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안탈리아(2)
여행도 어쩌면 문해(文解)의 과정인지 모른다.
우리는 지도의 선을 읽고, 사람들의 표정을 해석하며, 낯선 도시의 언어를 배워간다.
그렇게 세계를 ‘읽는 법’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아침의 카라알리올루 공원은 지금까지 여행 중 가장 좋은 조깅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바닥은 단단하고 매끄러웠으며, 달리는 내내 다양한 꽃나무들과 지중해의 푸른 수평선이 시야를 채운다. 멀리 타우루스(Taurus) 산맥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겹쳐 있는 풍경은 가슴을 탁 틔이게 한다. 고대인에게 그 산맥은 제국과 제국을 가르는 장벽이자, 바람과 문명이 교차하던 경계였다. 오늘의 안탈리아에서도 여전히 그 산맥은 도시의 일상과 바다의 호흡을 함께 품고 있다.
대기는 달리기에 딱 좋은 온도다. 밤새 식은 바람이 공원의 나무숲 사이를 지나며 싱그러운 냄새를 날랐고, 바다는 그 위로 소금기 섞인 공기를 부드럽게 얹어 주었다. 우리는 공원을 네 바퀴쯤 뛰었다. 나는 9km, J는 10km를 조금 넘게 달렸다. 뛰는 리듬이 편안하게 몸에 배자, 오래된 역사 도시를 달리고 있다는 흥분이 일었다. 안탈리아는 원래 ‘아탈레이아(Attaleia)’라 불렸다. 페르가몬 왕 아탈로스가 항구를 닦으며 세운 도시다. 그 후로 로마가 도로를 놓고, 비잔틴이 성벽을 세우고, 오스만이 돔과 미나렛을 더해 문명들의 기억을 차곡히 쌓아 올렸다. 우리가 달리는 이 공원도, 사실 그 모든 시대의 잔재 위에 자리한 것이다.
숨이 고르게 이어지고, 심장이 제 박동을 되찾을 즈음 문득 ‘걷기(Peripatos)’를 사유의 방식으로 삼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걷고, 멈추고, 다시 걷는 행위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발바닥으로 흙을 느끼며, 사유의 방향을 자연의 변화에 맡겼다.
우리도 아침에 달리며 머무는 땅을 느끼고, 이해하려 한다. 걷든 뛰든, 결국 발로 밟아보는 것이 생각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몸이 먼저 나아가고, 생각은 그 뒤를 천천히 따라온다. 여행지에서 뛰는 행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세계와 조금 더 깊이 연결되는, 가장 원시적이고 솔직한 방식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다.)
아침 식사와 짧은 휴식 후, 오늘의 목적지 ‘페르게(Perge)’로 길을 나섰다. 안탈리아 여행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걸린 점은 페르게 유물이 보관된 고고학 박물관이 임시 휴관 중이라는 사실이다. 페르게 유적을 둘러본 뒤, 그곳에서 발굴된 조각상과 유물들을 마주하며 고대 문명의 퍼즐을 완성하고 싶었다. 야외의 폐허와 실내의 박물관은 원래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 두 개의 절(節) 같은 것이다. 폐허는 시간의 골격을 보여주고, 박물관은 그 골격에 살과 표정을 입힌다. 그러나 박물관은 지난 6월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과 보존 공사로 문을 닫고 있다.
숙소에서 트램 역으로 가려면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지나야 한다. 안탈리아의 상징이자, 로마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아치. 색이 바랜 대리석 기둥은 1900년의 시간을 버티며 여전히 굳건하게 서있다. 세 개의 아치형 통로는 마치 시간의 문처럼, 한쪽은 현대의 거리로, 다른 쪽은 고대의 세계로 열려 있다. 기둥 아래로는 수레바퀴가 새긴 깊은 홈이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마차가, 얼마나 오랜 세월 이 길을 오갔으면 대리석이 이토록 파였을까. 그 자국 하나하나에 시간이 새겨져 있다.
로마의 건축술은 알면 알수록 경탄을 자아낸다. 그들은 단순히 돌을 올리고 기둥을 세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간을 지탱하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건축을 통해 도시를 만들고, 도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설계했다. 길을 내고, 문을 세우고, 계곡을 가로질러 물을 끌어다 도시의 혈관처럼 흐르게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길 위에서 태어났다는 자각에 가깝다. 그 길들은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니었다. 사상과 기술, 종교와 예술이 흘러가는 통로였다.
