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국경, 튀르키예 - 그리스

15th. '이즈미르'에서 '아테네'로

by 조르바와 춤을


역사적으로 이웃한 나라들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는 흔하다.
경계가 맞닿는다는 건 삶의 공간이 겹친다는 뜻이고,
물과 땅, 언어와 신앙이 겹칠수록 이해와 양보의 여지는 오히려 줄어든다.
인간은 이해보다 소유에 익숙한 존재다.
그래서 국경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1.

우리 여행에 미션이 있다면 단 하나다. ‘거쳐 간 모든 도시를 달려보는 것.’ 이 단순한 원칙은 어느새 여행지를 더 깊이 느끼게 하는 아침 루틴이 되었다. 달리기는 우리에게 몸을 깨우는 일상이자, 도시를 몸으로 읽는 방식이다. 대기의 촉감, 길바닥의 재질, 거리의 구조와 건물의 디자인, 가로수와 꽃,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도시의 사연이 두 발의 보폭 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공원과 골목을 달리고 나면, 그 도시에 대한 정서가 더욱 깊어진다.

이즈미르에서는 이 즐거운 아침 의식을 치르지 못해 내내 아쉽다. 아침마다 창밖을 확인했지만, 흐린 하늘과 잦은 비, 낮은 기온이 며칠째 우리 발목을 붙잡는다.

“이러다 이즈미르는 뛰어보지 못하고 떠나는 거 아닐까?”
J의 표정은 창밖 하늘보다 더 흐렸다. 그리고 정말로,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침, 하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었다.

새벽부터 맑은 하늘과 선선한 공기. 오랜만에 숨이 시원하게 내려앉는 순간이다. 우리는 해보다 더 환한 얼굴로 운동화 끈을 조여 묶는다.




2.

이즈미르만(灣)은 아침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해안 방파제에는 이미 우리보다 부지런한 낚시꾼들이 많다. 길은 매끈하게 뻗어 있고, 바다는 달리는 내 옆에서 천천히 따라붙는다. 정돈된 보도, 적당한 온도와 햇빛, 잔잔한 바람. 달리기에는 완벽한 조건이다. 이즈미르여고 건너편 해안로에서 인지랄트 공원까지 달리기로 한다. 도시와 자연이 부드럽게 맞닿은 길, 왕복 10km 남짓한 거리다. 해가 떠오르며 어둠과 한기가 물러난다. 공기는 투명해지고, 바다 위로 흩어진 햇살이 잔잔하게 반짝인다. 발끝이 땅을 딛는 감각이 선명해지고, 심장은 일정한 박자를 찾아간다.


이즈미르 만 해안 길


달리는 동안 해안을 따라 낚시하는 사람들이 계속 보인다. 자다 일어나 낚싯대만 들고 나온 듯한 사람들,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묵묵히 파도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낚시꾼의 수를 생각하면 개인별로 잡아가는 물고기는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낚시란 본래 '기다림'을 즐기는 취미이고, 운(運)은 물고기가 결정하니까. 바다와 접한 이즈미르 사람들에게 낚시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소일거리로 보였다.


방파제 곳곳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서,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해뜨기 전후와 해 질 녘, 그리고 조류가 바뀌는 물돌이 시간이 물고기의 먹이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그 사실을 경험으로 아는 태공들이 지금 이 시간에 나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해가 도시 위로 각도를 조금씩 높여가자, 아이스박스를 실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상인들이 해안을 따라 돌기 시작한다. 그들은 ‘아침의 수거꾼’들이다. 이들이 잡은 물고기를 사러 다니는 것이다. 아침 해안은 '싱싱한 생선'을 매개로 작은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다.

‘낚시를 부업 삼아 나온 사람들이었구나.’

멀리서 보면 낭만이고, 가까이서 보면 삶의 투박한 진실이다. 이즈미르만의 아침 해안은 그 두 얼굴을 모두 품고 있다.


이즈미르 만에서 잡은 물고기를 거래하는 장면
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사르카미쉬 초등학교(Sarıkamış İlkokulu)의 등교 모습. 사회단체에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3.

