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아고라의 생기와 박물관의 고요

16th. 아테네(2)

by 조르바와 춤을


오늘의 모나스티라키 역이 어제의 그것과 같지 않은 것처럼, 도시는 한 장면으로는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은 종종 내게 선입견에 주눅 들지 말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1.

걱정했던 인후통은 다행히 몸살로 번지지 않았다. 밤새 먹은 종합감기약이 제 역할을 해준 듯하다. 목은 여전히 따끔거리지만 근육통은 많이 가라앉았다. 해외여행에서 나에게 맞는 상비약을 챙기는 일은 작지만 확실한 보험이다. 오전만 천천히 쉬면 곧 괜찮아질 듯하다. 아침 조깅은 J가 혼자 나가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도 보겠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J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말한다.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달려왔지. 집 앞에 시장이 섰어!”

내가 걱정돼 달려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장’이 섰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순간, 어젯밤 집주인이 남긴 메시지가 떠오른다.

‘내일 집 앞 거리에는 바자르가 서는 날이니, 차가 있다면 다른 곳에 주차해 주세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이동 장터처럼, 이 동네에도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장 서는 날'이 있는 모양이다. J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엄청 커.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날씨도 좋아!”

평소 차분한 J에게 보기 드문 흥분이다. 그 표정만으로도 시장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 목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시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에너지가 단숨에 나를 밀어 올린다. 비몽사몽 상태로 바지에 다리를 꿰어 넣는다. 마치 아이에게 “놀이동산 갈래?”라고 물었을 때 나오는 반응처럼,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일단 밖으로 나선다.



2.

정말, 시장이 섰다. 집 앞 사거리부터 골목을 따라 남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장터가 펼쳐져 있다. 아침 햇빛을 받은 천막들이 주황색 물결의 처마를 만들고, 그 아래로 상인들과 손님의 거래가 한창이다. 상인들은 도시 사람들의 표정과 조금 다르다. 오래 햇볕을 마주한 이들만의 기색이 있고, 손마디는 노동의 흔적이 역력하다. 시장은 자연과 맞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진솔한 기운이 넘친다.


상인들의 얼굴 면면은 유럽 소설 속 인물이 현실로 걸어 나와 장사판을 벌인 듯하다. 상인들 중에 유독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투박하지만 편안한 인상, 깊은 주름에 인정이 깃든 얼굴이다. 헤밍웨이가 소설을 쓰다 말고 잠시 나와 야채를 파는 것 같다. 그 옆에 감자를 파는 그리스 아저씨의 둥그렇고 부드러운 인상은 스스로 감자를 닮았다. 과일 좌판 앞에서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속 시장 풍경이 떠오른다. 소설에서 시장은 카리브해 특유의 강렬한 빛과 냄새, 사람의 온기가 뒤섞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 상상을 아테네 동네 집 앞에서 만나다니. 아침의 거리는 과일의 색과 향기, 사람들의 움직임이 뒤섞여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 같다.


감자를 닮은 감자파는 아저씨와 헤밍웨이를 닮은 야채파는 아져씨


시장 거리를 따라 더 내려가 본다. 좌판의 토마토는 붉은 유리알처럼 빛나고, 오이에서는 갓 따온 풀잎 향이 은근히 올라온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품종의 포도들이 상판 위에 늘어서 있고, 생선 가게에서는 도미와 멸치가 은빛을 흘린다. 상인과 손님 모두 에너지가 넘친다. 날씨 때문인지, 이곳만의 오래된 '아고라' 정서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풍경은 고대 그리스인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야채를 사다 말고 웃음이 나왔다. 이 대비는 정말 신이 연출한 장면 같다. 어젯밤 메트로 역의 음습함과 불안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데, 오늘 아침의 시장은 그것을 한순간에 털어 낸다. ‘대반전’이라는 말은 이런 순간에 쓰이는 단어였다. 마치 호러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갑자기 로맨틱 뮤지컬이 삽입된 것처럼 세상이 확 바뀌었다.


양손 가득 야채와 과일을 담은 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비닐봉지는 제법 묵직한데, 햇빛에 받은 과일들은 작은 보물처럼 반짝인다. 만선의 어부가 이런 기분일까?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생기를 두 손 가득 담아 온 기분이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이 가득한 직거래 장터


3.

아침잠 보충과 바자르에서의 ‘행복한 한때’ 덕분에 마음과 몸의 균형이 빠르게 회복된다. 오전의 아테네 햇빛은 어제의 피로와 이질감마저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신선한 재료로 간단한 브런치를 해 먹고 나니, 기분은 더욱 살아난다.