외곽으로 나가는 트램은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도 줄어들었다. 창밖의 건물들은 하나둘 낮아지고, 안탈리아의 아침 소음은 서서히 희미해진다. 페르게(Perge)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는 오늘의 안탈리아가 흘러가고, 마음속에서는 수천 년 전의 행인들이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악수(Aksu)역에서 내려 1킬로미터 남짓 걸어가고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이 길은 멀어요”라고 말하며 다른 방향을 손짓해 알려준다. 여행자를 알아보고, 먼 길로 돌아갈 뻔한 수고를 덜어주려는 따뜻한 배려다.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이런 우연한 친절은 목적지를 바꾸지는 않지만, 목적지에 도달하는 기분의 방향을 바꿔놓는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선물이다.
페르게의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간헐적인 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며 얼굴을 스친다. 그 바람에는 흙냄새와 마른풀의 향이 섞여 있다. 옛 도시의 윤곽이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오래된 문명의 흙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다. 이곳은 기원전 그리스인들이 정착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로에 스쳐간 도시다. 이후 로마 시대에 들어 팜필리아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주차장은 한산하다. 몇몇 여행객이 모자를 눌러쓴 채, 뜨거운 햇빛 속을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입구를 지나자 사각의 돌조각과 부서진 기둥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제자리를 잃은 채 세월의 명령을 기다리는 미아들 같았다.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로마 시대 경기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반원형 관중석은 곳곳이 무너져 있었지만, 그 규모만으로도 이 도시가 한때 품었던 위엄을 보여준다. 길이 약 234 미터, 폭 약 34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경기장은 좌석 수가 약 12,000명 규모였다고 한다. 연속아치 구조물 위에 돌좌석이 겹겹이 쌓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 안팎을 오가며 경쟁하고 환호했을 것이다. 이 경기장은 단순히 스포츠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검투사의 격투, 동물 사냥, 육상 경기 등 폭력과 오락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그 시절의 페르게는 상인들의 외침과 검투사의 함성, 연극의 대사로 가득한 활기찬 도시였을 것이다. 지금은 잡초가 자란 돌길과 부서진 기둥만이 남아 조용히 그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J는 한동안 빈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오래전 이곳을 가득 채운 함성의 메아리를 듣고 있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도시를 세울 때 영원을 꿈꾼다. 그러나 문명은 늘 흥망성쇠의 곡선을 그린다. 찬란한 건축과 조각도, 길게 뻗은 도로도 결국 풍화와 전쟁, 그리고 무관심 속에 무너진다. 하지만 폐허는 단순한 ‘끝’이 아니다.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은 ‘이어짐’을 말하고 있다.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사라진 자리 위에 새로운 시간이 겹겹이 쌓이며, 후대의 사람들은 그 잔해 속에서 오만과 겸허, 욕망과 깨달음을 동시에 마주한다.
페르게의 길을 걸으며 나는 ‘영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형태가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남는 의미일지 모른다. 무너진 기둥은 돌로 된 유산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기억의 형상이다. 그러니 영원은 결코 변치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너짐 속에서도 이어지는 존재의 의지가 아닐까.
J와 페르게 유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오른다. 옛 도시의 윤곽은 햇빛 속에 희미하게 녹아 있고, 바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기둥 위를 스쳐간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더 쓸쓸했다. 시간조차 이곳에선 잠시 멈추고, 흔적과 영원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페르게는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시간의 강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메모였다. 그 메모 위에서 나는 잠시 멈춰, 인간이 남기고 간 흔적의 온도를 느꼈다.
페르게 유적지를 나서는 길, 바람은 여전히 거칠다. 그 바람은 문명이 사라져도 인간의 감정과 상상, 기록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고 내게 말한다. 발아래 돌길에서 피어오르던 먼지가 바람에 실려 빠르게 흩어진다.
