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th. 안탈리아(4)
러시안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작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미 말했다.
“전쟁은 영웅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드는 질서의 붕괴다.”
어제 달려봤던 길이어서 그럴까. 오늘 콘얄티 해변은 더욱 친근하다. 햇살은 어제보다 부드럽고, 바다 냄새는 조금 더 짙다. 파도는 규칙적인 호흡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패들 보드들이 떠다닌다. 10월의 아침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패기가 놀랍고, 부럽다. 이곳의 아침은 평화롭고, 동시에 살아 있다.
J가 '오늘은 해변 끝까지 달려보겠다'고 한다. 끝에서 반환해 오면 거의 14km의 거리다. 우리는 2km 정도를 같이 달리다가 속도를 달리했다. 나는 체력 안배를 위해 10km만 뛰기로 했다.
세상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태양이 수평선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그 빛은 파도 위에서 부서지고, 다시 되돌아와 내 뺨을 물들인다.
8km쯤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지쳐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였다. 바다를 향한 벤치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유모차, 그리고 돌이 채 안 된 듯한 아기가 누워 있다. 노인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느리고, 깊다. 아침 햇살이 그의 주름진 얼굴을 부드럽게 비춘다. 아이의 손이 허공을 더듬듯 흔들자, 노인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손을 감싼다. 인류가 대를 이어 전해 온 따뜻한 본능. 그 손짓과 눈길에는 언어보다 깊은 온기가 있다. 이 둘의 모습은 나를 멈춰 세우고 계속 지켜보게 하는 자력이 있었다. 이게 바로 평온함의 원형 아닐까.
"메르하바". 나는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처음엔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곧 부드럽게 웃는다. 그의 눈빛에는 낯선 이에게조차 벽이 없다.
“당신은 지금,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한다. 스마트폰으로 번역된 터키어 문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가 보이도록 활짝 웃는다. 그 미소는 조금 전 아이에게 건넨 그것과 다르지 않다. 부드러움과 평온이 담긴 표정.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도 그의 손에서 온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작별인사를 건넨 후에도,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노인의 어깨에 햇살이 내려앉고, 아이는 할아버지의 표정을 따라 까르르 웃는다. 볼수록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그 둘의 웃음에는 인간이 세상을 사랑하는 오래된 방식, 그 단순하고도 위대한 감정이 있었다.
“오늘은 꼭 수영을 해보자.”
우리는 그렇게 약속하듯 말하며 숙소를 나선다. 샌들을 신고, 커다란 장바구니에 타월과 튜브, 그리고 대형 비치타월을 차곡차곡 넣었다. 가던 길에 식료품점에 들러 맥주와 견과, 잘 익은 복숭아 몇 개를 더한다.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고, 공기에는 습기가 거의 없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시간을 이동하는 기분이다. 그 돌문 하나만 지나면, 고대와 현재가 교차된다. 이천 년 전 로마 병사들이 행진했을 길 위를 오늘은 여행객이 샌들을 신고 지나간다.
트램 정류장에서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길 건너 벤치에 앉은 초록빛 로마 병사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하드리아누스의 문과 연관 지어 조각상을 배치한 것 같다. 나는 장난스럽게 그 앞에서 질문하는 포즈를 취하며 J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로마 병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네, 이제 싸움은 끝났나?”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비롯해 로마사를 읽다 보면, 로마 군단병의 삶은 제국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개인의 고통과 희생이 집약된 힘든 여정이었다.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겨지긴 했으나, 병사 개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애환은 그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었다. 그들은 혹독한 규율과 훈련, 지속적인 전투 위험, 그리고 가족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을 격었다. 강인한 로마병정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신병은 로마 군단의 상징과도 같은 강인한 체력과 전투 능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되어야 했다. 이들은 사르키나(sarcina)라 불리는 개인 짐과 방패, 무기를 모두 합쳐 30kg가 넘는 완전 군장을 짊어지고 하루에 약 30km 이상을 행군할 수 있어야 했다. 평화 시기에도 이러한 고강도 훈련은 일상이었으며, 잠시의 나태함도 용납되지 않았다. 규율은 가혹했고, 대장의 지팡이는 사소한 실수에도 가차 없이 몸을 내리쳤으며, 중죄를 저지른 병사에게는 '1/10 형(반란, 겁쟁이 행위, 탈영, 명령 불복종 등 중대한 위반을 저지른 부대에 열 명 당 한 명을 제거토록 하는 징벌)'과 같은 극단적인 처벌이 내려져 공포 속에서 복무를 이어갔다.
