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th. 안탈리아(3)
지금 안탈리아만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언젠가 트로이의 항구에도, 에게해의 섬들에도 같은 결로 불었을 것이다.
그 바람은 돛을 부풀리고, 배를 밀어냈으며, 때로는 제국의 방향을 바꿨다.
아침 해안길을 달리고 싶어 조금 서둘러 콘얄티 해변으로 나섰다. T2 트램의 종점에 내리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바다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 파도의 호흡은 잔잔하다. 트램 역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완만한 유선형 곡선을 굽이돌며 내려간다. 해변의 공원 가로수는 부드러운 그늘을 드리우고,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서서히 아침을 연다.
콘얄티 해변은 도시와 자연이 절묘하게 맞닿은 곳이다. 길게 이어진 자갈 해변 옆으로 산책로와 러닝 트랙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뒤편으로는 카페와 공원이 이어진다. 멀리 타우루스 산맥은 푸른 안개빛을 머금은 채 바다와 맞닿아 있다. 튀르키예 해안 도시마다 전통과 관광의 비중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콘얄티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현대적이다.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이 도시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놓는다.
러닝 코스는 단정하면서도 시원하다. 길은 매끈하게 뻗어 있고, 가로수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조금씩 고개를 흔든다. 한쪽엔 지중해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일정한 파도 소리가 러닝과 박자를 맞춘다. 코스가 워낙 길게 이어져 왕복을 계산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한 방향으로 쭉 달렸다가 돌아오기만 해도 10km를 가볍게 넘는다. 달리는 동안 시야는 점점 맑아지고,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희미해질 만큼 넓어진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러너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같은 길을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친근함이 돋는다. 마주 오는 러너에게 손을 들어 “하이” 하고 인사하면 상대도 대부분 손을 흔들며 미소로 답한다. 그 짧은 스파크로 아침 공기가 따뜻해진다.
그러다 누가 나를 앞질러 달리기라도 하면 나도 덩달아 속도를 올린다. 나보다 연배가 높아 보이는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상대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나만 승부욕이 발동해 소리 없는 경쟁에 돌입한다. 대부분은 따라가다 제 풀이 지친다. 내 승부욕은 시답잖다. 하지만 그 작은 자극 덕분에 잠깐의 인터벌 훈련을 하고, 가끔은 달리기 거리가 늘어나는 효과를 얻는다. 아침의 활기, 스치는 인사, 가벼운 경쟁심. 이런 것들이 러닝을 더 즐겁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변은 천천히 깨어났다. 해변가 카페의 테라스에는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커플이 보이고, 잔디밭에서는 축구를 하는 실버 축구클럽 노장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잔디밭 위에선 요가를 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햇살에 반짝인다. 아이들은 자갈을 던지며 웃고, 청춘들은 과감히 파도 속으로 뛰어든다. 그 모든 움직임이 한 폭의 커다란 수채화처럼 청량한 생동감을 그려낸다.
콘얄티는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휴양지지만, 여름에는 유럽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더욱 활기를 띤다. 그럴 만하다. 바다와 도시, 사람과 자연이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이 아침의 풍경은 그 자체로 축제다. 10킬로미터에 다다를 즈음,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낀다. 해변의 활기에 전염된 탓인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의 의욕으로 가슴이 뭉클하다.
오늘부터 이틀간은 ‘콘얄티 해변 휴양’을 컨셉으로 잡았다. 해가 있는 동안은 해변에 나가 놀기로 했다. 이번엔 트램 대신 버스를 타고 나가 보기로 했다. 구글맵이 알려준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이 나라의 시간은 전체적으로 느슨하다. 정류장 알림판의 도착 예정 시각이 몇 번이나 갱신되었지만, 사람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기다림조차 일상의 일부인 듯하다. 결국 몇 번의 헛된 기다림 끝에 나는 우버를 불렀다.
도심은 이미 하루를 시작한 차량들로 가득하다. 버스와 돌무쉬(소형 미니밴), 노란 택시, 오토바이, 그리고 우리의 우버 차량까지 서로 밀고 들어오며 엉킨다. 도로는 느리게 뒤섞인 강줄기처럼,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느리게 흘러간다. 운전기사는 창문을 반쯤 내리고 오른손으로는 스티어링을, 왼손으로는 경적을 누른다. 앞차가 잠시 멈추자마자 옆 차선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하고, 옆 차도 지지 않으려는 듯 가속페달을 밟는다. 창밖의 자연 풍경은 느긋했지만, 도로 위의 경쟁은 치열했다. 휴양 도시라고 해서 모두가 느리게 사는 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서든 삶은 치열하다.