오늘은 아테네로 옮기는 날이다. 비행은 짧지만, 경계를 넘는 일은 늘 약한 긴장을 동반한다.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가는 길은 일정의 변화가 아니라 문명권의 전환이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꽤 멀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고, 충돌하고, 때로는 화해해 왔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손에 들어간 뒤, 이 도시는 그리스인들에게 잃어버린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약 400년간 오스만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는 19세기 독립 이후에도 민족과 영토, 신앙과 언어를 두고 터키와 계속 맞부딪혀왔다. 1974년 키프로스 분쟁은 그 긴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 지금도 에게해의 작은 섬들을 두고 두 나라는 종종 군용기를 띄운다. 국경선은 좁지만, 그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골은 깊다.

역사적으로 이웃한 나라들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는 흔하다. 경계가 맞닿는다는 건 삶의 공간이 겹친다는 뜻이고, 물과 땅, 언어와 신앙이 겹칠수록 이해와 양보의 여지는 오히려 줄어든다. 인간은 이해보다 소유에 익숙한 존재다. 그래서 국경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종교와 영토를 두고 지금도 군사적 긴장을 이어가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오랜 역사적 결속만큼이나 깊은 균열을 드러냈다. 중국과 인도는 고산 지대를 사이에 두고 몇십 년째 국경을 확정하지 못했고,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의 두 강대국임에도 해협 너머 작은 사안으로도 자주 부딪힌다. 지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감정적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기억을 온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정치·경제·감정의 변수를 안고 있고, 한국과 중국은 문화와 경제가 깊이 얽혀 있으면서도 전략적 갈등을 피하지 못한다. 북한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형태의 이웃 관계를 보여준다. 국경을 사이에 둔 갈등이 반복되는 걸 보면, 이해와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새삼 느낀다. 지도 위의 선 하나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불안과 욕망, 기억과 상처가 응축된 거대한 장벽이다.


국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튀르키예와 그리스 갈등 기사 (*출처: 연합뉴스)


4.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렸다. 여행이 길어지면 짐을 싸는 일도 하나의 기술이 된다.

“시작해 볼까?”

이 신호 하나면, 마치 훈련된 병사처럼 30분 안에 캐리어가 꾸려지고 실내가 정돈된다. J는 의류와 세면도구, 주방과 욕실을 맡고, 나는 전자기기와 여행 소품을 챙긴 뒤 침실과 거실을 순서대로 정리한다. 말없이 움직여도 손의 동선이 맞아떨어진다. 수십 번의 이동 연습 끝에 만들어진 우리만의 정리 방식이다. 여행은 결국 반복되는 이별과 준비의 연속이다. 짐을 싸는 일이 귀찮다면, 이런 여행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노마드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자유의 가장 단순한 정의이기도 하다




5.

아테네로 떠나는 비행기는 저녁 7시 10분. 체크아웃을 마치고 남은 오후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너스 시간이다. 짐을 맡기고 이즈미르만 건너편 보스탄리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메트로 주변에 캐리어를 맡길 곳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럴 땐 지도를 버리고, 현지인의 도움을 구하는 편이 낫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길은 늘 ‘사람’을 통해 연결된다.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몇 번의 물음 끝에 잡화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젊은 남자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는 기꺼이 우리를 쇼핑센터 안 구불구불한 길로 안내한다. 그리고 어느 이발소 앞에서 멈춰 “여기”라고 말한다. 농담인가 싶어 잠시 멍해지지만, 곧 이유를 알게 된다. 이발소는 부업으로 짐 보관을 겸하고 있다. 구글 맵에 나오지 않는, 현지인 팁이다. 주인은 머리를 깎다 말고 우리 짐을 이발소 안쪽 커튼 뒤로 옮긴다. 오후 동안 7000원, 이즈미르의 친절은 따뜻하고 합리적이다.


여행 캐리어를 맡긴 이발소 / 페리 여객선 터미널 앞 시밋(Simit) 노점상


6.

짐을 맡기고 코낙 페리 터미널로 향한다. 표를 끊고 터미널 한쪽에 앉아 우리가 탈 페리를 기다린다. 잠시 후 옆자리에 10대 소년들이 우르르 와서 자리를 차지한다.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안면을 트자 “코리안?”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단어들이 순서 없이 번갈아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귀엽고, 반갑다. 중학생 또래의 이들은 현장학습을 가는 길이라고 한다. 한국에 와본 적은 없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Korea’이라는 나라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확실히 달라졌다. 특히 청소년들과는 K-pop 하나로 세대를 넘어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나이가 많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우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손가락 V를 그린다. 그들이 탈 페리가 먼저 오자, 우리를 향해 “Happy time!”을 외치며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떠나는 소년들의 웃음이, 빛을 품은 잔물결로 남는다.


