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th. 이즈미르(2)_에페소스
Ephesus was once a city of gods, then of men, and finally of silence.
에페소스는 본래 신들의 도시였고, 그다음에는 사람들의 도시였으며, 마침내는 침묵의 도시가 되었다.
흐리고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조깅은 생략하기로 했다. 여유롭게 조식을 먹은 뒤 우산을 받쳐 들고 숙소를 나선다. 골목은 밤새 내린 비로 촉촉했고, 비탈진 구석마다 습기를 머금은 냄새가 피어올랐다. 벽돌 틈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담벼락 아래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웅크리고 있다.
오늘은 고대 유적지 에페소스를 가보기로 한 날이다. 대중교통을 여러 번 갈아타고 에페소스가 있는 셀축(Selçuk)으로 가는 루트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빨간등이 켜졌다. Hilal역에서 Izban으로 갈아타는 도중, 교통카드 잔액이 부족해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다. 교통카드 충전기를 찾아보니 현금, 그것도 터키 리라만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유로가 안된다고?'
툭하면 유럽의 일원이라고 목소리 높이고, 축구도 유럽리그에 참가하면서 유로를 받지 않다니... 비상용으로 유로 화폐를 갖고 왔지만 소용이 없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처의 은행이나 ATM을 찾아보라는 역무원의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로 들렸다. '배고프면 식당 찾아보세요' 같은.
주위를 둘러보다 근처 의류 상점에 들어가 유로 지폐를 내밀었다. '리라로 바꿔줄 수 있냐'는 물음에 상인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옷을 사러 온 손님도 아니고, 환전은 수고만 되는 일인 모양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10% 환전 수수료를 떼고 달라'고 하자 그제야 계산기를 두드린다. 튀르키예 밖에서는 쓸 수도 없는 리라를, 유로를 주면서 구걸해야 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래도 어쩌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그렇게 겨우 얻은 리라로 교통카드를 충전해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사이 기차는 한대 지나가 버렸다.
Izban을 타고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풍경은 차분하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회색빛 하늘엔 구름이 낮게 드리웠고, 창밖의 풍경은 농지와 산이 번갈아 나타난다. 기차 창문에 맺힌 빗물이 흘러내리며, 초록빛 밭고랑이 일렁인다. 기차 안은 조용하다. 하지만 넋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Tepeköy역에서 다시 한번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역 이름을 확인해 가며 Tepeköy역에 무사히 내렸다.
그런데 플랫폼 전광판에 표시된 셀축행 열차 시간은 내 눈을 비비게 했다. 다음 기차는 2시간 후에나 있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이전 기차는 3분 전에 이미 출발했다고 한다.
'3분 후 도착이 아니라, 3분 전에 이미 기차가 출발했다고?'
믿기지 않았다. 승객이 기차를 연계해 탈 수 있도록 배차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자주 오지도 않는 기차가 이미 떠나 버렸다니. 이곳의 철도운행 시스템도 나름의 논리가 있겠지만, 여행자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난감해하는 우리를 본 역무원은 “길 건너편 역으로 가보라”고 한다.
'다른 기차역이 또 있다고?'
오늘 튀르키예 역무원은 나를 여러 번 놀래키며 물음표를 달게 한다. 서둘러 뛰어가 보니 허름한 간이역이 하나 더 있다. 오래전부터 있던 간선 기차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곳도 다음 셀축행 기차는 2시간 반 후 도착이다.
셀축역에서 에페소스까지 왕복 한 시간, 유적을 둘러보는 데 최소 2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이즈미르로 돌아가는 막차를 셀축역에서 3시 50분까지 타야 한다. 계산은 빠르게 돌아갔으나 묘수가 없다. 오늘 일정을 놓치면, 이즈미르 여행 일정이 엉켜버릴 뿐 아니라 하루를 고스란히 날려 버리게 된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 나이 지긋한 역무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방법을 물으니, '택시를 타면 2000~2500리라(약 7~9만원)의 요금을 요구할 것'이라며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순간 망설였다. 그러나 여행에서 시간은 돈보다 우선해야 하는 자원이다. 지도 앱을 켜서 역 주변에 가까운 택시 대기소를 찾아갔다. 마침 중년의 기사가 창밖으로 한 팔을 내밀고 있는 택시 한 대가 서 있다.
