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로
지금 지도에서 ‘카파도키아’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다.
고대 페르시아어 Katpatuka,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그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시간의 기억이다.
화산이 남긴 부드러운 돌 위에 사람들이 삶을 새기고, 바위 속에 집을 파고, 신앙을 숨기던 시절의 흔적이 오늘도 이 대지 위에 남아 있다.
낯선 땅에서의 이동은 언제나 변수를 품고 있다. 특히 비행기를 탈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두르는 편이 좋다. 새벽 4시 5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몸을 일으킨다.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한 번 훑어본다. 5시 40분, 우버를 부르며 현관문을 닫는다. 가늘고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 있고, 공기는 평소보다 차갑다.
우버 기사는 5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인다. 인사 대신 캐리어에 먼저 시선을 준다. 숙련된 동작으로 트렁크를 열고 짐을 싣더니 짧게 말한다. “Airport, OK?”.
새벽의 이스탄불은 아직 어둡지만, 도심 일부 도로에는 이미 차들이 밀리고 있다. 기사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묻고, “Korea”라고 답하자, 유튜브를 켜 K-pop을 재생한다. 낯선 나라의 고속도로 위에서, 한국에서도 잘 듣지 않던 아이돌 노래가 크게 울린다. 묘한 이질감과 친근함을 동시에 느낀다. 운전은 음악의 비트만큼이나 빨랐고, 거칠다. 빗길 위에서도 속도계는 시속 100km를 오간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전화기를 쥔 채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한다. 긴장감이 밀려오지만, 이상하게도 이 풍경이 이스탄불의 마지막 인상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전체가 이런 식이었다. 거칠고 예측 불가능하며, 동시에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봐도 이스탄불 공항은 크다. 도시 자체가 대륙의 경계라면, 공항은 그 경계의 심장 같다. 일찍 움직인 덕분에 시간은 여유롭다. 유리 벽 너머로 수많은 비행기가 쉼 없이 들고 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게이트를 찾아 걷고, 면세점의 불빛은 밤과 낮의 구분선을 지워놓는다. 면세점과 브랜드 매장은 넘치지만, 이상하게 쉴 만한 자리는 드물다. 우리는 탑승 게이트로 가는 길목의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비행기 탑승까지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았다.
J는 카잔차키스의 <내 영혼의 자서전>을 펼치고, 나는 <지중해 기행>을 읽는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영혼의 순례자라는 확신이 짙어진다. 세상을 떠돌며 카잔차키스는 결국 자신 안의 신을 찾아다녔다. 그에게 '여행'은 길 위의 수행이었고, '자유'는 신앙의 다른 이름이었다. 여행의 빈틈에서 읽는 책은 달콤하다. 공항의 소음 속에서도 문장들은 또렷하게 읽힌다.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느린 바람처럼, 지난 시간의 기억이 조용히 정돈된다. 읽는 행위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이동의 긴장은 천천히 사그러든다.
누구는 좌석을 찾고, 누구는 짐을 올리느라 기내는 어수선하다. 그 사이 터키항공 기장은 말인지 웅얼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빠르게 쏟아낸다. 무슨 내용인지 못 알아듣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성공이다. 속사포 랩 같은 그의 터키어 안내를 난 장난스럽게 상상해 본다.
"Yeah! 오늘은 월요일. 일하기 더욱 싫지.
비까지 주룩주룩. 맘까지 싱숭생숭.
활주로는 미끄러, 비행기는 시끄러.
엔진 체크 덜 끝나, 짜증 나! 짬뽕 나!
..."
그의 심드렁한 빠른 말들이 엔진 소리에 섞여 기내를 떠돌고, J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세상 어느 비행기든 기장의 메시지는 다 비슷하다.
'하여튼 벨트 잘 매고, 어쨌든 다음에도 우리 항공 꼭 이용해 주면 좋겠어. 땡큐!'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행기는 네브셰히르 공항에 내려앉는다. 공항터미널은 버스터미널보다 약간 큰 규모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공기가 완전히 다르다. 멀리 구릉까지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바람은 투명하고, 햇빛은 눈이 시리게 강하다. 이스탄불에 비해 이곳의 대기는 메마르다.
공항 앞에는 택시를 대신하는 돌무쉬(소형 밴)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괴레메까지 인당 300리라. 차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우리 같은 이방인 여행객이 타고 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낯설다. 한쪽은 몽골의 초원 같고, 또 다른 쪽은 동유럽 시골의 언덕을 닮았다. 카파도키아, 이름만으로도 여행자들의 마음이 먼저 날아드는 곳.
