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시메의 바람, 인연의 무지개

14th. 이즈미르(3)_체시메

by 조르바와 춤을


요리는 언어보다 오래된 문화다.
불과 향신료,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味學).
한 입의 맛에는 그 땅의 기후와 역사, 생활의 오래된 습관까지 녹아 있다.
우리는 그 맛을 통해 언어보다 먼저 자리 잡은 삶의 방식을 배운다.


1.

아침부터 창밖이 흐리다. 젖은 대기에 기온까지 낮아 오늘도 조깅은 어렵겠다. 사흘째다. 계획을 세운 여행자에게 날씨는 종종 신의 개입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조용한 장난. J는 '동네 산책이라도 하고 오겠다'며 작은 우산을 들고나간다. 그사이 나는 지난 사진과 메모를 정리한다. 메모에 살을 붙이니 어제의 일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세세하게 쓸수록 기억의 장면은 더욱 또렷해진다. 글은 평면의 사진을 일으켜 세워 입체감을 주고, 생동감을 입힌다. 글쓰기는 요술이고 마법이다.


간단한 메모 정리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계란을 삶고, 야채를 볶고, 식탁을 세팅한다. 바깥의 회색 날씨와 달리 실내는 조용하고 따뜻하다. 간단히 식사 준비를 마치고, J가 오기 전에 샤워를 먼저 하기로 한다. 샤워기 레버를 틀며, '다 좋은데, 물줄기가 너무 세서 따가울 정도야.'라던 J의 말이 떠오른다. 수압이 세서 샤워기 헤드로부터 멀리 떨어져 씻어야 했다. 수압을 조절하려 샤워기 헤드를 돌렸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있는 힘껏 헤드를 비틀자 샤워기가 손에서 튕겨나간다. 바닥에 떨어지며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사방으로 물줄기가 튀고, 내 정신도 줄줄 샌다. 낭패다. 떨어져 나간 플라스틱 부품을 샤워기 헤드에 끼우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이를 어쩌지. J가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샤워기라고 했는데...' 말이 산책이지, J는 분명히 어디든 뛰고 들어와 샤워부터 할 터였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놓아야 한다.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니던 스카치테이프와 부엌칼을 들고 와 부러진 헤드에 집도를 시도했지만, 부질없다. 재생 불가의 골절상. J가 돌아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잠깐 얼었다. 하지만 바로 J의 얼굴에 향해 정면 승부를 했다.

"니가 나보다 샤워기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서. 목을 비틀어 죽였어!"

J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 나와 깨진 샤워기 헤드를 번갈아 쳐다보다,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혼자 추도식이라도 하는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물소리가 나길 한참 후,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로 나온 J의 한마디.

"저거 얼마 물어줘야 할까?"

생각보다, 여자는 현실적이다.


비에 젖은 숙소 골목의 아침


2.

열 시가 조금 넘어 에르귄이 숙소 앞으로 왔다. 우리의 일정표에 체시메가 적힌 것을 보고, 그는 “어떻게 갈 생각이냐”고 물었었다. 렌터카 없이 대중교통으로 다녀오기 어려운 동선이라는 걸 알고, 결국 하루 휴가를 내 우리를 직접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며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그는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며 웃었다. 말투는 담백했지만, 그 속에는 터키식 환대의 결이 묻어 있었다. 이 나라에서의 친절은 계산이나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밴 태도 같다. 오스만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손님맞이의 문화가 지금도 일상의 예의로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마음을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꼭 갚자.’ J와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차에 올랐다.



체시메로 가는 고속도로. 가는 동안 날이 갰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일기 예보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체시메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매끄럽고 한적하다. 바람은 바다 쪽에서 불어와 차창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들판은 이미 수확을 마쳐 황금빛 밀 이삭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그 너머로 에게해의 푸른 선이 희미하다. 이즈미르에서 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체시메는 고대 이오니아 문명의 끝자락에 놓인 도시다. 기원전 11세기, 그리스에서 건너온 이오니아인들은 이 땅에 도시국가를 세웠고, 그들의 항구는 오랜 세월 바람과 언어, 인간과 문화가 교차하는 공간이 되었다. 바람은 그들의 운명이었고, 바다는 문명이 흘러가는 길이었다. 지금도 체시메의 공기에는 그때의 혼합된 향이 남아 있다. 에게해의 바람은 유목과 항해, 전쟁과 교역의 기억을 품고 있어 그 바람을 맞고 있으면 마치 세계의 경계가 잠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3.

