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th. 아테네(3)
바위 언덕 약 150미터 위에 자리한 이 신전은, 아테네라는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사방으로 열리는 시야를 지배한다.
신과 인간, 이상과 현실, 예술과 정치가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지며 ‘인간 중심의 세계’를 완성하려 했던 실험의 현장. 그 실험의 얼굴이 바로 파르테논이다.
낮의 기온과 달리, 아테네의 아침 공기는 다소 차갑다. 10월의 아테네는 일교차가 크다. 한낮과 새벽의 온도 차이가 10도 가까이 벌어진다. 위도는 서울과 거의 비슷하지만, 평균기온은 오히려 아테네가 5도가량 높다.
오늘 조깅은 타브로스 역에서 피레우스(Piraeus) 항구 방향이다. 도심의 좁은 산책로는 배수로를 따라 바다로 이어진다.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다. 폭은 10미터 남짓, 두꺼운 콘크리트 벽면에는 어김없이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저런 긴 도화지를 도시의 예술가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어느새 그래피티에 익숙해졌는지, 이 도시의 화장처럼 보인다.
해안 방향으로 2~3킬로미터쯤 더 달리면 공기의 냄새가 바뀐다. 피레우스(Piraeus)항에서 불어오는 바다 냄새다. 해안도로에 막혀 바로 바다 쪽으로 내려갈 순 없지만, 항만의 크레인과 파란 띠 같은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면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Stavros Niarchos) 공원이 나타난다. 이 공원은 그리스 국립도서관과 국립오페라하우스를 품은 아테네의 복합 문화공간이다. 현대 그리스의 대표적 건축으로, 도시와 바다를 연결한 숨구멍 같은 곳이다. 평지를 넓게 깔아놓은 뒤 그 위에 완만한 언덕을 조성하고, 건물은 유리와 철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아테네의 햇빛과 바람을 끌어들이는 구조다.
공원 안쪽 길로 들어서자 러너들이 늘어난다. 짧은 러닝 팬츠에 얇은 반팔을 입은 젊은 조깅족, 속도를 맞춰 나란히 달리는 중년 부부, 그리고 천천히 달리는 노년의 러너까지. 이국의 도시에서 러너들과 마주칠 때마다 반가운 연대감이 든다. 가벼운 인사와 미소를 나눌수록 기운이 솟는다. 공원 언덕길은 흙과 자갈이 섞인 자연스러운 경사다.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허브 향이 낮게 떠 있다. 바닥의 흙을 차고 나가는 러닝화의 박자음이 경쾌하다. 언덕 꼭대기에 닿자 투명한 유리 건물 두 채가 시야에 펼쳐진다. 그리스 국립도서관과 국립오페라하우스다. 건물 위 태양광 루프는 바다를 향해 길게 펼쳐 있고, 아침빛이 유리면에 부딪혀 산란한다. 뒤로는 아테네 시내가 보이고, 앞으로는 지중해의 선명한 수평선이 이어진다.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고 심호흡을 해본다. 공기가 상쾌하다.
공원 옆으로 이어진 피레우스(Piraeus) 항은 고대 아테네의 전략적 중심이었다. 전쟁과 교역, 식량 공급, 은광의 수송까지 도시의 존립이 모두 이 항구에 달려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 테미스토클레스가 이곳에 해군 기지를 세우지 않았다면, 아테네는 내륙의 작은 폴리스로 머물렀을 것이다. 강한 해군은 민주정의 기반이었고, 바다를 향한 통로는 도시의 경제와 사상을 함께 키웠다.