오늘 여행의 원래 계획표를 펼쳐본다.

08:00 모나스티라키 광장

08:10 고대 아고라 /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 로만 아고라

09:10 아크로폴리스 입구 - 디오니소스 극장

09:30 아크로폴리스 언덕 >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 프로필레아 - 아테나 니케 - 에레크테이온 - 파르테논

11:30 아크로폴리스 하산 -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

12:30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관람 & 점심(내부 카페)

14:30 플라카 / 아나피오티카

15:30 제우스 신전 / 하드리아누스의 문

16:00 국립정원

17:30 저녁(수블라키)

18:30 필로파포스 언덕 석양 감상

20:30 귀가


(다시 봐도 웃음이 난다.) 이건 여행자의 계획이 아니라, 아테네를 하루 만에 정복하려는 제국의 군사 작전표에 가깝다. 그땐 몰랐다. 저 코스를 전부 걸어서 완주하는 건 마라톤 평야를 달리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도 위에서 저 지명들은 한동네에 가까이 뭉쳐 있다. 하지만 평면의 지도에서 만만해 보이던 지형들은 현실에서 가파른 언덕과 굽은 골목, 미끄러운 돌길로 변신한다. 게다가 발칸반도 남쪽의 직사광선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실수는 아테네라는 도시의 긴 역사를 찬찬히 음미할 시간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행 계획은 여행지를 미리 파악하고 여정을 가늠해 보는 준비 운동이다. 여행의 시간이 아깝다고 무리하면 나머지 시간까지 무너진다. 무리한 일정은 체력을 소모하고, 지친 체력은 감응력을 떨어뜨린다. 지치면 눈이 둔해지고, 둔해지면 도시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의 여행은 계획에 늘 '완충제'를 배치해 놓아야 한다. 휴식 시간을 읽어내는 감각, 예기치 못한 변수를 받아들이는 여유,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인정하는 '자기 자비'가 필요하다. 여행의 계획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루 속에서 그때그때 다시 써 내려가는 것이다.


오늘 여정은 이렇게 바꿨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날씨와 도시가 허락하는 만큼만 걷기로 했다.

숙소 → (버스)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 아크로폴리스 → 플라카 거리 → 제우스 신전 / 하드리아누스의 문 → 국립정원 → (버스) → 아고라 /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 모나스티라키 광장 → (메트로) → 숙소.


아크로폴리스 구역으로 가는 도심 길 (대로변 Sex shop에 놀람. 아이들은 수퍼히어로 모형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4.

‘고대 아테네 문명’ 여행의 첫걸음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곳으로, 고대의 파편과 현대의 시선을 잇는 통로 같은 장소다.

건물은 큰 유리판과 콘크리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향해 자연스럽게 열려 있다. 전체가 하나의 거울처럼 주변의 하늘과 건물을 받아 비추고, 그 투명함 덕분에 건축물은 마치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듯 보인다. 유리벽 사이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낮은 오후 햇살 속에서 영상처럼 흔들린다. 현대의 건축이 고대의 시간을 조용히 감싸 안은 풍경이다.



1층에는 발굴된 주거지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는 그 투명한 유리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발걸음에 가벼운 흥분이 인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고대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느낌이다. 입구 바닥 아래로는 오래된 도시의 층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골목은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주거지가 서로 겹친 자리다. 생활용기, 하수 시설, 방들의 구획, 사람들의 동선까지 남아 있어, 눈앞의 유물이 아니라 ‘살던 자리’로 다가온다. 2천 년 전 이 길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유리를 딛고 걸을 때마다 미세한 떨림이 전해지는 듯하다.



본관 안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오를수록 아테네의 조각과 건축의 역사가 시간대별로 펼쳐진다. 경사면 갤러리에 들어서면 길은 자연스럽게 위로 이어진다.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고대 성역의 길을 재현한 공간이다. 양측 진열장에는 아테네 곳곳에서 출토된 조각 파편과 토기들이 배치되어 있다.

표정이 닳아 사라진 인물상, 의복의 주름만 남은 몸체, 한쪽이 깨진 토기들처럼 온전하지 않은 유물들이 오히려 시간의 흔적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유물들을 살피며 제의를 준비하던 여인들, 행렬의 앞자리를 맡은 청년들, 신에게 올릴 제물을 들고 걸음을 모으던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이곳 박물관은 유물을 ‘보여주는’ 곳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관람객을 잡아끈다.