“셀축, 아니 에페소스까지 갈 수 있나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거긴 멀다, 2000리라!”라고 잘라 말한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Ok, Let's go.”
흥정 없는 콜 사인에 기사가 오히려 당황한 눈빛이다.
택시가 출발하고 잠시 후 라디오에서 터키 팝이 흘러나온다.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J와 난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다.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다시 에페소스로 가는 길 위에 있다.
“불운 가운데 행운이네.”
여행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문제와 갑작스러운 변수들을 피할 수 없다. 이때 누구를 탓하거나, 이유를 따지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벌어진 문제를 시작점으로 대안을 찾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대안에는 '쿨하게 포기하기'도 포함되어 있으면 좋다.)
세상 어디서든 문제는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관건은 문제를 대처하는 자세다. 여행이 아닐지라도 우리 사는 세상은 돌발 변수 투성이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면 인생이 아니지."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고, 그 지점에서 다시 균형을 잡을 것. 여행이 가르쳐 준 지혜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혀 번지며 뒤로 흘러간다. 운전사가 부지런히 핸들을 돌리는 동안, 창밖에는 낮게 깔린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 안는다. 창밖으로 ‘Efes(Ephesus) 1km’라는 갈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유적지에 다다르자 빗줄기가 잦아든다. 젖은 공기 속에서 햇살 한 줄이 내려앉고, 돌길은 그 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빗물에 젖은 돌길을 밟을 때마다 신발 밑창이 조금씩 미끄러진다. 이 길을 따라 2천 년 전 사람들도 같은 바람을 맞으며 걸었을까?
조금 걸어 들어가자, 아르카디안 거리의 끝에서 거대한 원형극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2만 5천 명을 수용했던 이 극장은 로마 제국 시대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기원전 3세기에 처음 세워졌고,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시대에 대리석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에서는 음악과 연극이 울렸고, 때로는 정치와 종교가 격돌했다. 바울이 이곳에서 우상 숭배 반대 설교를 하다 분노한 시민들에게 쫓겼다는 기록도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귀를 기울인다. 무대는 텅 비어 있지만, 계단형 객석 위로는 여전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발길을 돌려, 원형극장 맞은편의 에페소스 영상 상영관에 들어가 본다. 에페소스의 역사가 담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곳이다. 20여 분간 펼쳐지는 3D 영상은 기대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상 중간에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과 바다의 파도를 교차시키며 나오는 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Ephesus was once a city of gods, then of men, and finally of silence."
에페소스는 본래 신들의 도시였고, 그다음에는 사람들의 도시였으며, 마침내는 침묵의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스는 본래 여신 아르테미스의 도시였다. 그녀는 풍요와 생명의 여신이자, 동시에 사냥과 달의 신이었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돌기둥 하나만 외로이 서서, 신화를 대신하고 있다.
대리석 길을 따라 아고라로 들어선다. 기둥 토대만 넓게 흩어져 있다. 상업 아고라였던 이곳에서는 향료와 비단, 청동과 도자기, 때론 노예까지 거래되었다. 화려한 흔적은 희미해지고 넓은 빈터에 큰 나무들만 생기를 유지하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셀수스 도서관이 정면에 나타난다. 젖은 대리석에 반사된 햇빛이 네 개의 기둥을 타고 번져나간다. 기둥 사이에는 ‘지혜(Sophia)’, ‘지식(Episteme)’, ‘이해(Ennoia)’, ‘덕(Arete)’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서 있다. 그리스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이 도서관의 정면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돌에 새겨진 학문과 정신의 무게가 묵직하다. 2세기 초, 총독 줄리우스 셀수스의 아들이 지식의 힘으로 아버지를 기리고자 세운 이 건물은 한때 1만 2천 권의 두루마리를 품었다. 그 방대한 장서를 보호하기 위해 건물은 이중벽으로 설계되었고, 습기와 온도를 조절하는 정교한 통풍 구조를 갖추었다고 한다.
도서관의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용두사미의 내부는 약간 허무했다. 도서관의 외벽은 속지를 잃어버린 거대한 책 표지처럼 보였다. 한때 수많은 두루마리와 사상의 언어가 이 안을 채웠을 것이고, 그 목소리들은 지금도 대리석 틈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책이 불타고, 제국이 무너져도 인간은 여전히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려는 존재’라는 사실. 그 오래된 진심이 이곳에서 빛나고 있다.