바다를 지배한 도시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면서 문화적 교류와 기술, 사상까지 빠르게 확장된다. 베네치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이 그러했고, 고대 아테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바다를 가지지 못한 도시들은 대개 주변 지역의 변방으로 남았다. 바다와 단절되는 순간, 도시의 운명은 급격히 쇠락한다. 불과 일주일 전 에페소스에서 봤던 풍경이 그 사실을 증언한다. 한때 항구를 품고 번성했던 아나톨리아 해안 최대 도시는, 해안선이 밀려나고 항로가 막히자 고립되었고, 결국 도시의 운명을 다했다. 바다는 곧 길이었고, 길이 사라진 도시는 생명력을 잃는다. 지금의 피레우스는 고대처럼 장대한 중심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테네의 ‘밖’을 향한 창문 역할을 한다. 크레타, 산토리니, 미코노스, 낙소스, 파로스 같은 에게해의 대표적인 섬들로 향하는 여행이 이 항구에서 시작된다.
여유로운 브런치와 짧은 휴식을 취한 뒤, 숙소를 나선다. 오늘 일정은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과 아크로폴리스다. 메트로를 타고 가, 오모니아(Omonia) 역에서 내린다. 박물관까지 걷는 도심의 길은 밝고 여유롭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무려 1874년 개관한 곳이다. 오래된 벽돌 건물은 화려하지 않지만, 박물관 입구부터 시간의 중량감이 느껴진다. 번화한 도심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역사’라는 방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유리 진열 케이스(vitrine)가 눈에 띈다. 시선을 붙잡는 유물은 이른바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이다. 미케네 시대(BC 16~12세기)의 왕실 무덤에서 출토된 장례용 가면으로, 얇은 금판을 두드려 얼굴 형태를 빚어냈다. 가면의 수염과 눈매, 콧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당시 권력자의 위상을 표현한 조형 언어에 가깝다. 금을 사용한 이유는 부(富)의 과시만이 아니라, 부패하지 않는 재료를 통해 죽은 자의 위엄과 기억을 보존하려는 의도였다. ‘아가멤논’이라는 이름은 슐리만이 붙인 해석일 뿐이고, 가면이 특정 인물을 지칭한다는 증거는 없다.
망자의 황금가면을 대표하는 투탕카멘이 BC 14세기 유물이니, BC 16~15세기에 만들어진 미케네 왕들의 가면이 시기적으로는 조금 앞선다. 이집트에서는 죽음을 ‘이승과 저승의 연결’로 여겼고, 파라오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잇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의 황금 가면은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신적 품위를 부여했다. 미케네의 간결한 금판과 달리, 이집트의 가면은 왕이 신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의례적 장치에 가까웠다.
전시실 한가운데, 말 위에 올라탄 작은 소년이 시야를 단번에 붙잡는다. 아르테미시온의 기수(The Jockey of Artemision, BC 150–140경) 청동상이다.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아래 작품 표식과 출토 정보를 다시 확인해 본다. 과감한 조형과 균형, 그리고 생생한 운동감이 고대의 것이 맞나 싶다. 이 청동상은 에우보이아 근해 난파선에서 인양된 유물로, 고대 청동 조각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그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소년의 몸은 앞으로 쏠려 있고, 말은 막 달리기 시작한 듯 근육이 팽팽하다. 말의 앞다리가 공중에 뜬 포즈는 단순한 과장이라기보다, 당시 조각가들이 청동 내부에 얼마나 정교한 지지 구조를 설계했는지를 보여준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이 인간의 감정과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했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소년의 표정에는 긴장과 결의가 섞여 있고, 말의 몸에는 질주 직전의 에너지가 응축돼 있다. 그 시대 신이나 영웅을 이상화한 조각상과 달리, 이것은 현실의 몸이고 현장의 순간이다. 보는 내내, '역동적 찰나'를 포착하고 구현해 낸 예술성에 감탄이 멈추지 않는다.
다음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자동으로 한 지점에 멈춘다. 아르테미시온 곶(Cape Artemision)에서 인양된 또 하나의 명물, 제우스 또는 포세이돈 청동상(BC 470–450경)이다. 일단 청동의 질감이 공기를 누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동상의 볼륨과 균형감에 놀란다. 양팔을 넓게 벌린 자세 덕분인지 실제 크기보다 훨씬 커 보인다. 청동 표면에는 바닷물 속에서 견뎌온 세월이 거친 피부처럼 남아 있다. 오른손에 빈자리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다. 번갯불이라면 제우스가 되고, 삼지창이라면 포세이돈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신인지 모호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들고 있었을 ‘무기’가 아니라 몸 자체가 발산하는 힘이다. 넓은 어깨, 탄력 있게 정리된 등 근육, 절제된 복부의 선. 어떤 장식도 없이 남성의 몸 하나만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던지기 직전의 순간을 잡아낸 포즈는 움직임이 아니라 긴장으로 조각된 힘이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신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완벽한 인간이다.