숙소 아래 동네 카라타쉬(Karataş) 지역의 아나돌루 고등학교 학생들
학교 앞 문방구


페리는 2층 구조로 단정하다. 2층 갑판에는 여유로운 오후 햇살이 내려앉는다. 바람은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고, 구름은 에게해 하늘 위를 천천히 흘러간다. 히잡을 두른 젊은 여성들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셀카를 찍고, 다른 무리들도 바다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한다. 그들의 웃음이 오후 햇빛만큼 환하다. 이즈미르의 바다는 파도보다 사람의 온기로 반짝이고 있다.

J는 난간에 기대 멀어져 가는 코낙 항과 도시, 그 뒤편 산의 윤곽을 바라본다. 도시는 점점 작아지고, 페리 뒤편 물결은 하얗게 부서진다. J의 스카프 끝이 바람에 흩날리며 작은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 에게해를 따라 아테네까지 닿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즈미르는 에게해의 관문다운 품이 있다. 이 바다는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언어와 신화를 실어 나르며 도시들을 연결해 왔다. 오늘의 짧은 항해도 그 긴 역사 속 작은 조각일 것이다.



7.

보스탄리에 도착하자 햇살이 조금 누그러진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상가 지역을 걷다 보니 식당 하나가 눈에 띈다. 어제 체시메에서 보았던 식당처럼 조리된 음식들이 유리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J는 유리창 너머의 음식을 보자마자 눈이 커진다.

“여기서 먹자!”

J는 망설임 없이 마음에 드는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흰머리의 매니저는 미소를 지으며 메뉴 이름을 받아 적는다.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들은 색감부터 향까지 풍성하다. 야외 식탁 위에 놓인 노릇한 케밥, 고소한 가지 요리, 신맛이 감도는 요거트 야채 볶음, 레몬을 얹은 병아리콩 샐러드, 그리고 따뜻한 빵 한 바구니. 우리 테이블 옆에서는 올리브나무가 햇살을 머리에 품은 채, 흔들리는 그늘을 드리운다.

문득 모네의 그림 <Le Déjeuner 점심식사>이 떠오른다. 정원에 펼쳐진 테이블보 위로 햇빛이 가볍게 번지고, 주변의 꽃과 나뭇잎이 한꺼번에 반짝이던 그 그림처럼, 지금 우리의 점심도 햇빛을 흠뻑 머금고 있다. 음식의 색은 한층 더 선명해지고, 빵의 빛깔은 금빛으로 변한다. 올리브나무 잎사귀는 바람에 흔들리며, 모네가 그려 넣은 정원의 오후처럼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든다. 마치 빛이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우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 같다. 모네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 오후의 평화가 눈부시다.



야채 귀베츠 (Sebzeli Güveç)의 일종으로 '시금치와 치즈 볶음 요리 (Ispanaklı Peynir Sahanı)'
보스탄리 지역 식당의 점심 식사
Monet의 Le Déjeuner, 1873 (*오르세미술관)


식사를 마치고 해변공원으로 산책을 가보기로 했다. 번화한 상가 앞 인도에 개 세 마리가 일렬로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다. 이즈미르에서 ‘상팔자’ 개들을 여러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상팔자 노조'를 결성하고 누워 있는 개들은 처음이다. 개와 인간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지 알 수 없다.



바닷가를 따라 난 산책로에는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섞여 있다. 도시의 소음은 멀어지고, 바다의 숨소리만이 귓가에 스친다. 오후의 공기는 느긋하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햇빛은 물결 위에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고, 파도는 방파제 앞에서 조용히 부서진다.

며칠 동안 이 도시에서 쌓인 감정들이 천천히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처음엔 낯설었던 풍경, 익숙해진 바람의 냄새, 고마운 인연과 친절했던 사람들, 아침마다 뛰던 해안길, 저녁마다 달라지던 빛... 이즈미르의 오후는 그렇게, 조용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떠나보내고 있다.


보스탄리 수변 공원
코낙과 보스탄리를 오가는 페리
코낙 여객선 터미널 옆 노천카페


8.

공항으로 향하는 이즈반 기차는 철로 위를 조용히 미끄러진다. 창밖의 도시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아쉬움이 병으로 도진 것인지, 목 안쪽에서 낯선 통증이 올라온다.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한 감각이 목 안쪽에 걸린다. 여행자의 몸은 고향에 있을 때보다 민감해진다.