로마 병사들은 제국이 뻗어나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파견되어 지속적인 죽음과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들은 게르마니아의 혹한, 파르티아의 사막, 브리타니아의 습지 등 제국의 국경 끝자락에서 정복 전쟁과 방어 전투를 수행해야 했다. 전투에서 살아남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제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목숨을 건 보상으로 주어지는 급여 구조는 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다. 겉으로 보이는 급여는 높았으나,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돈은 미미했다. 식량 배급비, 군복 및 장비 구입비, 그리고 저축까지 급여에서 의무적으로 공제되었기 때문에, 일반 병사가 실제로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약탈품이나 황제의 특별 수당에 의존해야 했으며, 이는 때때로 군대의 기강을 흔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20년에서 25년에 이르는 의무 복무 기간 동안 가족과의 단절은 병사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군단병은 복무 중 공식적인 결혼이 금지되었고, 이들은 고향과 멀리 떨어진 국경 요새에서 고독하게 지내야 했다. 이는 젊은이들이 군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희생을 제국에 바쳐야 했다. 이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은 기록에 온전히 담기지 못한 로마 군인의 가장 큰 애환이었을 것이다.
'이제 고통스러운 전쟁을 끝내고, 자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내 질문에 청동 로마병사는 묵묵부답이다. 대신 행인들이 내 연기를 보며 웃는다. 도시가 잠시 가벼워진다.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는 사이, 러시아 말을 쓰는 젊은 가족이 어느새 우리 곁에 섰다. 어린 남자아이는 장난감 삼륜차를 밀며 해맑게 정류장 주변을 돌아다닌다. (나중에 알게 된 꼬마의 이름은 '마크'였다.) 은색에 가까운 여자의 머릿결은 유난히 햇빛에 반짝이고, 듬직한 체격의 남자는 접이식 의자와 튜브, 작은 아이스박스를 양손에 들고 있다. 그들의 행색과 표정에서 여유가 엿보인다.
"설마, 저 장난감 삼륜차를 비행기에 싣고 온 것은 아니겠지?"
나는 J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잠시 후 러시아 여자는 내 모자를 보면서 남편도 비슷한 모자를 썼다며 인사를 건넨다. 밝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더니 장난스럽게 남편을 내 옆으로 밀어 한 앵글 안에 사진을 담는다. 남자는 멋쩍게 웃었고, 나는 그 웃음을 받아주었다. 그 몇 초 사이, 언어는 다르지만 타지의 이방인들끼리만이 나눌 수 있는 유대감이 형성된다.
트램이 도착하고, 우리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서툰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그들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경계 도시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3년 전, 물가가 아직 낮던 시절에 이곳 안탈리아 인근의 레지던스를 4년간 장기 임대로 계약했고, 필요할 때마다 이곳에 와 휴가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륜 자전거도 몰고 나올 수 있었던 거였다.) 한국은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다고 한다. 이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두 번째 삶의 장소’인 듯했다.
이들도 같은 경우인지는 몰라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이후 러시아인의 해외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해 동안 약 50만 명이 튀르키예로 왔고, 그중 12만 명 이상이 이곳 안탈리아에 정착했다고 한다. 지중해의 온화한 날씨와 비자 면제,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영향이다. 도심에는 러시아어 간판이 걸리고, 학교에는 러시아어 반이 생겼다.
차창 밖으로 붉은색 지붕과 야자수가 교차한다. 트램은 바다가 보이는 종착역에서 멈췄다. 러시아 가족은 아이의 모자를 고쳐 씌우며 웃는다. 그들을 보며 '인간은 자신이 머물 안전한 햇살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고향을 떠나야만 평화를 얻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야만 자유를 배운다. 해변의 자유와 평화를 찾아가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의 여정이 겹쳐 있었다. 트램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각자 늦은 여름을 향해 흩어진다.
해변의 물빛은 유리처럼 맑았다. 햇살이 부서지는 자갈 사이로 바다의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그러나 몇 걸음만 나가도 수심이 깊어져 발이 닿지 않는다. J는 잠시 멈칫했고, 나는 햇빛을 피해 모자와 긴팔, 긴바지를 그대로 입은 채 발끝만 물에 담갔다. 수백 명이 모인 해변에서 그렇게 입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 해변의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별로 상관 않는다. 나 역시, 티팬티 수영복 차림으로 상의를 벗은 채 선탠을 즐기는 여성들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J가 보기에는 내가 그렇게 보였어야 했다.)