사실, 지금 지도에서 ‘카파도키아’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다. 대신 괴레메, 우치히사르, 네브셰히르 같은 작은 도시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카파도키아’라 부른다. 고대 페르시아어 Katpatuka,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그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시간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화산이 남긴 부드러운 돌 위에 사람들이 삶을 새기고, 바위 속에 집을 파고, 신앙을 숨기던 시절의 흔적이 오늘도 이 대지 위에 고스란이 남아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말하듯, '이 땅의 풍경은 외계의 어느 행성 같을까?' 궁금했다. 차가 굽은 길을 돌자, 대답이 곧 돌아온다. 낯선 회백색의 바위들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다. 이거구나! 덩달아 내 안의 여행 세포들도 꿈틀대며 깨어난다.
예약한 호텔의 카운터에는 피코가 앉아 있다. 스무 살 중반쯤의 흑인 청년이다. 카파도키아 한가운데, 저 먼 대륙의 피부색을 가진 그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흥미롭다. 어떤 사연이 그를 이곳까지 데려왔을까.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만남 하나에도 상상력이 자라난다. 며칠 지내다 보면 자연히 그의 사연도 알게 되겠지.
피코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는다. 서투른 영어로 말을 주고받는데, 그 어눌함조차 따뜻하게 느껴진다. 내일 벌룬 투어가 가능한지 묻자, 그는 확인해 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카파도키아의 벌룬 투어는 하늘이 허락해야만 가능한 일이라 했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 안개의 두께, 모든 것이 운명처럼 맞아야만 이륙할 수 있다. 그래서 벌룬 투어는 기다림조차 설렘으로 바꾼다.
호텔은 마음에 들었다. 돌을 깎아 만든 전통 벽면은 투박하지만 온기가 있고, 터키식 카펫 무늬의 커튼과 침대보는 짙은 색감으로 방을 감싼다. 창문을 열면 멀리 흰색에 가까운 작은 봉우리들이 솟아있다. 루프탑에 올라가 보니 그 풍경은 한 폭의 거대한 지도처럼 펼쳐진다. 오래된 지층 위에 세워진 도시, 바람이 깎은 바위의 계곡들, 그리고 저 멀리 흘러가는 빛의 강. 나는 정말로 다른 별에 왔구나.
괴레메 시내는 멀지 않았고, 크지도 않았다.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시내 초입의 식당에 들어간다. 도로를 마주하고 있어 차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반대로 저들에게 우리는 식당 전면에 전시된 사람들처럼 보이겠지. 식당은 허름했지만 인기가 있었다. 빈자리가 생기면 바로 채워졌고, 식탁마다 케밥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우리는 야채를 다진 샐러드와 닭고기 케밥, 아이란 두 잔을 주문한다. 아이란은 터키 전역에서 마주칠 수 있는 국민 음료다. 요거트에 물과 소금을 섞어 거품이 일도록 휘저은, 더위와 갈증을 식히는 음료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몇 번 마시다 보면 그 짠맛이 묘하게 중독된다. J는 아이란을 마음에 들어 했다.
이스탄불보다 기온이 더 높아서인지, 식사 내내 파리를 쫓아야 했다. 한 손은 음식에 달려드는 파리를 쫓기 위해 휘젓고, 다른 손으로는 포크를 움직이다 보니 금세 땀이 났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런 불편함이 여행을 실감 나게 한다. 이국의 한낮, 소음과 향신료 냄새, 그리고 땀 냄새가 뒤섞인 공간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낯선 세계를 여행을 하고 있구나' 실감하게 한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오니 피코가 다가와 말한다.
“내일 벌룬 투어는 날씨가 맞지 않아 취소됐어.”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런, 내심 기대했던 벌룬 투어가 취소되었다니. 이틀이나 연속 취소라면 모레 예약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일단 계획을 바꾸기로 한다. 모레로 예정했던 그린 투어(Green Tour)를 내일로 앞당기고, 벌룬 투어는 그다음 날로 옮기기로.
투어 예약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다시 시내로 나섰다. 괴레메 시내는 많은 여행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메인 도로뿐 아니라 골목 안까지 호텔, 식당, 기념품 가게, 그리고 수많은 투어 상품 판매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자세히 보니 몇몇 마당에는 거대한 벌룬을 싣는 소형 트레일러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낮 동안 하늘을 떠돌던 풍선들이 지금은 묵직한 짐승처럼 누워 있다. 바람이 멎은 골목 사이로, 잠든 하늘이 숨을 고르는 듯했다.