콘얄티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우렁찬 파도 소리와 몰아치는 강풍이었다. 택시 문을 여는 순간, 바람이 몸을 밀어붙인다. 몸이 뒤로 젖혀질 만큼 거세다. 바다는 분노한 짐승처럼 숨을 몰아쉬며, 포말을 뿜어낸다. 파도는 자갈밭으로 묵직하게 부서져 내린다. 정면으로 바람을 맞으면 몸이 휘청인다. J의 앞에 서서 바람을 막아서 보지만, 중심을 잡으려 다리에 힘을 주는 그 순간조차 눈을 크게 뜨기 어렵다. 맑은 하늘과 따뜻한 햇살에 이끌려 나왔지만, 바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늘 해변은 관광엽서 속 풍경이 아니라, 살아 꿈틀대는 거대한 동물이다.
바람이 사납지만, 햇살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풍속 24m에 기온은 26도. 수영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지만, 해변의 썬 배드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찼다. 접은 파라솔 아래에서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잠들어 있다. 피부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구릿빛으로 반짝인다. 어떤 사람은 파도의 가장자리를 맨발로 걷다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르고, 긴 머릿결의 젊은 여자는 셀카를 찍기 위해 일부러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기도 한다. 강풍도, 모래바람도 이들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햇볕만 비추면, 유럽인은 어디서든 옷을 벗고 빛을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전신으로 태양을 받아내는 그들은 광합성을 하는 인간 식물 같다. 폐질환 이후 햇볕 알러지가 생긴 나로서는, 피부를 태우며 웃는 그들의 태양 예배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해변의 그늘은 오히려 한산하다. 우리는 파도가 들이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모래사장 벽에 기댄 J는 바다로부터 격리된 사람처럼 보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파도의 알갱이가 공중으로 흩날리고, 그 미세한 물방울들이 얼굴에 와닿는다. 하지만 햇볕과 바람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들을 한참 보고 있자니 우리도 서서히 해변의 일원으로 동화되어 간다. 아무렇게나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해방감이 전이되며 점점 느슨해진다. 준비해 온 맥주를 꺼내 태양에 건배를 한 후 한 모금 들이켠다. 탄산이 혀끝을 톡 치며 쌉쌀한 시원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우리 앞의 파도는 밀려오며 규칙을 만들고, 또 부서지며 그 규칙을 스스로 깨뜨렸다.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없이. 단지 바람과 햇빛, 그리고 바다의 일렁임만 있을 뿐이다. 촤르르 자갈을 쓸며 밀려왔다 흩어지는 흰 포말, 멀리 요트의 윤곽이 가끔 바람에 흔들린다. 모든 풍경의 행위가 나에게 최면을 거는 것 같다.
간간이 해변을 가로질러 무언가를 파는 남자들이 오간다. 주로 젊은 남자 청년들인데 간혹 나이 든 사람도 보인다. 쟁반을 들거나 커다란 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지만 그들이 파는 내용물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미트 아닐까?"
튀르키예의 국민 간식을 언급한 J의 추측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설마 마른오징어는 아닐 테고... 대체 뭘 파는 걸까?'
대부분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눈에 띌 수밖에 없고, 주기적으로 내 호기심을 끌었다. 잠시 후, 우리 앞 20m쯤 떨어진 자리의 관광객이 한 남자를 불러 세운다. 그가 무언가를 꺼내 건네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먹는다.
“뭐지, 도대체?”
내 궁금증이 정점에 달할 때쯤, 그 상인이 일어선다. 나는 얼른 손을 흔들어 그를 부른다.
그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짙게 그을린 피부, 굵은 이목구비, 짧은 머리엔 반쯤 새치가 섞여 있다. 그의 쟁반 위에는 홍합밥(미디예 돌마, Midye Dolma)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이거였구나!'
홍합밥을 쟁반에 들고 해변을 돌며 파는 것이었다. 카디쾨이의 식당에서 먹은 기억이 떠올라 가격부터 물었다.
“텐 리라(10리라)”
믿기 어려울 만큼 낮은 값이다. 내가 튀르키예에서 들어본 가장 낮은 화폐단위다. 이곳까지 달려온 성의를 봐서라도 몇 개만 사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노점 음식의 배탈을 두려워하는 J는 내 반응을 살핀다.
“텐 피스, 플리즈”
내 주문에 그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그는 쟁반을 무릎 위에 올리고, 홍합 껍데기를 연다. 홍합이 섞인 밥 위로 레몬즙을 짜 넣고, 내게 직접 건넨다. 그런 황송할 데가 있나. 그의 정성 어린 개인 서비스에 순간 아랍 왕자라도 된 기분이다. 입에 넣자, 레몬 향이 먼저 퍼지고 이어 홍합 향과 짭조름한 단맛이 뒤따른다. 이스탄불 카디쾨이의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다. 가격은 1/5도 안 되는데, 풍미는 오히려 더 깊다. 여행 중엔 가끔 이런 불균형을 만난다. 가격과 품질, 명성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들. 돈의 가치가 무너지고, 진심의 맛이 그 자리를 채우는 순간들을.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 하자 반가운 듯 웃었다.