경사면 갤러리를 지나자, 갑자기 공간이 넓게 열리며 아르카익 갤러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리와 콘크리트로 구성된 현대적 건물 안에, 기원전 시대의 조각들이 차분하게 놓여 있다. 조명은 과하지 않고, 조각의 표면을 부드럽게 비춘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자연히 느려진다. 이곳은 화려한 전시가 아니라, 돌에 새겨진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장소에 가깝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러 개의 얼굴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는 조각이다. 한쪽으로 돌아선 얼굴들은 닳아 표정이 흐릿한데, 중앙에 있는 큰 얼굴은 유독 강렬하다. 풍성한 수염, 깊게 파인 눈가, 묵직한 인상. 설명문 없이 보아도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다. 철학자의 초상이 신전의 장식 일부로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대인의 정신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었는지 짐작된다. 부서지고 파였지만, 얼굴의 방향과 입술의 굴곡은 여전히 단단하다.

가면 조각들은 분위기를 또 다르게 만든다. 넓게 벌어진 입, 과장된 치아, 혀를 내민 표정. 그로테스크하지만 익살스럽기도 하다. 이 얼굴들은 의식을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지금 보면 인간이 두려움과 웃음을 어떻게 함께 다루어 왔는지 보여주는 기록 같다.



이 갤러리에서 내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개 조각상이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동물 형상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밀함이 드러났다. 등뼈가 드러난 윤곽, 몸을 낮춘 자세, 앞발의 긴장, 납작하게 옆으로 벌어진 귀. 사냥감의 움직임을 추적하던 순간인지, 주인의 기척에 반응하던 순간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자세에는 ‘지금 막 몸을 움직이려는 동물의 순간’이 담겨 있다. 대리석인데도 움직임이 느껴진다. 개가 바라보는 방향성도 명확하다. 귀와 턱의 각도, 낮게 깔린 어깨의 높낮이가 시선을 앞으로 끌고 간다. 고대 조각을 보면 인간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 개 조각상은 다르다. ‘인간의 동반자’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시대였을지 모른다. 대리석에 조각된 이 개는 신화적 상징이나 장식적 목적을 넘어, 누군가가 함께 살아온 개의 모습을 아주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아르카익 갤러리는 완전한 조각보다 불완전한 형태에서 살아남은 생생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공간이다. 크게 망가진 조각 앞에 서 있으면, 조각가의 손이 어떤 곡선을 깎고 어떤 부분을 남겨두었는지 자연스레 눈으로 따라가게 된다. 완전한 형태보다, 부서진 자리와 깎여 나간 틈이 시대의 질감을 더 잘 들려준다.



계단을 오르자, 에레크테이온을 떠받쳐온 여인 기둥들이 한자리에 서 있다. 신전에 있던 여섯 기둥(카리아티드) 중 다섯 기둥이 이곳으로 옮겨져, 고요한 전시실 한가운데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균형 잡힌 자세다. 각기 다른 쪽 다리에 체중을 실어 상부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데, 기능을 수행하는 몸의 자연스러운 조정이 돌 위에 정직하게 남아 있다. 깊게 파인 옷 주름과 파손된 표면은 세월을 품고 있다. 뒷모습에 자리한 땋은 머리카락의 세밀한 표현도 인상적이다. 신전 앞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을 조각가의 손길이, 전시실에서는 오히려 또렷하게 드러난다. 한때는 신전을, 지금은 시간을 떠받치고 있는 존재들. 고대의 건축과 인간의 형상이 이 조용한 공간에서 다시 연결된다.


아크로폴리스 에레크테이온을 떠받쳐온 여인 기둥들(진품)


파르테논 갤러리로 올라가기 전, 중간층에 있는 카페에 들른다. 카페의 실내를 지나 유리문을 열면 바로 야외 공간이 펼쳐진다. 관람 동선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아크로폴리스를 가장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는 건물 구조 덕분에 시야가 확 트여 있다. 난간 가까이 서자,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정면으로 떠오른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이 햇빛을 받아 선명한 윤곽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조용히 사진을 찍거나 자리를 잡고 앉아 언덕을 바라본다.


