, 단 두 팀뿐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벌룬을 보기 위해 괴레메 시내 동쪽 언덕으로 몰렸을 것이다. 사방은 푸른 회색빛의 새벽으로 잠겨 있고, 멀리 마을의 불빛 몇 개만이 깜박인다. 바람이 거의 없다. 오늘은 벌룬이 뜨기 좋은 날씨라는 확신이 든다. 예보에 따르면 해는 6시 36분에 뜬다. 벌룬들은 대개 일출 직전 불을 뿜어 공기를 채우고, 해가 솟는 한 시간 동안 하늘을 유영한다. 전 세계에 벌룬이 뜨는 곳은 많지만, 카파도키아만큼 스케일과 풍경이 겹쳐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곳은 없다. 그 장관을 보기 위해 여행객들은 아나톨리아 중앙의 이 고원까지 찾아온다. 카파도키아의 벌룬 투어는 단순한 체험 그 이상이다. 이 도시는 매일 새벽마다,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을 태워 거대한 라이브 쇼를 시도한다. 지상에서 하늘로 띄워 올리는, 세계 최대의 ‘공중 시(詩)’가 쓰인다.
이상하다. 6시 2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어디선가 불꽃이 치솟아 벌룬의 거대한 머리가 부풀어 오를 법도 한데, 풍경은 여전히 고요하다. 처음엔 단순한 지연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든다.
‘기온은 낮아도 바람은 잔잔하고, 안개도 거의 없는데… 설마 오늘도?’
6시 25분. 러시안 커플이 카메라 삼각대를 접으며 천천히 하산을 준비한다. 말을 걸어 물어보려던 찰나, 남자가 먼저 짧게 두 단어만 남기고 돌아선다.
“Cancel. Fog.”
‘아… 오늘도 뜨지 못하는구나.’
아쉬움이 목구멍 아래로 내려갔다 낮은 한숨으로 빠져나온다. 그런데 한숨 뒤로 묘한 감정이 뒤따른다. 실망 바로 뒤에 이어지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 같은 것. 화려한 쇼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이 도시의 모든 여행객이 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낯선 위로가 혼재했다. 벌룬이라는 특권이 사라진 도시에서, 우리 모두는 잠시 평등해졌다? 기대가 꺼져버린 자리에서 느껴지는 이 이상한 평등감.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비겁한 감정. 그래서 J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언덕 위에 조금 더 머물렀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기 속에서 하늘은 느리게 밝아지고, 동쪽 끝의 빛이 마을의 돌담 벽을 천천히 기어오른다. 벌룬은 없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해는 거대한 바위의 어깨 위로 떠오르고, 그 빛이 대지의 굴곡을 따라 흘러내린다. 기암괴석들은 점차 금빛을 머금고 성처럼 반짝이기 시작한다.
벌룬 쇼 관람의 실패에도 우린 별로 낙담하지 않았다. 아직 내일 아침이 남았고, 무엇보다 아침 러닝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숙소에서 괴레메 북쪽으로 이어진 인도는 길지 않았지만 달리기에 좋았다. 두 번 왕복하니 약 5km 정도 된다. 인도 끝은 공사 중인 채 막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새로 포장된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며, 나를 길 건너로 넘어가 보라고 떠민다. 도로를 가로질러 길을 따라 조금 뛰다 보니, 한쪽으로 선명한 파란색 길이 나타난다. 자전거 전용도로였다.
'이런 황무지에 자전거도로라니?'
의외였다. 기괴한 아름다움이 있는 땅이라고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황무지 아닌가. 나무 한 그루 없는 건조한 땅 위에 파란색 길은 너무도 튀었다. 그런데 실용을 떠나 바라보면, 그 길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유혹하려 깔아놓은 지니의 파란 양탄자처럼 보였다.
홀린 듯 파란 길을 따라 달린다. 마을의 흔적이 뒤로 멀어지고, 광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오직 하늘과 땅과 '달리는 우리' 뿐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 횡단 달리기를 하다 멈춰 "I'm tired."라고 말했던, 그 장면에 나오는 길 같다. 우린 좀 더 달리기로 했다. "We're still hungry."
길은 유선형으로 휘어지며 언덕 뒤편으로 우리보다 앞서 내달린다. 달릴수록 괴레메는 멀어지고, 대신 낯선 땅의 신비가 가까워진다. 황량한 아름다움. (모순적 표현인데 그 단어 말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황량한데도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적막이 음악이 되는 공간. 규칙적인 발걸음과 호흡이 박자를 맞춘다. 지니든 알라든 우릴 홀린 것은 분명했다.
뛰다 말고 멈춰서, 뒤돌아 본다. 하늘도 올려다본다. 내가 영화 속 트루먼은 아니겠지? 괴레메라는 도시 스튜디오를 우연히 벗어나버린 것 같았다. 세트장 세상의 가장자리 벽을 뚫고 진짜 세상으로 나갔던 트루먼처럼, 나도 지금 관광 도시의 화려한 무대 밖으로 뛰어나온 기분이다. 우연히 진짜 세계의 뒷면으로 뛰어나온 듯한 해방감. 누구라도 이런 순간에는 양팔을 벌리고 목청껏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난 자유다!"