페르게에서 발굴된 유물이 옮겨져 있는 박물관을 보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쉬웠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여행은 늘 계획보다 한 걸음 모자란 결핍을 품는다. 그 결핍이 오히려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넓힌다. 완성된 문장을 읽지 못했기에, 나는 스스로 빈칸을 채워야 한다. 고대인의 도시를 걸으며 본 기둥과 돌벽의 흔적들이, 박물관의 조각상과 어떻게 이어졌을지 상상하는 일. 그것도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층위의 사유다. 문명은 원래 단번에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딘가 빠져 있고, 어딘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의 작은 결핍도, 그런 의미에서 ‘문명 읽기’라는 더 큰 여정 속 한 페이지일 뿐이다.
트렘을 타고 시내로 들어서자, 도시의 삶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의 속도를 되찾는다. 늦은 점심 식사를 위해 동네 상점에서 토마토와 계란, 치즈, 양송이버섯 등 익숙한 식료품을 샀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음식을 차리자, 식탁은 소박하지만 정갈한 풍경이 된다. 내 접시 한가운데에는 천도복숭아가 자리 잡는다. 튀르키예에 온 뒤로 나는 이 나라 복숭아와 꽤 친해졌다. 알맞게 익은 천도복숭아를 베어 물면 ‘음~’ 하는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온다. 잘 익은 향이 코끝을 타고 들어오고, 과육의 미세한 산미가 단맛을 한 번 더 밀어 올린다. 먹을 때마다 복숭아와 비밀스러운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지중해의 저녁빛이 창틀 사이로 스며들어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빛의 결이 부드러워질수록 방 안의 공기도 느슨해진다. 나는 그 평온을 안주 삼아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따스한 빛, 적당한 배부름, 피로가 풀리는 나른함, 알코올의 얕은 취기가 한꺼번에 섞이며 혼미한 평화가 깃든다.
시간이 지나며 페르게 방문의 피로가 무거워졌지만, 저녁 이후의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기엔 아쉬웠다. 우리는 내일 가볼 콘얄티(Konyaalti) 해변까지의 동선을 미리 그려볼 겸, 가벼운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낮동안 데워져 아직 식지 않은 바닷바람이 골목 끝에서 은근하게 불어온다. 밤의 칼레이치 골목은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낮에는 고풍스러운 골목이었지만, 밤이 되자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선 배우처럼 표정이 달라진다. 식당과 카페들은 경쟁하듯 불빛을 내걸고,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주황빛 조명과 벽을 타고 흐르는 부겐빌레아의 붉은 꽃잎, 그 아래로 와인 잔을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천천히 골목을 흘러 다닌다.
바다 쪽으로 난 절벽 위 카페들은 더 화려하다. 아래로는 검푸른 바다가 숨을 고르고 있고, 위로는 음악과 조명이 절벽을 따라 이어진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조차 술잔을 들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다.
관광 도심의 번화함을 벗어나자, 마치 시끌벅적한 드라마 세트에서 살짝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다. 우리가 묵는 숙소 주변은 정갈하고 아름답지만, 그곳의 공기에는 여행자를 위한 장식이 더 많고, 현지인의 일상은 희미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걸음을 옮기자, 도시의 ‘진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중고 서적을 펼쳐놓은 노점상, 장난감 좌판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손님을 기다리는 노인, 도로 한가운데에서 잠시 멈춰 하품을 터뜨리는 배달 오토바이 기사도 보인다. 관광지의 동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생활의 모습들이 드러나자, 도시와 조금 가까워진 듯한 반가움이 든다.
공원을 지나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어둡다. 거리도 생각보다 멀고, 이따금 빗방울이 흩뿌렸다. 결국 우리는 내일 다시 오자며 트램 정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정거장에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색 트램이 조용히 궤도를 따라 미끄러져 들어온다. 트램을 타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이 마치 오래된 유럽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 트램, 책 읽어주는 남자에 나오는 트램 같지 않아?”
J의 질문을 받고 보니, 트램이 왠지 더 클래식하게 보였다. 실제로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남자>에는 트램이 등장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 한나는 문맹이란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가 읽고 쓰기를 배우며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문맹은 의존이다. 읽고 쓰기를 배우는 용기를 통해, 한나는 의존에서 독립으로, 독립에서 해방으로 나아갔다.”
그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었다. 여행도 어쩌면 그런 문해(文解)의 과정인지 모른다. 우리는 지도의 선을 읽고, 사람들의 표정을 해석하며, 낯선 도시의 언어를 배워간다. 그렇게 세계를 ‘읽는 법’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