이 공간은 관람실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완충지대다. 고대의 시간을 담은 유물들 사이를 지나던 발걸음이 테라스에서 잠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러나 눈앞의 언덕은 다시 과거로 이끈다. 유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실내의 조각들과 실외의 신전이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 잠시 서 있었을 뿐인데, 여행자의 자리와 고대 도시의 중심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층에 이르면, 박물관은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파르테논이 된다. 한 층 전체가 유리로 둘러싸여 있고, 전시물은 실제 파르테논 신전의 방향과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마치 신전 내부에 들어온 것처럼, 프라이즈가 사방을 감싸고 있다.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의 격렬한 전투가 새겨진 메토프들, 아테네 시민들의 제의 행렬을 묘사한 프라이즈의 부드러운 리듬, 신들의 이야기가 얹혀 있던 페디먼트 조각들. 그 한 토막 한 토막이 모두 강렬한 서사를 품고 있다.


한 유리 진열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그 안에는 1904년에 복원된 파르테논 동쪽 pediment(고대 신전 지붕의 앞·뒷면에 삼각형으로 형성된 공간으로, 신화 장면이나 조각을 배치하던 건축 요소) 모형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실제 크기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작은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압도적이다. 제우스 곁에서 막 태어난 아테나, 놀란 듯 몸을 기울인 신들, 그리고 삼각형의 끝으로 달려가는 새벽의 말들. 단번에 이야기의 중심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모형은 유물이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물보다 더 또렷하다. 흩어지고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되살리는 일, 그것은 기술적 복원이라기보다 상상력의 재구성에 가깝다. 사라진 시간의 여백을 메우는 일은 결국 인간의 몫이니까.



2500년 전 아테네 폴리스 모습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J와 난 박물관 한쪽에 앉아 잠시 휴식을 갖는다. 유리 벽 너머의 실제 파르테논은 언덕 위에서 정적을 지키고 있고, 박물관 안의 복원 구조물은 그 신전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다. 전쟁과 파괴, 종교의 충돌과 재건의 시간을 지나서도 돌은 남고, 빛은 그 돌 위에 다시 내려앉는다.


박물관을 빠져나오며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바라본다. 나는 오늘 아주 잠깐, 고대라는 오래된 문장의 몇 줄을 조용히 읽고 나왔을 뿐이다. 뒤돌아본 박물관이 더 웅장해 보인다. 볼수록, 고대 신전의 ‘빛을 향한 구조’를 현대적으로 멋지게 번역한 건축물이란 생각이 든다. 바람과 빛,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까지 건축의 일부가 되는 공간. 오늘 내가 경험한 박물관은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을 비추는 하나의 투명한 그릇이다.


개방형 구조로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는 박물관


5.

박물관의 유물들을 보고 나니 아크로폴리스가 더욱 기대된다. 서쪽 출입문 앞에는 이미 줄이 길다. 약 20여 분을 꼬리를 물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입구 가까이 다가간다. 그런데 직원이 우리를 막아선다. 이 줄은 이미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대기줄이었다. 표는 오른쪽 매표소에서 따로 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곧장 판매 창구로 향한다.

“Two tickets, please.”

매표소 직원은 건조하게 답한다.

"Today, Sold out"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여기가 세계적 명소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언덕 동네를 입장하는 것이라 특별한 인원 제한이 없을 줄 알았다. 역사는 공부하면서 역사적 장소를 입장하는 방법은 살펴보지 않고 온 것이다.


대기줄을 선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강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 60대 동양인 남자가 다가온다. 중국인이냐고 묻길래 한국인이라고 하자, 내일 입장 가능한 표가 한 장 있으니 '사라'고 한다. 표는 공식 발행권이었고, 내일 오후 1시 입장 내용도 맞다. 그런데 가격이 15유로다. 성인 입장권 가격이 30유로인데 반값표라니? 15유로가 맞냐고 하자, 그는 사전 온라인 예매를 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곧 다른 일행과 이동해야 한다며 빨리 '사라'고 재촉한다. 어차피 오늘 입장은 불가고, 내일 다시 올 예정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표를 1장 사고, 나머지 한 장만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될 터였다. 현금을 건네주자 노인은 뒤돌아 빠르게 인파 사이로 사라진다.

혹시 온라인 표도 일찍 매진될까 걱정돼 스마트폰을 열어 즉시 예매를 시도한다. 인터넷을 나무늘보가 연결해 주는지, 속도가 느리고 최종 화면에서 자꾸 화면이 멈춘다. (초고속 인터넷 국가에서 온 여행자는 해외여행 시 반드시 인내심을 챙겨 와야 한다.) 결국 숙소에 돌아가서 처리하기로 한다.