호텔의 조식은 오늘도 훌륭했다. 이란 출신이라고 말한 남자 주인은 부지런하고 친절하며, 센스가 있다. 들어오는 손님에 맞춰 그 나라 음악을 한 곡씩 틀어 주었다. 우리에게는 K-pop을 틀어준다. 흘려들으며 '지금쯤 한국 라디오에선 <가을이 오면>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겠지' 생각했다. 남자는 테이블마다 주문받은 메뉴를 서빙하듯, 음식과 소스를 배치하고 마지막에 미소와 인사를 얹었다. 그의 아내가 만든 음식은 한결같이 정갈했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꾸려졌다. 몇 마디 인사 외에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미소에 담긴 따뜻함은 쉽게 식지 않았다.
남은 오전은 쉬면서 벌룬을 보기 위해 설쳤던 새벽잠을 보충하기로 했다. 자유여행 중 자유시간. 반투명 커튼을 닫고 침대에 몸을 뉜다. Do Not Disturb.
숙소 뒤편의 산들은 서로 어깨들 걸듯, 손을 잡듯 이어져 낮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길로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길이 있을 듯한데, 아무도 가지 않는 길. 대부분이 여행객들은 지도의 굵은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곳은 어딜 가든 시야가 트여있다. 작은 모험을 시도를 해봐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하이킹을 나섰다.
오후 햇살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J와 나는 서쪽 바위 언덕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10월 초의 괴레메 산길은 여름의 열기를 털어내고, 그 자리를 가을의 서늘한 공기로 채워가고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잇는 오솔길에는 흙먼지와 풀잎 향이 섞여 은은한 가을 냄새를 풍긴다. 건조한 바람이 불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계곡을 따라 간간이 스치는 바람은 오후 햇볕에 데워진 피부의 열기를 식혀준다. 길가에는 붉게 물든 덤불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주황빛 들풀은 신발이 스칠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우리는 대략적인 방향만 정한 채, 목적지 없이 걷는 행위 자체에 마음을 내어 맡겼다.
언덕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의 중간쯤, 아래를 내려다보니 괴레메 마을이 포근히 계곡 품에 안겨 있다. 집들은 흙빛 바위와 거의 같은 색을 띠고 있어, 마치 땅속으로부터 스스로 솟아올라 집의 형태를 갖춘 듯하다.
더 올라서자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카파도키아 곳곳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은 현실이라기보다 <인터스텔라〉에서 보았던 미지의 행성, 혹은 <듄>에서 사구 너머에 나타나는 이국적 대지의 풍경에 가까웠다. 수천 년의 바람과 비가 깎아 만든 곡선들이 이어지고, 바위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서 있다. 어떤 바위는 사람의 옆모습 같았고, 어떤 바위는 중세의 탑처럼 보였고, 또 어떤 바위는 오래전에 무너진 성채의 잔해처럼 보였다.
멀리 괴레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러,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는다. 마을의 창문들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온기를 품은 바람은 여전히 건조했지만, 그 속엔 평온이 깃들어 있다.
'이런 풍경을 보게 되다니!'
오늘 우리의 호기심이 베팅한 작은 모험은 잭팟을 터뜨렸다. 이곳에서 본 풍경은 인위의 흔적이 거의 없는, 시간 그 자체의 조각품들이다. 자연의 작품이라기보다, 인간의 상상력이 먼저 그려놓고 시간에게 완성을 맡긴 ‘또 다른 지구’의 일부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던 중, 갑자기 거리 한쪽이 환하게 빛난다. 시장이다. 세상에나, 그동안 괴레메에서 보기 힘들었던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한가득이다. 이건 오아시스다.
시장에는 온갖 색이 넘친다. 초록빛 오이와 빨간 토마토, 보랏빛 가지와 노란 파프리카가 바구니마다 색을 쏟아내고 있다. 한쪽 좌판 위에 쪼개놓은 수박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트럭 짐칸을 개조한 무화과 상인이 서 있다. 맞은편에는 채소와 견과류를 산처럼 쌓아둔 가설 상점이 들어섰다. 옷 장수, 계란 장수, 야채와 과일 장수들이 손짓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 다양한 색의 스카프를 두른 아줌마들은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고르려 한다.
우리는 여러 좌판을 천천히 둘러보다 토마토와 복숭아를 대여섯 개씩 골랐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과육의 달콤한 향이 입안에 먼저 번진다. 우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다. 로컬 시장이 주는 즐거움은 특별하다. 여행지의 시장은 단순한 상점의 모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일상’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낯선 언어가 흘러넘치고, 익숙하지 않은 계산 방식이 오가고, 상인과 손님이 주고받는 농담 속에 한 도시의 성격이 드러난다. 박물관이나 유적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지금 이 도시의 맥박’을 만나는 자리다.