도서관 오른편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은 해방된 노예 두 사람이 황제에게 바친 헌정 건축물이다. 노예에서 시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표정이 어떤 것이었을지, 문턱을 넘으며 잠깐 상상해 본다.
쿠레테스 거리로 올라가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과 가까워진다. 대리석 바닥은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마다 미끄럼 방지 홈이 파여 있고, 중앙에는 빗물길이 낮게 패여 있다. 밤에는 가로등이 켜졌고, 사제들의 행렬이 성스러운 불을 모시고 지나갔다고 한다. 이름만 남은 신전과 상점 터가 서로 기대듯 이어진다.
길가의 공중화장실은 구조가 명확하다. 반원형으로 놓인 대리석 의자, 앞쪽으로 흐르던 물줄기, 칸막이는 없다. 이곳에서 남자들이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눴다니, 공적 공간과 사적 행위의 경계가 지금과는 달랐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바로 위쪽의 스콜라스티카 목욕장에 올라서면 당시의 생활 방식이 더 분명해진다. 냉탕과 온탕, 탈의실, 난방과 배수설비가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는 큰 재산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이런 호사와 과도한 오락, 거대한 시설 유지가 제국을 서서히 약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모든 원인을 한 줄로 요약할 순 없지만, 돌로 지은 욕탕의 무게가 시대의 균형을 조금씩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문명은 때로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조각의 완성도가 높다. 반원형 아치와 코린트식 장식 사이로 신화의 얼굴들이 남아 있다. 맞은편 니케의 부조는 날개와 월계관이 또렷하다. 문장 하나 없이도 이 도시의 성향을 설명한다. 헤라클레스 문은 보행자 길의 폭을 의도적으로 좁혀 수레를 막았다. 관리된 질서가 건축선에도 남아 있다. 옆에 멤미우스 기념비는 술라의 전쟁과 복수, 그리고 도시가 치른 대가를 떠올리게 한다.
테라스 하우스 구역은 당시 귀족들의 주거지로, 유리 지붕 아래 보존과 발굴이 동시에 진행되는 '열려 있는 박물관'이다. 바닥의 모자이크 색감이 놀랍다. 물고기와 포도, 기하무늬가 방과 방을 이어주고, 벽에는 프레스코가 아직 숨을 쉬듯 얇게 남아 있다. 바닥 난방과 중정의 배수, 방 배치까지, 주거라는 기능이 미감과 결합하면 어떤 밀도를 띠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현장에서 층위를 드러낸 채 설명을 곁들이는 전시 방식도 좋다. 관람객은 완성품을 보는 대신, 집이 지어지고 고쳐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그대로 본다. 이 방식이 유적을 살아 있는 문장으로 바꿔준다.
다시 도서관 앞으로 내려오면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 하나가 보인다. 유흥가로 이끄는 표식이라고 한다. 발 그림이 가리키는 방향이 유곽의 입구 쪽이고, 발 크기는 출입 가능 여부의 기준이다. 그려진 발보다 작으면, 즉 미성년이면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여인의 얼굴이나 하트 모양, 장부를 뜻하는 네모 그림까지 곁들여진 것은 '외상 가능'의 신호였다는 해석도 보인다. 지성과 쾌락, 종교와 상업이 한 도시의 지면 위에서 어떻게 공존했는지, 이 작은 상징이 담담히 말해준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솔직하고, 도시는 그 욕망의 지층 위에 세워진다.
대리석 거리를 따라 원형극장 쪽으로 다시 걸어간다. 트라야누스 분수 자리에는 아직 물자국이 남아 있고, 물이 흘렀던 자리에 지금은 바람이 흐른다. 원형극장을 지나 항구로 뻗은 아르카디아 거리로 내려선다. 폭 11미터의 대리석 도로가 나란한 기둥들 사이로 곧게 이어진다. 비잔틴 황제 아르카디우스가 손질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고, 밤에도 등불이 켜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케이드(arcade)'라는 말이 이 거리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항구로 이어지던 하버 스트리트 끝을 바라본다. 바다는 멀어졌지만, 길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있다. 에페소스는 여러모로 대단한 고대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마저도 불과 20퍼센트만 발굴된 상태라니, 나머지 80퍼센트는 여전히 땅속 어둠에서 시간의 흔적으로 숨 쉬고 있는 셈이다.