자리를 떠나며, 혹시나 싶어 출입구 직원에게 아까 산 표를 보여준다.

"이 표로 내일 입장이 가능한가요?"

그러자 그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되묻는다. 한국이라고 답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은 이 티켓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순간, '아차' 싶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무슨 문제냐고 묻자, 이 티켓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의 65세 이상 노인만 출입가능한 표'라고 한다.

'아, 당했구나.'

낯선 도시에서 경계를 풀어놓고 다닌 대가다. 가볍게 받아들였던 친절은 오래된 방식의 사기였다. 혹시 환불이 안되냐고 묻자, 그 티켓을 판 사람을 데려오라고 한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사기를 친 그 노인이 내가 여기서 어떻게 화를 내는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고 있을 리 만무하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유럽 유명 관광지에서는 사기꾼보다, 사기당한 이를 더 어리석게 보는 분위기가 있다. 경계하지 않은 네 잘못이라는 침묵의 규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가?'를 묻는 철학의 발상지에 와서, 사기 친 사람보다 사기당한 피해자가 비난을 받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아크로폴리스 매표소와 사기당한 티켓


엄밀히 생각해 보면 잘못은 내게 있다. 사기의 시작점에는 늘 '욕심'이 있다. 반값이라는 말에 흔들리고, '지금 사면 이득'이라는 계산이 이성의 눈을 가린다. 작은 욕심 하나가 경계심을 잠재우고, 의심의 센서를 꺼버린 것이다. 사기꾼은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든다. 세상 대부분의 사기는 결국 그렇게, 타인의 악의보다 내가 스스로 만든 빈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속인 놈이 아니라, 속은 사람을 탓하는지도 모른다.

'욕심을 부린 건 너잖아.'

그 말이 정답이고 진실이다. 사기는 타인의 악의로 시작되지만, 그 문을 열어주는 건 항상 나의 욕심이다. 우린 15유로짜리 교훈을 들고 내일 재방문을 기약했다.


7.

아크로폴리스 서쪽 입구를 빠져나오면 길은 곧장 플라카로 이어진다. 언덕 아래로 펼쳐진 골목은 금세 활기가 차오른다. 노란 벽과 흰 창틀은 햇빛에 반사되어 밝게 빛나고, 베란다마다 늘어진 부겐빌레아와 상점의 파스텔톤 옷들이 골목을 밝게 물들인다. 카페에서는 그릭 음악이 흘러나오고, 야외 테이블마다 사람들의 웃음과 대화가 겹친다. 플라카는 마치 지역 전체가 하나의 큰 햇살의 방 같다.


플라카 거리 풍경


J는 이런 거리의 활기를 좋아한다. 햇빛이 골목을 가득 채우는 날이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햇볕을 받은 얼굴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걸음에 경쾌함이 실린다. 햇빛 속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을 때 조금 더 예뻐지는 사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행복하다.

여행은 때때로 내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을 대신 채워준다. 나는 날씨를 바꿀 수도 없고, 이국의 골목들이 지닌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다만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분위기에서 더 밝게 웃는지 기억하고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 일. 그 사소한 사랑의 가치를 플라카 거리에서 확인한다.


아테네는 여행뿐 아니라 학술과 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에서 현장수업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8.

리시크라투스 거리(Lysikratous Street)를 빠져나오는 길, 건너편으로 앙상하고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아치 하나가 시야에 걸린다. 하드리아누스의 아치(Hadrian’s Arch)다. 오후 햇살은 기둥 사이에서 얇게 갈라지며 번진다. 그 빛은 이번 여행 동안 유난히 자주 마주했던 한 인물을 소환한다.

하드리아누스(Hadrianus). 그는 페르게에서도, 에페소스에서도, 안탈리아에서도, 그리고 지금 아테네에서도 끊임없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내가 그의 흔적을 좇아 따라오기라도 한 듯이.


여행에서 만난, 아네테의 하드리아누스 아치와 안탈리아의 하드리아누스의 문


하드리아누스는 묘한 황제다. 로마 황제 대부분이 확장의 욕망을 제국의 정의처럼 여겼을 때, 그는 그 반대 방향을 걸었다. 영토를 넓히기보다 국경을 다듬었고, 브리타니아(영국) 북쪽에는 제국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성벽(Hadrian’s Wall)을 세웠다. 끝없이 확장하는 로마의 기세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 사람이다.