트램에서 함께 내렸던 러시아 가족은 우리와 멀지 않은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금발의 꼬마, 마크는 모래놀이에 몰두한다. 러시안 커플은 의자에 기대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저 건장한 러시아 남자는 자국의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
이곳에서 그런 질문이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언제부턴가 '러시아'는 '전쟁'이란 단어와 분리되어 생각되지 않았다. 러시아의 전쟁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 사회가 금이 가는 소리이며, 수백만 명의 일상을 무너뜨린 사회적 지진이었다. 2022년 가을, 징집령이 내려진 뒤 수십만 명의 젊은 러시아 남성들이 조지아, 카자흐스탄, 튀르키예로 국경을 넘어 탈출했다. 그들에게 전쟁은 뉴스가 아니라, 자신이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전자 통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시 외곽마다 병역 사무소를 재가동하며 병역 회피를 차단했다. 그럴수록 도망치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한편,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특별 군사작전’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70%를 넘겼다. 그러나 그 지지는 대체로 참전과 거리가 먼 세대의 목소리였다. 총을 쥘 나이의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침묵했다.
러시안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작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미 말했다.
“전쟁은 영웅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드는 질서의 붕괴다.”
톨스토이는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등과 함께 러시아 문학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작가다. 그의 대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는 고등학교 문학 교육 과정에서 반드시 다루는 작품이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같은 중, 단편도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서 깊이 있게 학습한다고 들었다. 톨스토이가 작품에서 강조하는 '자유, 민중, 비폭력'의 교육 철학을 국민들은 그저 고전의 설교이거나 시험 문제로 취급하는 걸까? 문학의 가치는 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현실과 닿아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졌다.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러시안 부부를 다시 바라본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파도 소리가 겹친다. 햇살은 모든 사람을 비추지만, 그 의미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이런저런 상념과 함께 피스타치오를 주무르다, 한 알을 까서 입에 넣는다.
톨스토이가 아니더라도 역사와 문학은 ‘정의’라는 이름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자를 경계하라고 충고해 왔다. 욕망의 탈을 쓴 가짜 정의를 독점하는 순간, 그것은 곧 권력이 되고, 권력은 언제나 피의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수천 년 동안 배워왔지만, 끝내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허술하고 모순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보편적 정의를 말하면서도 자기 안락을 놓지 못하는 존재.
문득 디오게네스가 떠오른다. 한때 여기 안탈리아 땅까지 지배했던 알렉산더가 햇볕을 쬐고 있는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당신의 그림자가 나를 가리지 않도록 비켜서 주시오."
그 한마디는 권력과 지배의 욕망을 비웃는 가장 단순한 선언이었다. 알렉산더가 땅을 정복하며 자유를 확장하려 했다면, 디오게네스는 모든 소유와 욕망을 정복함으로써 자유를 성취했다. 그는 조르바의 조상이자, 겁 없는 선배였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에 범접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가 알렉산더 앞에서 햇볕을 즐겼을 (삐딱한)자세 정도는 나도 흉내 낼 수 있었다. 모로 누워 한 팔로 머리를 괴고 비스듬히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위로 햇살이 일렁이고, 그 빛이 부서져 내 몸 위로 밀려왔다. 인간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그 사이 물의 깊이와 온도를 가늠하던 J가 튜브를 물 밖으로 던진다. 그리고 맨몸으로 파도 속으로 달려든다.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거센 물결 속에서 J의 몸이 반짝인다. 물 위에 솟았다가 잠기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본 진짜 '몸의 자유’였다. 수영이란 참 순수한 놀이다. 몸과 숨, 물과 빛이 하나로 녹아들며, 파도와 하나가 된다. 나이를 잊고 모두 아이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주변엔 각자의 여름이 반짝였다. 검은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자갈 위에 엎드려 햇빛을 모으고, 바위 위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차례로 바다로 뛰어든다. 물보라가 터질 때마다 짧은 환호가 터진다. 두 명의 청년은 젖은 머리를 털며 담배를 피웠고, 멀리 히잡을 쓴 여인 둘은 해변 끝자락에 앉아 발끝으로 파도를 만진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몸짓, 다른 신앙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두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나는 해변 동쪽의 큰바위 옆, 그늘이 드리워진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워 이 모든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맥주병은 모래에 발을 묻은 채 서서히 줄어들고, 피스타치오는 자꾸 나를 대신해 껍질을 벗어 던졌다. 파도 소리와 해변의 웃음소리가 나른한 음악처럼 들렸다. 따뜻하고 느긋한 평화. 축복 같은 시간이여.