공항에 도착해 해외 출국장을 찾다가 한 청년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이 공항을 여러 번 드나든 사람처럼 능숙하게 길을 안내한다. 걸음을 옮기며 자신이 그리스인 아버지와 터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일을 마치고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웃는다.

“우린 아테네를 거쳐 크레타로 갈 계획이야.”

다음 행선지를 이야기하자 그의 표정이 밝아진다.

“크레타? Best choice!”

엄지를 들어 보이며, 크레타가 자기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한,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제일 좋은 곳이야.”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고향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카잔차키스도 여러 글에서 자신을 크레타의 바람과 흙에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말했었지.' 크레타는 에게해 문명의 발원지, 유럽의 첫 심장이 뛴 곳이다. 미노스 왕의 미로, 미노타우로스의 전설, 바다가 신화를 품고 숨 쉬던 세계. 그리고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자유가 태어난 땅이다.

이즈미르에서 그리스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난 그 청년은 마치 두 문명의 교차점이자 우리 여행의 희망봉 같다. 그의 미소는 이번 여정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작은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9.

출국 수속을 마치고 대기석으로 향하던 길, 벽면 한가운데 걸린 큰 초상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튀르키예를 떠나는 마지막 길목에서도 그의 얼굴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근대 터키 공화국의 창건자이자 세속주의와 시민국가의 틀을 세운 인물이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이순신의 결기와 세종의 개혁을 한 사람 안에 모아둔 셈이다.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의 시계는 지금도 그가 눈을 감은 시각에 멈춰 있다. 도시의 표지판, 학교와 관공서, 화폐뿐 아니라 허물어진 골목의 벽면, 오래된 가정집 거실에서도 그의 초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 번 걸린 그의 얼굴은 자연 소멸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듯하다. 터키인들은 “우리는 신보다 아타튀르크를 더 자주 본다”고 말한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이 나라를 직접 걸어보면 이해된다. 그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터키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거울이다. 공화국의 이상, 세속주의, 여성 교육, 법과 제도의 근대화. 모두 그가 남긴 유산이다.

하지만 지금의 터키를 바라보면, 그의 정신이 흐려지고 있다. 정치적 긴장, 경제난, 사회적 양극화, 강해지는 종교적 보수주의. 그가 세우려 했던 나라는 종교보다 이성, 특권보다 시민을 앞세우는 공화국이었다. 아타튀르크가 꿈꾸었던 시민의 자부심과 공화국의 품위가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지, 이 나라의 속살을 들여다볼수록 걱정이 스친다.

벽에 걸린 그의 초상 속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고 진지하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인사한다.

“우리는 이제 당신의 영혼이 지키던 나라를 떠나, 그리스로 건너갑니다.
이 나라가 안정을 되찾고, 당신이 지키려 했던 정신이 다시 밝게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항공사 직원이 비행기 연착을 알린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 피로를 덜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함께 미뤄진다. 목의 통증은 더 뚜렷해지고, 기다림은 불편을 하나씩 부각시킨다. 대기석에서 물 두 병을 연달아 마셨지만 이미 해갈의 타이밍을 놓쳤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체력이 빠르게 소진된다. 여행 중 통증은 단순한 몸의 신호를 넘어 마음의 균형까지 흔든다. 몸살이라도 나면 일정 전체가 기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여행자는 감정의 조타수를 잃어서는 안 되니까.

창밖 활주로 위로 붉은 노을이 깔린다. 보랏빛이 어둠과 섞이기 시작하고, 비행기는 조용히 이륙 준비를 마친 듯하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저편에서는 아테네의 밤이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테네 야경


10.

목의 통증과 피로를 안고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J가 걱정할까 씩씩한 척했지만, 몸은 평소보다 무겁다.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기차역으로 내려가 도심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40분. 창밖은 희미한 어둠에 잠겨 있고, 객실 안은 여행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가 섞여 들리고, 그 소음은 피로한 몸속에서 더 크게 울린다.

‘아테네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람을 불러 모으는 도시구나.’