체시메 도심에 들어서자 골목마다 작은 상점들이 다정하게 줄을 이루고 서 있다. 식당, 카페, 액세서리 가게, 기념품 숍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자를 불러 세우고, 카페 앞 의자에 앉은 노인들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그 시선엔 호기심보다 오래된 항구 마을의 관조가 깃들어 있다. 조금 더 걷자, 에르귄이 가리키는 아이스크림 노상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고, 체시메가 속한 이즈미르 지역 특산인 사카즈(damla sakızı)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마스티하 수액 특유의 은근한 향이 먼저 올라오고, 차갑고 조용한 단맛이 혀 위에 번진다.


다시 골목을 걸어 또 다른 카페에 들어선다. 문을 여는 순간, 안쪽은 이미 현지인들의 대화와 차이 향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야외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진한 차이를 한 잔씩 주문한다. 에르귄은 동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옆테이블 노인들과 터키어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터키어는 말끝에 의미가 차곡차곡 덧붙는 구조라, 문장이 흘러가며 모양을 바꾸는 느낌이 있다. 뜻은 하나도 모르지만, 외국어 특유의 리듬이 일정하게 파도를 만들고, 말미의 억양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마치 말이 아니라 낯선 악기의 음색을 듣는 기분이다. 뜨거운 차이를 한 모금 마시며, 나는 이 언어가 갖는 감정의 온도를 가늠해 본다.




체시메 관광지구 안 골목 풍경
현지인과 동행하니 궁금한 것을 바로 묻고, 확인할 수 있다.


조금 더 걸으니 중심가로 들어선다.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밝은 도심이다. 학생들이 푸른 교복 차림으로 웃으며 우리를 지나치고, 한쪽에는 임시 노상 시장이 열려 있다. 싱싱한 채소와 향신료, 여러 종의 견과와 말린 과일들이 좌판 위에서 색의 향연을 펼친다. J는 다양한 채소를 보며 생기가 돈다. 한 상인이 씨앗 몇 알을 건네며 “먹어보라”고 한다. 이름은 모르지만 해바라기씨만 한 크기의 알갱이는 씹을수록 달고 고소하다. 시장 옆 카페에서는 노년의 남자들이 ‘오케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튀르키예 구도심 어딜 가나 이런 풍경은 흔하다. 노천카페 옆에는 탐스럽게 익은 석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가지마다 석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만, 따는 이는 없다. 우리 시골의 가을 감나무처럼, 풍요는 늘 약간의 무심함 속에서 익어간다. J는 석류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이국의 촉감을 즐긴다.


체시메 거리는 활기차고, 생기가 돈다.


체시메 임시 노상 시장
차이 카페 안쪽으로 오케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거리에 석류나 무화과 나무가 흔하다.


도심의 끝에서 바다가 열렸다. 체시메 마리나다. 작은 항구는 휴양지답게 단정하고, 흰 요트와 페리가 조용히 정박해 있다. 잠시 걷히던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치듯 지나가자, 물결 위에 유리 파편처럼 잔빛이 흩어진다. 변덕스러운 날씨지만, 그만큼 이 도시의 표정도 다양해진다.

마리나 옆 언덕 위로 체시메 성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크고,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베네치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운 이 요새는, 오늘도 바다 쪽으로 묵묵히 몸을 기울인 채 서 있다. 바람과 염분을 오래 받아 색이 바랬지만, 성벽의 질감에는 시간의 층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와 감시탑, 낮은 계단들이 성 안쪽으로 이어진다. 외곽 성벽 끝에는 오래된 대포 몇 문이 아직도 바다를 향해 걸쳐 있다. 부식된 철이지만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잠잠했고, 그 위로는 더 이상 지켜야 할 전쟁도, 적선도 없다.