도시의 오후는 해변보다 한결 느리게 흘렀다. 정류장 앞,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풍경은 햇볕이 그린 인상파 그림처럼 보인다. 그들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없다. 기다림마저 즐기는 모습이다.
맞은편 인도에는 한평 남짓의 푸른 천막이 서있다. 복권 노점이다. 작은 카트 안에 반짝이는 종이 조각들이 무심히 쌓여 있다. 복권을 판매하는 여인은 태양빛에 그을린 얼굴로, 조용히 사람들의 손끝을 바라보고 있다. 한 남자는 복권을 고르다 말고, 그 종이를 햇빛에 비춰본다. 번호가 더 선명해 보이는지, 잠시 미소를 짓는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복권 사랑'은 유난하다. 그 사랑은 단순한 오락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도시 어디를 가든 곳곳에 복권 판매점이 서 있다. 국영복권 Milli Piyango는 한 해 약 30억 장 이상이 판매된다. 성인의 약 70%가 한 번 이상 복권을 구입하고, 매년 1월 1일, ‘신년 대추첨’ 방송이 전국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나라다. 어떤 이는 부를, 어떤 이는 노후를, 어떤 이는 단지 행운이라는 단어 자체를 푼돈으로 산다. 어찌 보면 거리의 복권 노점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니다. 그곳은 희망의 작은 무대다. 부유한 사람도, 노동자도, 관광객도 같은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손에 쥔다. 그 순간만큼은 사회적 계급이 사라진다. 행운의 확률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니까. 물론 대부분은 그 확률의 냉정함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요행의 의식은 반복된다.
J도 가끔, 특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 복권을 산다. 여행에 필요한 3가지(용기, 체력, 돈) 중에 그녀에게 부족한 딱 하나, '원하는 여행을 할 만큼의' 돈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J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행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 신기하지만, 여행의 숙취를 해독하는 방법이려니 이해한다. 결국 한 달도 안 돼 로또를 사는 5,000원도 아까워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숙소로 가는 칼레이치 골목 안쪽에서 도자기 가게가 눈에 띄었다. 색색의 접시와 찻잔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붉은색, 코발트블루, 에메랄드, 금빛 등 모든 색이 서로 다른 언어로 재잘대는 듯하다. 손님들은 천천히 진열대를 돌며, 마음에 드는 컵을 들어 빛에 비춰본다. 그 표정은 조금 전 복권을 고르던 남자의 표정과 닮아 있다. 행운 대신 아름다움을 고르는 행위, 어쩌면 이건 이 도시의 또 다른 복권일지 모른다. 난 이쪽 복권이 더 마음에 든다.
내일은 이즈미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해 질 녘 숙소로 돌아오는 길, 문득 육식이 당긴다. 바다 앞에서 놀다 온 탓인지, 며칠 동안 채소와 과일로만 지내던 탓인지 몸이 단백질을 강하게 요구한다. 마트에서 닭다리 정육을 한 팩 골라 담는다.
숙소의 작은 프라이팬에 간장과 꿀을 섞고, 굵게 썬 양파를 넉넉히 넣어 볶는다. 간장이 졸아들며 풍기는 냄새가 침을 불러 낸다. J는 익숙한 손길로 샐러드를 만들고, 계란을 삶는다. 물놀이로 허기졌던 터라 저녁 식사는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피로가 풀어지며, 지중해 햇빛에 잘 마른 행복감이 하루의 끝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늦은 시간까지 밤공기에 온기가 남아있다. 이 즈음의 안탈리아 공기는 습하지 않고, 밤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와 도심을 느리게 식힌다. 이 도시는 빛과 온도, 사람의 속도가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지중해의 해안선과 헬레니즘의 흔적이 현대의 트램 선로 위에 겹쳐져 있다. 짧은 체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한 달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기후는 온화하고, 음식은 다양하며, 바다와 유적, 시장과 골목이 느린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땐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와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이 도시의 시간 속에 한동안 섞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