“아이엠 쿠르드(Kurd),”
짧은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쿠르드족이라고?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쿠르드족의 사연이 그의 얼굴에 겹쳐 떠올랐다.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린다. 인구가 3,000~4,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그들은 오랜 기간 강대국과 주변국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며 고난을 겪었다. 터키 남동부, 시리아 국경 인근과 이라크 북부를 잇는 지역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민족이지만 그 민족에게 ‘국가’라는 건 손에 닿지 않는 단어였다. 1923년 로잔 조약이 맺어지면서 쿠르드족이 거주해 온 땅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으로 나뉘었고, 그들은 각 나라 안에서 소수민족이 되었다. 터키에서 쿠르드어 사용은 한동안 공적 공간에서 금지되었고, 수많은 쿠르드족 마을이 정부의 군사 작전과 내부이동명령 속에 폐허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들 중 일부는 쿠르드 노동자당(PKK)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쿠르디스탄의 독립과 자치권 확보를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서 흘러와 홍합밥을 팔고 있는 걸까. 나는 먹을 때마다 엄지를 치켜세웠다. 맛있기도 했지만, 해변에서 행상을 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그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는 내가 '엄지 척'을 할 때마다 미소를 지어 보인다. 100리라만 주기 미안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도, 바람은 잦아들지 않는다. 오늘 이곳에서 맞는 바람은 단순히 바다 건너 불어오는 공기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역동적'이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먼 수평선 위에 바람의 길이 그려지고 있다. 그 선을 따라 수천 년 동안 인간은 항해했고, 문명은 이동했다. 이곳은 아나톨리아의 끝, 에게해로 향하는 문턱이다. 지금 안탈리아만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언젠가 트로이의 항구에도, 에게해의 섬들에도 같은 결로 불었을 것이다. 그 바람은 돛을 부풀리고, 배를 밀어냈으며, 때로는 제국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스인들의 상선, 페니키아의 무역선, 로마의 군함들까지 모두 이 바람을 벗 삼아 떠났고, 이 바람에 좌초되었다. 항해는 언제나 인간의 도전이었고, 바람은 그 도전의 심판자였다.
오늘처럼 이렇게 거센 바람이야말로, 인간이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오래 사랑해 온 자연의 얼굴이 아닐까. 배를 띄우기엔 위험하지만, 역사를 움직이기엔 완벽한 날씨. 고대의 선원들도 오늘의 나처럼 이 바람을 느끼며,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를 망설였을 것이다. 아나톨리아는 그런 선택의 땅이었다.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과 서쪽에서 밀려온 파도가 이곳에서 만났다. 이곳을 거쳐 수많은 민족이 오갔고, 바다를 향해 문명을 띄웠다. 정지한 바다는 아름답지만, 문명을 낳는 건 늘 바람 부는 바다였다. 바람은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무형의 역사였다.
파도는 끊임없이 부서지고, 다시 밀려왔다. 천천히, 남은 맥주를 마신다. 짠 공기와 맥주의 쌉쌀함이 입안에서 섞인다. 이렇게 멍하니 바다를 보며 아무렇게 상념에 빠지는 시간이, 나는 너무 좋다.