내게 그를 처음 알려 준 것은 판테온(Pantheon)이었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로마 건축의 정신이 완성된 공간. 하드리아누스는 이 거대한 돔을 새로 올리며 '신에게 열린 하늘'을 만들었다. 원형 돔은 플라톤이 말한 ‘조화로운 전체’를 닮았고, 내부에 쏟아지는 오큘루스의 빛은 스토아 철학이 말한 ‘코스모스의 질서’를 시각화한 듯했다. 군사력이 아닌 비례와 리듬으로 제국의 위엄을 드러낸 황제. 그는 승전 기념비 대신, 사람들이 들어앉아 세계를 느끼도록 만드는 방을 세웠다. 건축을 통해 제국의 심장을 다시 짜 넣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여행자였다. 그의 재위 기간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로마 밖에서 보냈다. 브리타니아의 습한 들판 위를 걸었고, 이집트의 모래바람 속을 지나갔고, 아나톨리아의 산과 신전을 돌며 제국의 구석구석을 직접 보았다. 그 긴 여정을 ‘황제의 순행’이라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행정가의 점검이자, 건축가의 답사이자, 인간의 욕망을 품은 여행이었다. 그는 전쟁보다 유지, 정복보다 이해, 지배보다 관찰을 택했던 사람이다.

그의 연인이었던 안티노우스(Antinous)가 나일강에서 죽었을 때, 하드리아누스는 신과 같던 황제의 위치에서 한순간 인간으로 돌아와 버렸다. 황제의 얼굴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한 남자로 남았다. 그는 연인의 죽음을 잊기 위해 전쟁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안티노우폴리스라는 도시를 만들었고, 신전과 조각을 세웠고, 그의 기억을 공간으로 남겼다. 상실을 견디는 방식이 파괴가 아닌 건축이라는 점에서, 그는 더없이 인간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지나친 도시마다 남은 아치와 문들은 그가 한때 사랑하고 이해하려 했던 도시들과 나눈 대화의 흔적 같다. 아테네의 하드리아누스 문은 그중에서도 가장 단정하고 고요하다. 그리스를 사랑한 황제. 플루타르코스의 고향을 동경하고, 호메로스의 구절을 읊조리며 도시를 걸었다고 전해지는 사람. 이 문은 고대 아테네와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신도시를 나누는 경계였다. 한쪽에는 테세우스의 도시가, 다른 쪽에는 그가 꿈꾼 새로운 아테네가 있었다. 도시의 경계를 바꾸는 일은 권력의 과시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말년을 적신 ‘작별의 어조’가 느껴진다. 죽기 직전 그가 남긴 짧은 시, “방랑하는 내 영혼(Animula Vagula Blandula)”의 쓸쓸한 음성이 이 문에도 어른거린다. 그는 도시를 통치한 황제라기보다, 이곳을 사랑했고 이해하려 했던 여행자였다. 그래서 이곳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행도 그렇다. 우리는 지나온 곳과 앞으로 갈 곳 사이에서 어느 문턱 위에 선다. 하드리아누스가 평생 넘었던 것은 영토의 경계가 아니라, 삶의 경계였던 것 같다. 정복과 평화, 권력과 사랑, 제국과 개인. 이 작은 아치는 그 모든 경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너는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사랑하느냐?”

난 바로 대답할 수 없다. 그 질문은 아마, 내가 평생 길 위에서 붙들고 갈 질문일 것이다.


9.

하드리아누스의 문 뒤로 기둥만 외롭게 서 있는 제우스 신전은 멀찍이서 바라만 본다. 그 몇 개의 기둥만으로도 이 신전이 얼마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했는지 충분히 느껴진다. 기원전 6세기에 시작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천 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온 건축물. 그러나 지금은 몇 기둥만 남아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있다. 돌의 균열과 그 위에 쌓인 먼지는 신화의 폐허라기보다, 오래된 신앙이 머물던 자리의 흔적처럼 보인다. 예전 아테네인들이 이곳에서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던 순간들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사람들의 환호와 기도, 연기의 냄새, 무릎을 꿇은 손들의 떨림.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상상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 웅장함은 이제 오후의 빛에 길게 드리워진 기둥 그림자 속에서 겨우 맥박만 남아 있다.