(J는 유독 이 청동상을 오래 관찰한다. 내가 '밸런스'에 감탄할 때, 그녀는 '언밸런스'를 주목했을지도 모르겠다.)
전시실 한쪽에서 아프로디테, 판, 에로스가 한 덩어리처럼 묶인 대리석 군상이 눈에 들어온다. 아프로디테는 몸을 약간 틀어 샌들을 들어 보이며 판의 접근을 막고, 에로스는 그들 사이를 조심스레 가로막는다. 헬레니즘 후기(BC 1세기)의 작품답게 신화를 장엄하게 표현하기보다, 인간적인 농담과 순간적 몸짓을 담아냈다. 가까이 다가가면 세 인물의 표정과 손짓이 더 또렷해진다. 아프로디테의 시선은 단호하면서도 완전히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판의 장난기는 대리석 주름 사이에 자연스럽게 숨어 있다. 에로스의 작은 날개와 가벼운 몸짓은 장면 전체의 긴장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아프로디테는 위엄 있는 여신이지만, 이 조각에서는 인간적이다. 샌들을 들고 판을 향해 “건드리지 마”라고 하듯 살짝 비껴선 몸짓은, 신을 신격화하기보다 친근하게 다루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판의 장난 섞인 접근과 에로스의 중재 역시 사랑과 욕망, 유혹과 경계라는 주제를 풍자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듯하다. 당시에 이 대리석 앞에서 쏟아졌을 많은 수다가 궁금하다.
전시실을 이동하며 마주치는 유물들은 시대가 달라도 형태를 만드는 감각이 닿아 있다. 어떤 조각은 몸의 선을 과감히 드러내고, 어떤 부조는 인물 사이의 거리와 자세로 당시의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토기들은 기하문양과 동물 그림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취향과 관습을 담아냈다. 과장된 표정의 극장용 마스크는 한눈에도 연극적 긴장이 드러나고, 반대로 실제 인물을 본뜬 듯한 두상은 바라볼수록 현실의 얼굴로 깨어난다.
크고 작은 작품들을 지나며 어제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떠오른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파르테논 조각군과 신전의 역사를 중심으로 ‘특정 장소’의 맥을 따라간다면,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은 훨씬 폭넓은 시기를 한 공간에 펼쳐놓는다. 신전의 장식적 조각보다는 일상의 도구, 장례 문화, 종교적 상징까지 함께 담겨 있어 아테네라는 도시의 생활사와 세계관을 더 넓게 보여준다.
박물관 중정에 마련된 카페에서 잠시 쉬며 오늘 본 작품들을 떠올린다. 유물들이 전하는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시대의 생활과 상상력이 어떻게 한 도시를 이루었는지 감이 잡힌다. 누군가 아테네에 온다면 두 박물관을 모두 방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다시 서니 어제의 허탈함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일 년에 350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답게, 오늘도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입구가 붐빈다. 하늘은 맑고 햇볕은 한층 강하다. 모자나 선글라스 없이 오면 고생 좀 하겠구나 싶다. 덕분에 언덕 위의 대리석은 멀리서도 밝게 빛난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한 번 더 동선을 확인한다. 남쪽 경사면을 따라 먼저 디오니소스 극장을 보고, 이어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을 지나 프로필라이아로 오른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파르테논과 에레크테이온, 마지막으로 그리스 국기 전망대에서 아테네 시내를 조망하고 내려오기로 한다.