이천 년 전 이 도시는 지중해를 가르는 배들이 모여들던 문명의 중심지였다. 민주주의와 철학이 태동한 이 작은 도시국가는 인류의 지적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유산의 빛은 완전히 바래지 않았다. 아테네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명확하다. 파르테논을 비롯한 고대 유적, 그리스를 대표하는 박물관들, 그리고 에게해 섬으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많은 여행자가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하거나, 섬들로 이동하기 전 잠시 머문다. 실제로 아테네는 해마다 약 7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다.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여행지이며, 여름철에는 공항과 시내 곳곳이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어떤 이는 고대 문명의 흔적을 보기 위해, 어떤 이는 미코노스·산토리니·크레타로 향하는 길목으로, 또 어떤 이는 그리스 특유의 일상과 음식, 초록빛 바다를 만나기 위해 아테네에 온다.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운행하는 기차


11.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아테네 시내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 역에서 메트로로 갈아타야 한다. 기차가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어둠은 더 짙어지고, 그 어둠은 피로한 내 몸 안쪽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조금만 더 견디자, 거의 다 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캐리어를 끌고 환승역으로 내려간다. 시계는 이미 밤 10시를 넘긴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마지막 힘을 준다.

그런데 모나스티라키 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피로는 순식간에 긴장으로 바뀐다. 낡은 플랫폼, 벽면을 가득 채운 거친 낙서, 오래된 철 구조물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쇠 냄새. 순간적으로, 시대가 거꾸로 흘러 1980년대의 호러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하다.


"여기가 아테네라고?"


모나스트라키 역 플랫폼


문명이 피어오르던 도시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장면 앞에서 몸이 저절로 굳는다. 계단 곳곳에는 젊은이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고,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훑는다. 희미한 조명, 히피풍의 옷차림,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웃음소리. 작은 요소들이 피로한 여행자의 신경을 하나씩 건드린다. J는 말없이 내 옆으로 가까이 붙는다.

플랫폼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다시 한번 긴장이 올라온다. 차체 전체가 낙서로 뒤덮여 있다. 붉은색, 초록색, 검은색 스프레이가 뒤엉켜, 멀리서 보면 마치 어둠이 자기 몸을 긁어낸 흔적처럼 보인다.

‘하데스로 가는 기차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J의 표정도 굳어 있다. 무의식적으로 보호 본능이 깨어나며 J의 팔을 잡아당긴다. (아주)오래전 ‘태권도 유단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우스워 보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다.

기차 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부 벽면은 낙서로 가득했고, 글자 몇 개만 남긴 태그(tag)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선과 도형까지, 무질서한 낙서들로 가득하다. 이것은 예술의 표현이라기보다 관리되지 못한 도시 행정의 공백이다. 그래피티는 도시의 예술이자 저항의 언어일 수 있지만, 의도와 맥락이 빠진 체 방치된다면 도시의 흉터가 된다.


아테네의 첫인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의문은 곧 ‘왜 이렇게 방치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곳이 플라톤과 페리클레스의 도시라니. 유럽 문명의 등불이 타오르던 도시가, 이렇게 어둠과 낙서로 바래져 있을 줄 몰랐다. 아테네 문명의 빛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서 여전히 찬란하지만, 그 아래 지하철역까지 닿지는 못하는 듯했다.


모나스트라키 역 메트로 외관과 메트로 내부


10.

타브로스(Tavros) 역에 내려서자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낯선 도시의 밤공기는 축축하고 서늘하다. 숙소까지는 약 5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불빛은 희미하고 인적도 드물다. 가로등을 지날 때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발끝에 따라붙는다. 몸은 피곤한데 신경은 오히려 예민해져 있다. 건물 번호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주소와 일치하는 건물 앞에 도착해, 주인이 알려준 대로 키박스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따뜻한 실내 공기가 우리를 맞는다. 아파트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고급스럽고 안정되다. 4층 아파트인데도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2층 숙소의 스위치를 켜자 은은한 불빛이 방 안에 번진다. 그제야 어깨를 짓누르던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거실 소파에 털썩 앉자 서로의 얼굴에서 동시에 안도의 숨이 새어 나온다.


“드디어 아테네에 안착했네.”


순식간에 피로가 밀려온다. 소파에 파묻혀 말을 흘리듯 중얼거린다.


"에게해를 건넌다는 게 옛날에는 얼마나 고단한 일이었을까?

아테네로 진군하던 페르시아 군사들이 마라톤 평원에 도착했을 때도 우리와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아테네의 승리는 전술 때문만이 아니라, 지쳐버린 페르시아 군의 피로 탓이었을지도 몰라..."


허무맹랑한 말이지만, 아나톨리아 반도를 건너와 발칸 반도에 닿은 이 하루가, 잠시나마 역사적 여정처럼 느껴졌다. 잠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