비에 젖은 대리석 길을 걸어 나오며, 이 길 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였는지 생각한다. 문득 이곳 에페소스에서 태어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떠오른다. 그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 속에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질서(로고스)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서양 철학의 선구자다. 만물의 '변화'를 강조한 그의 사유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더 멀리는 헤겔까지 이어졌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2,500년 전 그의 말은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며, 그 변화 속에서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가 발을 담근 순간 강물은 이미 다른 물이 바뀌고, 그 강물에 들어선 나 또한 이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니 오늘 내가 마주한 에페소스 역시, 수많은 여행자가 보았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곳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흐르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시간’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변화의 강물 속에서 나 역시 조금은 달라진 사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운 좋게 돌무쉬의 빈자리를 얻어 셀축 역으로 돌아간다. 창밖의 유적지 풍경이 천천히 뒤로 밀려난다. 이어지는 젖은 들판, 올리브 나무, 낮은 언덕들. 비에 씻긴 대지의 냄새를 맡으며, 며칠 전 다녀온 페르게가 떠올랐다. 이 두 고대 도시는 무엇이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에페소스는 “학문과 무역이 꽃피운, 로마 아시아의 수도”였다. 지중해를 건너온 문화와 사상이 이곳에서 교차했고, 도서관과 극장, 신전과 시장이 함께 숨 쉬던 복합 도시다. 지식과 신앙, 상업과 권력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타협하며 하나의 문명을 이루어 냈다. 인간이 남긴 흔적이 서사처럼 이어지는 곳, 그래서 에페소스는 ‘이야기의 도시’로 연상된다. 반면 페르게는 “질서와 균형의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계획적 구조로 설계되어, 물길과 도로가 정확한 각도로 교차하고 건축물들은 이성의 언어로 배열되어 있다.
에페소스가 ‘문화의 다양성’을 품은 도시라면, 페르게는 ‘통치의 질서’를 구현한 도시다. 하나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품은 이야기의 무대였고, 다른 하나는 체계와 균형으로 완성된 구조의 도시다. 페르게는 이성이 만든 도시, 에페소스는 감정이 새긴 도시랄까. 하나는 균형 속의 미학으로, 다른 하나는 서사 속의 인간미로 남는다. 결국 두 도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같은 결론에 닿는다. 인간이 남긴 흔적은 결국, 질서와 혼돈이 교차하는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셀축 도심에 내려 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아쉽게도 에페소스 고고학 박물관은 시간상 들르지 못했다. 그곳에는 에페소스 전역에서 발굴된 수만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신상, 테라스 하우스에서 출토된 모자이크와 생활 도구, 대리석 조각과 도자기, 장식품들이 시대별로 정돈되어 있다고 한다. 유적지에서 보았던 돌기둥과 벽화의 흔적들이 박물관 안에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될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서울 종묘공원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십 명의 노인들이 찻집에 모여 테이블마다 둘러앉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처음엔 마을에 무슨 보드게임 대회라도 열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들이 하는 것은 터키 전통 보드게임 '오케이(Okey)'다. 진지하게 숫자 타일을 맞추고, 옆자리에서는 젊은 종업원이 작은 유리잔에 차이를 담아 연신 나른다. 이곳은 '차이하네(çayhane)'라고 부른다. 하루 대부분을 차와 담소로 보내는 터키 노인들의 사랑방이다.
튀르키예의 찻집은 시간이 느릿하다. 누군가는 신문을 읽고, 누군가는 조용히 담배를 피운다. 말이 많지도 않고, 음악이 울리지도 않지만 그 고요 속에 잔잔한 평화가 있다. 이곳의 노년 시간은 그리 외롭지 않을 듯하다. 매일 익숙한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떠들고, 카드를 섞을 체력이 있는 한.
기차역 플랫폼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대기는 오후의 먼지를 씻어낸 듯 맑다. 이번에는 기차를 놓칠 리 없어 안심이 된다. 이즈반 열차가 출발하자, 차창 너머로 셀축역의 붉은 지붕이 작아진다. 에페소스로 오던 불편한 여정이 떠오른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도시가 여전히 '쉬운 곳이 아님'을 알려주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머물러, 느끼는 자만이 그 돌 위의 시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서두르는 자에게 고대 도시는 그저 유명한 폐허일 뿐이다.
숙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르귄에게서 전화가 왔다.
"6시까지 집 앞으로 갈게."