길은 내내 오르막이다. 경사길 초입에 고대 석축의 잔편과 신전 기단 조각이 흩어져 있다. 관광객들의 물결을 따라 계단을 몇 구비 돌면 잠시 숲 그늘을 만난다. 곧이어 햇빛 길이 다시 열리면서 남쪽 경사면이 펼쳐진다. 그 아래로 첫 유적, 디오니소스 극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가장 오래된 그리스 극장이자, 비극과 희극의 무대가 처음 형식을 갖춘 곳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시민들은 바로 이 계단석에 앉아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절반쯤 남은 객석과 무대 흔적뿐이지만, 돌 사이로 남아 있는 곡선만으로도 이 공간이 어떤 구조였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디오니소스 극장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경사면 아래쪽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반원형 구조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기원후 2세기에 아내를 기리기 위해 세운 공연장이다. 남아 있는 건물만 보아도 당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데, 돌출된 외벽과 객석의 기울기, 무대 뒤편의 장식적 요소가 모두 로마 시대 특유의 건축 감각을 보여준다.
펜스 안을 들여다보니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이 공간은 오랜 세월 폐허처럼 남아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매년 아테네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가 되고, 세계 각국의 음악가와 연극단이 이곳에서 공연한다. 무대 중앙에는 조명 장비가 놓여 있고, 객석에는 음향 테스트를 하는 스태프들이 오르내린다. 고대 극장이 현대 공연장으로 다시 살아 숨 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대 한가운데 서면 정면에 아크로폴리스 절벽과 위쪽으로 프로필라이아와 파르테논이 살짝 보일 듯하다. 공연자의 시선도, 이곳에서 듣게 될 공연의 음향도 무척 궁금해진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햇빛이 점점 강해지고, 길은 점차 좁고 가팔라진다. 몇 개의 굽이를 돌면 아크로폴리스의 서쪽 관문, 프로필라이아(Propylaia)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르테논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통과시키는 웅장한 현관이다. 멀리서 보던 기둥의 구조가 가까워질수록 섬세한 비례가 드러난다. 계단을 몇 단 더 오르면 아테네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시선을 조금 낮추면 발아래로 아레이오스 파고스(Areopagus) 언덕도 보인다. 프로필라이아에 서면 누구라도 잠시 멈추게 된다. 뒤쪽으로는 파르테논이 기다리고 있고, 아래로는 아테네 전체가 펼쳐져 있다. 이곳은 과거의 시간을 뒤로 두고, 도시와 세계를 내려다보는 자리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왜 이 언덕이 도시의 심장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프로필라이아의 그늘을 지나 한 발 더 내딛는 순간, 파르테논의 기둥이 시야 한가운데 우뚝 서며 모습을 드러낸다. '드디어 왔구나!'. 사진과 영상에서 수없이 보았던 이미지가 아니라, 돌의 질감과 빛바랜 색, 기둥 사이의 간격까지 또렷한 실체로서 파르테논이 내 앞에 서있다. 몇 걸음 더 다가가자 대리석이 햇빛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이고, 균형 잡힌 기둥들이 신전 전체를 꿋꿋이 지탱하고 있다.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다는 감동이 조금 늦게, 더 진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파르테논은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가 가장 힘과 자부심을 갖고 있던 순간에 세워졌다. 도시의 수호신 아테나에게 바친 신전이지만, 단순한 종교 건축물을 넘어서 아테네 민주정의 이상을 형상화한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피디아스가 만든 거대한 아테나 상이 서 있었고, 외벽의 프리즈에는 판아테나이아 제전에 참여하는 아테네 시민들의 행렬이 새겨져 있었다. 전쟁과 약탈, 화재를 거치며 신전은 여러 차례 훼손되었지만, 기둥의 비례와 구조만으로도 고전 건축이 도달했던 정점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때는, 뼈대만 남은 이 신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라는 사실이 과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파르테논의 의미는 건물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아크로폴리스라는 지형 전체와 결합된 상징성이 핵심이다. 바위 언덕 약 150미터 위에 자리한 이 신전은, 아테네라는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사방으로 열리는 시야를 지배한다. 이곳에 서면 2,500년 전 아테네가 어떤 도시였는지 어렴풋이 떠오른다. 신과 인간, 이상과 현실, 예술과 정치가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지며 ‘인간 중심의 세계’를 완성하려 했던 실험의 현장. 그 실험의 얼굴이 바로 파르테논이다.