체시메에서 마리나로 가는 길, 그 끝에서 만나는 바다
체시메 성 아래에 지역문화 전시관. 지역민의 옛 사진과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나무에 돌을 박아 사용했던 탈곡기 / 수십 년 전 학생생활기록부


바다를 향해 걸쳐 있는 대포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 본다. 지금은 박제된 전시물이지만, 이 금속 덩어리는 한때 세계의 질서를 흔들던 힘이었다. 14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대포는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문명적 경계선이었다. 그것은 성벽의 시대를 무너뜨리고, 기동력과 화력의 시대를 열었다. 전쟁의 방식이 달라졌고, 권력의 구조도 바뀌었다. 막대한 비용과 기술을 필요로 했던 대포를 다룰 수 있었던 건 이제 왕권뿐이었다. 이 무기는 봉건 귀족의 성을 단숨에 무너뜨리며 중앙집권적 국가의 탄생을 앞당겼다. 대포의 굉음은 단순한 전투의 소리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포성이었다.


체시메 성(城)과 바다를 향한 대포


그 변화의 가장 극적인 무대는 이 나라의 전신, 오스만이었다.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이 만든 초대형 주조 대포 ‘바실리카’를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에 투입했다. 천 년 동안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성벽이 그 포격 앞에 무너졌고, 비잔티움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오스만 제국이 등장했고, 이스탄불이라는 새로운 중심이 세워졌다. 대포가 성벽을 흔들던 그 순간, 세계의 질서도 함께 흔들린 셈이다.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차갑게 스쳐 지나가자 피부에 얇은 소름이 돋는다. 곧이어 가랑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 바다의 습기와 돌의 냉기가 뒤섞인 공기가 몸을 감싸고 지나간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그 문명이 만들어낸 파괴의 힘. 그리고 그 모든 변화를 묵묵히 견디며 여전히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돌의 인내. 그 대비가 회색빛 여운처럼 남는다.


에르귄은 '한국에서 배운 기술'이라며 스마트폰을 바닥에 붙여 사진을 찍었다. 초점이 맞은 사진은 드물었다.


4.

성에서 내려온 우리는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에르귄은 특별히 정해둔 식당이 없는 듯 골목을 두리번거린다. 그의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오래된 식당 하나가 유리창 너머로 손짓하듯 다가온다. 넓은 스테인리스 냄비들에서 김이 오르고, 양념이 기름막 위에서 빛난다. 한눈에 꽂히는 ‘집밥 비주얼’에서 맛집 포스가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발이 안으로 향한다.

진열대 위에는 터키식 미트볼 쾨프테(Köfte), 토마토소스에 푹 잠긴 콩요리 쿠루 파슬리예(Kuru Fasulye), 가지와 양파를 은근하게 졸인 이맘 바율드(Imam Bayıldı),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간 치에리게르(Ciğer), 그리고 오랜 시간 끓여 깊은 색을 띤 토마토 스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메뉴판 대신 조리된 음식이 말을 걸고, 말 대신 향기가 선택을 대신하는 순간이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던 체시메 현지식당 음식
튀르키예에서 우리가 방문한 식당 중 최고의 맛집


나는 뜨거운 냄비들이 늘어선 진열대 앞으로 가 몇 가지 요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설명도, 메뉴판도 필요 없는 방식. 에르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로 “Good choice”라고 한다. 곧 테이블 위에 따끈한 접시들이 차례로 놓인다. 향신료와 토마토, 버터와 올리브오일이 뒤섞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냄새가 은근하게 피어난다.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오래 찾아 헤매던 무언가가 발견한 기분이다.

“드디어, 찾았어.”

J도 가지볶음을 한입 먹고 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과장 없는 동의. 우리가 원하던 ‘이 나라의 깊은 맛’이 여기에 있었다.

쾨프테는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의 탄력이 있고, 쿠민과 후추의 향이 가볍게 지나간다. 토마토 스튜에 담긴 콩요리는 산미와 고소함이 나란히 남는다. 바삭하게 튀긴 간은 속살이 촉촉해 씹을 때마다 풍미가 번진다. 담백하면서도 기름진 맛의 균형이 절묘하다. 오래 불 앞을 지켜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꾸준히 제맛을 지켜온 어떤 생활의 깊이. 여행 중 가끔 만나는, 이름 없는 식당에서의 뜻밖의 한 끼가 주는 만족이 바로 이런 것이다.