근처 식당의 점원에게 물으니, 이런 임시 시장이 아마 5~6일에 한 번씩 열리는 것 같다고 한다. 마치 우리 동네 5일장과 닮았다. J와 난 과일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사막에 진짜 오아시스가 있다면, 아마 이런 풍경일 것이라며. 괴레메에 기괴하고 건조한 아름다움만 있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한나절의 먼지와 열기, 하이킹의 피로가 따뜻한 물줄기에 스르르 녹아내린다. 샤워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 손이 가는 일을 한다. J는 과일을 씻어 먹기 좋게 썰고, 요거트를 컵에 덜어 꿀을 살짝 떨어뜨린다. 나는 계란을 삶고, 비상식량으로 챙겨 온 고추참치 캔을 개봉하고, 차갑게 식힌 맥주를 꺼낸다. 대단할 것 없는 조합인데 마음은 잔칫상을 앞둔 사람처럼 들뜬다.
3층 루프탑 식당으로 올라가 야외 자리를 잡았다. 낮의 강한 햇살은 이미 한풀 꺾여 부드러운 금빛으로 변해 있고, 습기 없는 바람의 감촉은 쾌적했다.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대어 보니, 우리가 걸었던 카파도키아의 언덕과 봉우리가 루프탑 난간 너머로 겹쳐 보인다. 복숭아를 집어들고 한입 깨물자 단맛과 짙은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토마토를 베어 문 J의 얼굴에도 금세 미소가 번진다. 따끈한 계란, 상큼한 요거트, 싱싱한 과일, 고추참치를 얹은 간단한 샐러드,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말해 뭐 하랴. 입안은 맛으로 가득하고, 눈앞은 황홀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Perfect! 이런 소박한 순간들이야말로 여행이 선물하는, 가장 은근한 호사다.
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요일을 잊었을 때’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안의 생체시계는 요일별 감정 리듬을 따라 정형화되어 있다. 월요일을 저점으로 수요일을 잘 넘기고 나면, 금요일의 구원과 주말의 환희가 기다리는 식이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리듬이 서서히 깨진다. 하루하루 생존하고, 낯선 것을 보고,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그 짧은 문장이 머릿속을 스칠 때, 나는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그건 단순히 날짜를 까먹은 게 아니다. ‘의무의 시간표’에서 벗어난 신호이자, '자유'가 시간의 주인이 되었다는 증거다. 요일이 사라진 세계. 그곳의 아침은 언제나 새롭고, 오후는 언제나 유연하다. 월요일과 금요일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날이 '자유일'이다.
짧은 휴식을 마친 뒤, 우리는 괴레메에서 보내는 마지막 석양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단단히 가방을 챙겨 숙소를 나선다. ‘석양 감상’은 우리에게 질리지 않는 행복 아이템이다. 아침 달리기와 함께 어느 도시에서든 누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즐거움이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석양은 태양이 하루를 정리하며 건네는 저녁의 선물이고, 하늘이 잠시 열어 보이는 색채 마술의 시간이다. 하늘과 지표를 동시에 물들이는 그 거대한 파노라마에는 흥분과 경건이 동시에 깃든다. 제한된 시간에 딱 한 번, 두 번 다시없을 쇼를 펼치고 순식간에 어둠의 장막을 내린다. (단언컨대, 카파도키아 최고 명물은 노을이다. 놓치면 후회한다.)
동쪽 언덕으로 오르기 전, 근처 상점에 들러 맥주와 구운 헤이즐넛, 피스타치오, 말린 살구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말린 살구는 다시 내려놓는다. 이스탄불과 괴레메를 여행하는 동안 ‘심심풀이 땅콩’ 대신 이곳의 견과류를 종종 사 먹었다. 상점마다 넘쳐나는 헤이즐넛은 튀르키예가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특산물이다. 여기에 살구, 체리, 무화과 같은 농산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여행하는 동안 원산지를 대표하는 맛을 즐기는 것도 여행 재미 중 하나다.
괴레메의 동쪽 언덕, 절벽 한쪽으로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는다. 맥주를 홀짝이며 하늘과 대기의 변화를 지켜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풍경은 조금씩 색을 바꾼다. 낮 동안에는 담황색과 회백색으로 차분해 보였던 바위들이,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석양이 바위를 감싸 안을 때마다 계곡의 굴곡이 더욱 선명히 드러났고, 바람에 이는 먼지는 금빛 안개처럼 공기 중에 흩날린다.
석양의 그라데이션에 몰입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미묘하게 느려진다. 빛이 가장 깊게 번지는 지점에 이르면, 언덕 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같은 장면 앞에서 숨을 죽인다. 하늘이 흩뿌린 색의 분자들이 춤을 추며 섞이고 내 안으로 흘러든다. 도취인지 마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저 압도당하며 경건해진다.
석양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내 안의 진홍빛 감동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사바나 초원에서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며 나는 이 순간이 여행의 가장 깊은 선물 중 하나가 될 것임을 직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