신전이 세워진 역사적 맥락 역시 그 권위에 깊이를 더한다. 페르시아 전쟁으로 도시가 폐허가 된 뒤, 아테네는 단순한 복구가 아닌 ‘새로운 아테네’를 선언하듯 파르테논을 올렸다. 승전의 기세를 과시하는 기념비라기보다, 자신들이 어떤 공동체이며 무엇을 회복했는지를 지중해 세계에 알리고자 한 정치·문화적 선언이었다.
파르테논의 왼쪽, 언덕 끝에는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파르테논이 아테네의 힘을 앞세워 세운 신전이라면, 에레크테이온은 그보다 오래된 신화의 기억을 품은 장소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도시의 수호권을 두고 경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자리이며, 두 신이 남긴 흔적을 건물 안 곳곳에서 보존하려다 보니 구조가 비대칭이 되었다고 한다.
역시 눈에 띄는 것은 남쪽 주랑의 여인 기둥, 카리아티드(Caryatids)다. 어제 박물관에서 보았던 실물 기둥이 떠오르면서, 이 모조상들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전을 떠받치는 실물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고대인들은 신전을 단순히 신을 모시는 집이 아니라, 인간과 신화가 함께 머무는 장소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둥 하나에도 인간 형상을 빌려 무게를 감당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
파르테논을 뒤로하고 북동쪽 끝으로 나가면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는 작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 언덕의 끝이다. 난간 가까이 서는 순간, 시야가 한 번에 열린다. 아테네라는 도시가 층층이 겹쳐 발아래 펼쳐지고, 붉은 기와와 회색 건물들 사이로 고대의 흔적들이 또렷하게 박혀 있다. 전면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비롯해 남쪽의 디오니소스 극장, 서쪽의 아고라와 헤파이스토스 신전, 조금 떨어진 곳의 하드리아누스 도서관까지. 도시의 역사층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온다.
이곳에 서 보면 아크로폴리스의 ‘높이’가 왜 결정적 요소인지 자연스레 이해된다. 단순히 방어를 위한 고지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한 방향으로 시선을 모으는 축이었기 때문이다. 사각이 없는 신의 조망과 올려다보는 행위가 경외심을 만들고, 신화와 정치, 공동체의 질서를 하나로 묶었다. 이곳은 권위의 표식이자, 도시의 정신을 모으는 시선의 중심점이었다.
절벽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큰 국기를 흔들고, 아래에서는 도심의 소음이 낮게 퍼져 올라온다. 고대의 아테네는 더 작고 단순한 도시였지만, 지금의 아테네가 아무리 넓게 뻗어도 아크로폴리스는 여전히 중심에서 도시를 붙잡고 있다.
언덕을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자, 파르테논은 처음보다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기둥 가운데를 미세하게 부풀게 만드는 엔타시스, 바닥면의 완만한 곡선 등 착시를 보정하기 위한 건축 기법도 눈에 들어온다. 한국 전통건축의 처마선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이 시각적 불완전함을 조율해 구조 전체를 더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완벽함이란 '계산된 불완전함'에서 나온다는 통찰이 거대한 현실로 눈앞에 서 있다.