수영도 하지 않고, 바다와 사람 구경을 한 것밖에 없는데 시간은 훌쩍 흘렀다. 해변에서 보내는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 모래는 소리 없이 발목을 덮어오고,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지며 오후의 중심을 서서히 밀어낸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에서처럼 해안의 모래는 제멋대로이고, 불가항력적이다.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멈춰 세우려 하면 더 빠르게 흘러내린다. 바닷가의 시간은 모래와 닮아 있다. 시간이 아니라, 모래가 하루의 양을 정해 흘려보내는 것 같다. 모래는 시간을 쌓고, 바람은 그것을 다시 지우고, 그 반복 속에서 어느새 저녁이 코앞까지 와 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도로 쪽으로 나가, 택시 정류장 벤치에 앉는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고, 바다는 낮보다 한층 짙은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문득,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해변에서 홍합밥을 팔던 쿠르드 사내다. 쟁반은 여전히 어깨 위에 들려 있지만, 걸음은 조금 느려져 있다. 해변만 도는 게 아니라, 이렇게 도로 쪽까지 이동하며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마치 친구를 만난 듯 그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다. 그 역시 나를 알아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몇 마디를 주고받다, 그에게 아내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먹었던 홍합밥이 바로 자기 아내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까주었던 홍합밥이 다시 떠올랐다. 바람과 햇살, 그리고 두 사람의 하루가 낡은 쟁반 위에 얹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방 속을 뒤적였다. 혹시 몰라 넣어두었던 마스크팩을 꺼냈다. '한국의 스킨케어 제품은 인기가 많다'는 말에 이어, “이거, 아내에게 주세요.” 하며 건넸다. 그는 잠시 당황한 듯했다.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하는 표정이다. 나는 웃으며 손으로 마스크를 펴 얼굴에 얹는 흉내를 냈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는 듯 소리 없이 웃는다. 주름진 얼굴에 햇살이 일렁인다. 그의 표정에서 이국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인간적 유대감을 느껴진다. 사소한 선물이지만, 그 안엔 우리가 잠시나마 서로의 하루를 이해하고 이어준 마음이 담겨 있다. 그가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깨 위에서 쟁반이 흔들릴 때마다 햇빛이 반짝인다. 언젠가 그와 그의 아내가 작은 식당이라도 열어 그 맛있는 홍합밥을 함께 팔 수 있기를, 나는 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저녁 무렵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햇빛과 바람에 노출된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나른한 평화가 자리했다. 오늘은 특별한 외식 대신, 익숙하고 위안이 되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여행 10일째 되는 날, 드디어 나는 캐리어 깊숙이 넣어둔 비상 라면을 꺼낸다.
낯선 주방에 퍼지는 라면 냄새는 세상 그 어떤 향수보다 강렬하고 달콤하다. 면이 끓어오르며 내뿜는 김 속에서, 한국의 부엌이 아득히 떠오른다. 주제넘게 '손가락 크기의 파만 있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김훈은 그의 산문집에서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 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라고 썼다. 라면을 인스턴트 식품에서 요리를 바꾸는 마법의 향신채가 파다. 마늘도 그렇지만, 우린 파가 빠진 국물 음식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파를 찾는 건, 냉동 파스타를 데우며 트러플을 찾는 격이다.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자.
라면 한 젓가락을 집어 들고, 후루룩! 뜨겁고 칼칼한 국물이 입안을 데우는 순간, 몸속 깊은 곳까지 고향의 위로가 번진다. 라면 한 그릇은, 어쩌면 한국 여행자에게 허락된 가장 즉각적인 ‘귀향’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만들기 쉽고 강렬한 맛을 선사한다. 이건 미각이 아니라, 기억의 맛이다.
라면을 먹다 문득 든 생각 - 이곳 튀르키예는 이상하리만큼 ‘면’ 음식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나라를 가도 한두 곳쯤은 보이는 라멘집이나 누들바가, 튀르키예의 거리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골목마다 케밥 굽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바다를 마주한 레스토랑에는 생선구이와 샐러드가 식탁을 채운다. 그러나 국수를 삶는 냄비의 김은 본 적이 없다. 처음엔 이상했다. 밀과 물, 이 단순한 조합이 왜 이곳에서는 면이 아니라 빵으로만 발전했을까. 생각해 보니 터키는 ‘빵의 나라’다. 식탁 위의 중심은 언제나 기본 빵 에크멬(Ekmek)이 있다. 국물 대신에는 수프(Çorba)가, 면 대신에는 밥과 빵이 자리한다. 밀은 반죽이 되어 국수 대신 피데(Pide)나 괴즈레메(Gözleme)로 구워졌다. 면은 존재하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에리슈테(Erişte)’라 불리는 전통 면 요리는 버터에 볶거나 요거트를 곁들이는 부식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
서구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내가 ‘국물의 나라’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인의 밥상에서 국물이 빠진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찌개, 탕, 국, 죽... 형태는 달라도 대부분의 음식은 ‘액체’와 함께 완성된다. 이 습식(濕食) 문화는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기후와 생활양식, 그리고 공동체적 정서가 빚어낸 문화의 결과물이다. 한반도의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길고 춥다. 이런 기후 속에서 국물 요리는 체온을 유지하고, 재료의 보존성을 높이며, 무엇보다 한 솥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공유의 음식’이 된다. 국물은 공동체의 상징이었고, 가족의 온기였다.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는 서구의 식탁과 달리, 한국인은 한 냄비를 중심에 두고 함께 숟가락을 넣는다. 그 안에는 배려와 질서, 그리고 나눔의 미학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서구의 건식(乾食) 문화, 빵과 고기, 샐러드 중심의 식탁 앞에 앉으면 나는 종종 허전함을 느낀다. 그 허전함은 단순히 입맛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기억, 몸에 밴 온도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국물이란 결국 ‘관계의 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열흘간의 여행 동안 가끔씩 뜨거운 라면 국물이 생각났다. 이 낯선 도시의 밤, 라면 한 그릇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고향의 온도’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