신전 뒤편의 국가 정원(National Garden)은 생각보다 더 크고 조용하다. 19세기 그리스 초대 왕비 아말리아가 직접 나무를 심고 설계했다는 이 정원은 고대와 근대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아테네의 숨구멍 같은 공간이다. 제우스 신전의 장중함이 등 뒤에서 천천히 희미해지고,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도시의 긴장을 풀어주는 느낌이다. J는 초록이 이어진 산책길에서 오래된 나무의 표면을 쓰다듬고, 하늘로 뻗은 가지의 선을 따라 시선을 올린다. 도시에서 공원이 하는 일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번잡한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고, 자연의 호흡에 잠시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


국가정원 입구에서 만난 육지 거북이와 공원 내 큰 나무


정원을 가로지르자 신타그마 광장이 나온다. 그리스 현대 정치사의 소용돌이를 가장 많이 견딘 장소이자,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해 온 공간이다. 1930년대 군부의 쿠데타, 독재에 맞선 시민 집회, 경제 위기 때의 시위와 토론까지, 이 광장은 늘 ‘외치는 시민들’의 중심이었다. 광장은 단순한 지리적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 민주주의의 맥박이 가장 크게 뛰는 심장 같은 곳이다. 이스탄불에서 탁심 광장이 여행의 중심이라면, 아테네는 이곳이 그렇다.


광장을 벗어나 대성당에 이른다. 네오비잔틴 양식의 둔중한 돔 아래로 사람들이 오가고, 그 사이로 오래된 종교의 무게가 가만히 내려앉아 있다. 대성당 안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벽과 모자이크에 부딪혀 잔잔하게 흩어진다. 색이 공기 속에서 천천히 퍼지며, 내부를 한 겹 더 깊은 시간으로 끌어 당긴다.


다시 안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상점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향신료 냄새와 구운 고기 냄새, 레몬 비누 향이 뒤섞여 정신이 잠시 혼미하다. 관광객과 현지인, 상인과 여행자, 다양한 언어가 뒤섞이며 공기는 아고라 방향으로 흐른다. 누군가는 작은 기념품을 고르고, 누군가는 그리스 전통가면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단지 골목의 빛을 찍는다. 도시의 다양성은 이런 무작위의 풍경에서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아테네 대성당


그 길 끝에서, 시선은 다시 고대로 향한다. 고대 아고라(Agora).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치’와 ‘철학’을 일상의 대화로 끌어올렸던 장소. 시장과 의회, 법정과 광장이 한데 얽혀 있었던 고대 아테네의 심장부다. 아고라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말하는 공간'이자, 말이 곧 정치가 되던 도시의 실험실이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걸었던 돌길 위에서 민주주의는 토론과 질문이라는 형태로 태어났다. 오늘의 시장과 어제의 철학이 같은 돌길 위에서 겹쳐진다. 이 도시가 왜 시대를 건너도 살아 숨 쉬는지를 이곳에 서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아테네 로마 아고라 터


조금 더 걸으면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이 나온다. 이번 여행에서 내 배낭에는 카잔차키스가, 유적지에는 하드리아누스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로마 시대 아테네의 지식을 보전하기 위해 세워진 웅대한 도서관이다. 지금은 서고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돌기둥과 회랑의 자취만으로도 하드리아누스가 이 도시에서 ‘기억’과 ‘배움’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느껴진다.

여기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모아두는 장소가 아니었다. 로마 제국 말기의 불안정한 시대에, 이 건물은 도시가 스스로의 지적 유산을 지켜내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이 그 도시의 얼굴이었듯,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역시 아테네가 지닌 자존심의 형태였다. 지식은 도시의 체온을 유지하는 불씨와 같고, 그 불씨가 꺼지면 문명도 함께 희미해진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폐허 속에 서 있어도 묘한 공백감보다는 도시가 기억을 붙들고 버티려 했던 힘이 먼저 느껴진다. 도서관은 기억을 모으는 공간이고, 여행은 그 기억을 몸으로 되새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터 입구


도서관 맞은편, 모나스티라키 역으로 이어지는 벽면에서는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음악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악기 십여 개가 동시에 울리는 버스킹 공연이다. 기타, 첼로, 플루트, 카혼, 바이올린이 뒤섞여 하나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있다. 여러 도시의 버스킹을 봤지만, 규모도, 열기도, 음악을 향한 사람들의 몰입도 이만큼 성대한 자리는 없었다. 악기의 화음은 유적의 돌벽에 부딪혀 반사되고, 다시 공기 중으로 떠올라 사람들의 가슴에 내려앉는다. 고대의 유적과 현대의 연주자들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오래된 도시와 예술이 서로를 지탱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잠시 즐긴다.