서둘러 재정비를 하고 나가니 그는 이미 도착해 있다. 몇 번의 영상통화 덕분에 그가 낯설지 않다. 반갑게 악수와 포옹을 나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왔을 텐데,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웃는다. 차로 향하며 "우리 어디로 가나요?" 묻는 내게 그는 웃으며 짧게 대답한다.
"우리 집."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이 커졌다. 그들도 오늘 출근을 했을 텐데, 식당이 아니라 집 초대라니. 낯설지만, 현지의 가정을 보고 싶었던 우리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부담을 안고 차에 올랐다.
그의 집은 오스만가지 구역에 있었다. 숙소에서 불과 12킬로미터 거리지만, 퇴근길 교통 체증 탓에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가는 동안 도시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점점 생활의 냄새가 짙어진다.
현관문이 열리자, 세브기가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맞는다. 타국의 가정집에서 들은 한국말 인사는 예상치 못한 감동이었다. 아들 찬도 수줍게 인사한다. 맑은 눈빛이 하이틴 영화 주인공 같다. 거실에는 이미 따뜻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식사 전, 세브기는 손수 준비한 선물이라며 스카프, 손뜨개 받침, 각종 견과류와 로쿰, 그리고 푸른 유리로 만든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 행운을 가져다주고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는 터키 부적)' 내민다. 많이도 준비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과 화장품을 건넨다. 그녀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 이름을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식탁 위에는 은박지 포장 속 쾨프테(köfte)가 놓여 있다. 양고기와 향신료가 섞인 케밥 냄새가 방 안을 채운다. 세브기는 "근처 맛집에서 시켰어요, 시간이 없어서요"라며 쑥스러워한다. 맞벌이 부부가 평일 저녁 손님을 초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 마음이 뭉클했다.
음식을 추가로 내오고 식탁은 금세 가득 찬다. 메르지멕 초르바스(렌틸콩 수프)는 지중해의 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콩 요리를 좋아하는 J가 반색한다. 야프락 사르마(포도잎 쌈)은 새콤한 레몬 향을 품고 있다. 색색의 채소가 어우러진 러시아식 샐러드와 요거트 샐러드는 식탁에 화려함을 더한다. 식탁 옆에는 잔마다 아이란(ayran)이 담겨 있다. 짭조름한 고기요리에 제격이다. 세브기는 한국말로 "김치가 있으면 좋을 텐데" 라며 웃는다. 그 말에 J와 나도 따라 웃는다.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이렇게 닿는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세브기는 직접 만든 바클라바를 내온다. 시럽이 반죽 사이로 스며들어, 한 입 머금는 순간 달콤함과 견과의 향이 퍼진다. 이들 부부가 차려낸 식탁은 전형적인 터키의 집밥 코스다. 수프, 샐러드, 메인, 디저트. 마지막으로 세브기는 차이를 내오며 한국어로 말한다.
"한국 친구가 생겨서 정말 좋아요."
그 순간, 이즈미르라는 도시가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이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나눈 자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 자리다.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온기다. 이날, 이즈미르의 한 평범한 아파트에서 우리가 만난 식탁이 그랬다.
이들의 저녁상은 한 나라의 맛이 아니라, 한 나라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에게해의 푸른 저녁, 이즈미르의 작은 식탁 위에는 국경도 언어의 차이도 없었다. 남은 건 오직 따뜻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만들어낸 진한 추억이었다.
** 에페소스(Efes) 여행 경로
* 에페소스 및 셀축 주변의 여행 명소
- 셀축: 에페소의 역사적 유적지와 아르테미스 신전 터 등 고대 유산을 품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의 집과 더불어 고대 유적 관광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는 도시다.
- 에페소스: 고대 로마 제국의 아시아 속주 중심지였던 곳으로, 셀수스 도서관, 대극장 등 2천 년 전 로마 문명의 웅장함이 완벽하게 보존된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 성모 마리아의 집 (Meryem Ana Evi):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 근처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거주지로, 가톨릭과 이슬람 모두에게 중요한 성지 순례지이다.
- 쉬린제 마을: 19세기 그리스 양식의 고즈넉한 가옥들이 산비탈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로, 수제 과실주와 전통 수공예품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근교 여행지이다.
- 쿠샤다시: 에페소와 인접한 에게해 최대의 리조트 및 크루즈 항구 도시로, '비둘기 섬'의 요새와 아름다운 해변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