아레이오스 파고스(Areopagus)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서쪽, 바위가 드러난 낮은 봉우리다. 아크로폴리스 계단을 내려와 잠시만 걸으면 금세 닿는다. 언덕 자체는 크지 않지만, 고대 아테네의 원로원과 법정이 이곳에서 열렸고, 도시의 중대한 결정들이 이 바위 위에서 내려졌다. 아래로는 아고라가, 위로는 아크로폴리스의 절벽이 겹쳐 보인다. 이 도시의 일상이 어떻게 신전과 법정, 시장 사이를 오가며 형성되었는지 단숨에 이해되는 지점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 오르니, 난간 옆의 안내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울이 이 자리에서 연설했다는 짧은 기록이 적혀 있다. 단 몇 줄에 불과한 문장인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춘다. 그는 왜 굳이 이곳까지 왔을까. 철학과 토론이 일상인 아테네에서 그의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다신교의 도시에서 유일신과 부활을 말하는 일이 과연 통했을까? 인간의 이성과 논증을 중시하는 이 도시에서 바울의 메시지는 철학의 문법과 어떻게 충돌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실 바울은 무척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는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했고, 공동체를 조직했고, 초기 기독교의 교리적 틀을 세운 사람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예수 운동을 “종교”의 형태로 굳혀낸 인물은 바울이라는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이 지점을 대담하게 파고든다.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말할 때, 군중 속에서 "나는 여기 살아있다"며 나타난 예수를 향해 “네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충격적인 설정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이 틀어버린 방향 전환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바울은 예수의 실존적 모습보다, 예수를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더 중요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카잔차키스는 바울을 그렇게 생각했고, 나 또한 오래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품어왔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바울을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영혼의 자유를 희구했던 카잔차키스와의 동행은 확실히 그리스에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언덕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시야를 돌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바라본다. 산과 바다, 고대와 현대, 신화와 일상이 한 화면에 겹쳐진다. 아테네를 걷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먼 과거의 시민이 된 듯한, 묘한 중첩감을 느낀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오면 길은 곧바로 로만 아고라로 이어진다. 이곳은 기원전 1세기 이후 로마 지배기에 새로 정비된 공공 시장으로, 행정 건물과 상가, 회랑이 자리하던 곳이다. 지금은 잡초 사이로 기단과 돌조각만 남아 있지만, 한때 도시의 중심 기능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시장의 자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대 시장 터 바로 옆에 현재의 노점 시장이 열리고 있다. 파란 천 위에 놋쇠 장식품과 오래된 도구들, 동전과 구슬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상인은 손님을 기다리며 옆자리 상인들과 타블라(Tavla)를 두고 있다.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움직이는 소리와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관광객들은 골동품보다 이들의 풍경을 더 흥미롭게 바라본다. 폐허의 유적과 일상이 한 장면 안에 움직이는 대비가 무척 '아테네스럽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시야에 들어오자 기대가 앞선다. 그는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으로, 대장장이이자 불과 기술의 수호신이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자 아프로디테의 남편이기도 하다. 아테네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은 도리스식 신전이라 건물의 비례와 구조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막 관람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펜스 너머로 외형만 바라보며 아쉬움을 누른다.
돌아가는 길 한쪽에서는 현지 가이드가 소그룹을 모아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 빛 속에서 여행자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가이드는 한때 이곳이 불과 금속을 다루던 장인들의 구역과 맞닿아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오늘 하루 아테네를 걸으며 마주한 것은, 거대한 유산의 목록이 아니라 이 도시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정서였다. 신전과 극장, 시장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인이 신을 멀리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신들은 도시의 일상 구석구석에 놓여 있었고, 시민들은 예배와 토론, 축제와 노동을 별개의 것으로 나누기보다 한 흐름 속에서 이어가며 살았다. 박물관의 조각과 청동상은 그들의 신념과 욕망을 기록한 언어였고, 언덕 위 건축물들은 공동체가 무엇을 중시했는지를 조용히 말해주는 표지였다.
역사의 현장에 와본다는 것은, 책에서 배운 지식을 조심스럽게 수정하고 때로는 새로운 질문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돌기둥의 촉감, 대리석의 색, 바람의 결, 햇빛의 각도, 광장에 깔린 기운 같은 것들은 어디에도 온전히 적혀 있지 않다. 이곳에서 눈으로 보고 발로 딛고 숨을 들이마셔야만 비로소 이해되는 성질의 것들이다. 오늘 아테네 곳곳을 걸으며 ‘유적’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의 생각을 바꾸는 하나의 문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