주문한 요리들. 나중에 추가로 주문한 닭다리 찜.


요리는 언어보다 오래된 문화다. 불과 향신료,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味學). 한 입의 맛에는 그 땅의 기후와 역사, 생활의 오래된 습관까지 녹아 있다. 우리는 그 맛을 통해 언어보다 먼저 자리 잡은 삶의 방식을 배운다.

터키 음식에는 오스만 제국의 정신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재료와 조리법을 자연스럽게 섞어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제국이 남긴 미각의 전통이다. 여행 중의 식사는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입으로 세계를 배우는 시간이다.


5.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어촌 마을 으흘라(Urla)로 향했다. 이즈미르와 체시메 사이에 자리한 작은 항구 마을, 도시의 번잡함이 아직 닿지 않은 곳이다. 크기는 작았지만 여유가 있다. 카페나 식당에 앉은 사람들도 모두 느긋하다. 커피잔을 손에 든 채 바다를 바라보거나, 말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으흘라 항구


방파제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하얀 털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들거리고, 녀석은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말아 앉는다. 파도는 느린 호흡처럼 밀려와 방파제 벽을 두드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노부부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두 사람은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익숙한 눈짓과 손끝의 움직임만으로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바람에 낚싯줄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 곁의 시간도 함께 잔잔하게 흔들린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여행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린 평온을 다시 만나는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느림은 낭비가 아니다. 삶의 균형을 되찾는 오래된 기술이다.


방파제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낚시하는 노부부
실수를 기다리는 어물전 앞 고양이
으흘라 앞 바다


6.

이즈미르로 돌아오는 길, 멀리 도로와 바다 사이에 무지개가 걸렸다. 차 안은 동시에 낮은 탄성이 터졌다. 난 무지개가 마치 에르귄과 우리의 인연을 축복하는 징표처럼 느껴졌다. 차창 밖으로는 팜트리가 줄지어 서 있고, 빗줄기가 막 그친 도로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도로 옆으로 트램은 젖은 선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다. 낯선 여행의 인연, 그러나 그 만남이 하루를, 아니 여행 전체를 다르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오늘처럼.


이즈미르로 돌아가는 길, 무지개가 떴다


도심이 가까워지자 차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에르귄은 조용히 핸들을 잡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표정을 바라본다. 그러다 간간히 말을 이으며 소소한 대화를 이어간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터키의 정치와 사회 문제로 흘러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해?”

평소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답을 하던 에르귄이 이번에는 잠시 침묵한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생각을 고르더니,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지쳤어. 하지만 머지않아 세상은 바뀔 거야.”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 있었다. 22년의 장기 집권이 남긴 피로, 불안정한 경제 속에서도 꾸려가야 하는 일상, 변화에 대한 작은 희망까지. 이들은 소리 높여 말하지 않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지친 마음 아래에 묵직하게 자리한 인내와 희망이, 그 짧은 답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즈미르의 저녁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마음의 크기를 다 담지는 못했다.

“언젠가 한국에서 보자.”

우리는 가볍게 악수하고 잠시 포옹했다. 손끝의 온기가 짧은 시간의 인연을 조금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듯했다. 에르귄의 차가 서서히 멀어져 갈 때까지 그 후미등을 바라본다. 비가 그친 공기 속에서 무지개는 천천히 옅어지고 있다. 여행의 진짜 선물은 관계의 경험에서 온다. 우리가 만난 이들은 모두, 잠시 스쳐간 인연이 아니라, 우리 여정을 조금 더 의미있게 만들어준 증거들이다.


‘고마워, 에르귄. 꼭 다시 보자.’






** 이즈미르 여행 경로

* 체시메에서 고작 8km거리의 있는 키오스 섬은 그리스 영토로,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의 출생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이다.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오스만 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 키오스 섬 주민들을 오스만 군대가 대규모로 학살, 추방, 노예화된 비극적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