아테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맞은 편 버스킹 장면


다시 찾은 모나스티라키 역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어제의 역은 어둠 속에서 낡고 섬뜩하고, 조금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래피티는 폭력처럼 보였고, 계단에 앉아 있던 젊은이들은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그래피티는 도시의 맥박처럼 보이고, 플랫폼의 낡음은 세월이 자연스럽게 스쳐 간 흔적으로 읽힌다. 어수선함조차 일부러 헝클어뜨린 무대 장치 같다. 같은 공간인데 하루 만에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아침 바자르의 활기, 그곳에서 산 재료로 차려 먹은 브런치의 만족감, 인상적인 고대 문화 체험, 그리고 오후의 맑은 햇살이 내 안에 남아 있던 눅눅한 습기를 걷어낸 모양이다. 몸에 힘이 차면 의식이 달라지고, 경험은 생각을 바꾼다. 나는 이런 변화를 볼 때마다, 결국 몸이 먼저고 마음은 그 뒤를 따라온다는 쪽에 서게 된다. 마음먹기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려면 의미 있는 몸의 변화, 경험의 확장을 우선해야 한다.

어제의 아테네는 내게 어두운 도시였다. 하지만 오늘의 아테네는 다채로움으로 반짝인다. 오늘의 모나스티라키 역이 어제의 그것과 같지 않은 것처럼, 도시는 한 장면으로는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은 종종 내게 선입견에 주눅 들지 말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10.

타브로스 역에서 내려 근처 마트로 향한다. 오늘은 여행 중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사는 날이다. 튀르키예에는 안 팔던 돼지고기가 이곳 그리스에는 있다. 목살과 삼겹살을 반반 사고, 상추도 잊지 않는다. 숙소로 오는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여행 끝에 맞이하는 ‘돼지고기’라는 단어가 격하게 식욕을 자극한다. J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애 같다”며 웃는다. (원래 애들은 '꼬기 반찬'에 환장하는 법이다.)


요리 레시피는 간단하다. 우리가 가진 소스를 총동원에서 섞는 방식이다. 소금, 후추, 올리브유, 데리야키소스, 꿀. 그리고 아침 시장에서 산 야채들이 총출동한다. 먼저 양파와 그린빈을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올리브유에 가볍게 볶는다. 다음엔 돼지고기를 팬에 올려 물로 희석한 데리야키 소스와 후추, (설탕을 대신하는)꿀을 넣어 졸이듯 익힌다. 소스가 고기 속으로 스며들며 색이 윤기 있게 변한다. 간장과 꿀에 돼지고기가 졸여지는 냄새는 집 나간 시아버지도 돌아오게 한다.(맨날 며느리만 집 나가라는 법 있나?)

돼지고기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떻게 조리해도, 웬만하면 맛있다는 것이다. 고기 자체에 은근한 단맛이 있고, 조리방법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발산한다. 소고기나 닭고기보다 씹히는 탄력이 좋고, 지방과 살코기의 경계가 부드럽게 녹아들며 융화되는 맛이 뛰어나다. 돼지고기 볶음 한 접시면 금세 고향의 맛이 살아난다.


마지막 단계는 밥이다. 여행 내내 들고 다녔던 오르조(orzo)를 꺼낸다. 처음엔 터키 쌀인 줄 알고 샀지만, 알고 보니 쌀 모양의 파스타였다. 그러나 그 무지 덕에 우리는 오르조를 밥처럼 지어먹기 시작했고, 어느새 익숙해졌다. 익히면 밥알보다 두세 배 크고, 더 쫄깃해 씹는 재미가 있다. 이 오르조에 돼지고기 소스를 버무려 볶아내면 뜻밖에 환상 조합을 경험할 수 있다. 우연히 만든 레시피가 예상 밖의 궁합을 보일 때, 여행자의 식탁은 조금 들뜬 실험실이 된다. 위대한 창조는 무지한 실험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창문 너머로 지중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아테네 주택가의 공기를 식힌다. 부엌에서는 따뜻한 냄새가 천천히 번진다. 작은 식탁 위에 돼지고기볶음과 오르조, 상추, 야채샐러드가 차려지고, 맥주 한 잔을 더한다. 이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는 아니겠지만, 가장 나를 들뜨게 한 음식임에는 분명하다.


여행에서 최고 밥상은 차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가 먹던 익숙한 식재료에 '긍정'과 '감사' 한 국자를 넣어서 볶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