대로변의 여러 여행사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간다. 문 앞에는 각종 투어 상품의 가격표가 걸려 있다. 검은색 히잡을 가볍게 걸친 30대 초반의 터키 여성이 우리를 맞는다. '밖에 사진을 보니 석양을 배경으로 말을 타는 투어가 있는 것 같은데, 가능하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Ok, Sunset Horse Riding Tour”라고 답한다. 인당 45유로, 약 두 시간 코스라고 한다. 단순히 체험용 승마가 아니라 괴레메 외곽의 붉은 바위 계곡을 천천히 탐험하는 일정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든다. 4시 30분에 숙소 앞으로 픽업을 가겠다는 말로 예약을 확정한다. 모든 일정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런 즉흥의 조정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얼굴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말을 타고 석양을 보고, 내일은 다시 새로운 하늘을 기다리자.
픽업 시간에 맞춰 미니 밴이 숙소 앞에서 멈춘다. 우리 외에도 이미 열한 명의 여행자가 타고 있었다. 오늘 함께 말을 타고 이동할 사람들이다. 차 안의 대화를 들어보니 러시아 가족 넷, 중국인 네 명(여자 둘, 남자 둘), 미국인 두 명,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명까지, 국적만큼이나 표정도 다양했다. 현장에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스태프가 다섯 명쯤 있었는데, 대부분 20~30대였다.
“주의 사항 잊지 마세요. 그다음에는 말이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간단한 설명 뒤로 무심한 출발 신호가 떨어진다.
승마가 처음인 J는 긴장한 얼굴이다.
“안장 높이와 흔들림에 금세 익숙해질 거야. 조금만 견뎌 봐.”
나는 J 뒤에 따라붙으며 안심을 권한다. 다행히 말들은 차분하고 온순했다. 목장을 벗어난 지 5분쯤 되었을까, 사진으로만 보던 '카파도키아'스러운 풍경이 서서히 나타난다. 바위는 불규칙한 조각처럼 솟아 있고, 굴곡진 능선이 회색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어진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건조했다. 승마 행렬은 일렬로 늘어서 천천히 능선을 넘는다. 말 위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리드리컬하게 익숙해진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햇살은 어깨에 비스듬히 그러나 사납게 꽂힌다. 괴레메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해발 1,200 높이의 지역이니 햇살이 강할 수밖에 없다. 말발굽이 흙을 차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만든다. 이 단조로운 리듬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지형은 완만했지만, 때때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초보자에게도 적당한 스릴을 선사한다.
6시 반 무렵, 석양이 대지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말을 타고 들판을 가르며 그 빛의 강을 건넌다. 바위와 골짜기가 금빛으로 타오르고, 먼지 속에서 바람이 부드럽게 흩어진다. 어느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춘 듯하다. 인간도, 말도, 바람도 모두 같은 속도로 숨을 쉬며 '하나의 자연'이 된다. 2시간 가량의 승마 투어를 끝내고 말에서 내리자, 다리가 휘청거린다. 땅에 서 있지만 몸은 아직도 흔들리는 공중 위에 있는 듯하다. 먼지와 햇빛, 그리고 말의 체온이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다.
미니 밴은 우리를 시내 한복판에 내려주었다. 승마 투어를 예약했던 여행사로 다시 향했다. 내일 그린투어를 예약하기 위해서다. 그린투어는 괴레메 남쪽 지역의 주요 명소를 하루 동안 돌아다니는 일정이다. 데린쿠유의 지하 도시, 파사바그의 버섯바위, 우치히사르 전망대, 그리고 으흘라라 계곡까지 바람과 모래가 깎아 만든 땅의 역사와 신비를 직접 밟아보는 투어다. 예약을 마친 뒤, 근처의 작은 마트에 들러 과일과 간식과 맥주를 산다. 해가 완전히 기울자 괴레메의 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색에 가까운 버섯 모양 바위들 사이로 노란 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어둠 속에서 반쯤 잠든 마을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깨어난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둘러보다가 한식당을 발견했다. 이 작은 마을에 한식당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떻게 이 낯선 땅까지 흘러들었고,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식당은 대로 시내 중심 자리의 2층을 차지하고 있어 입지가 굳건해 보였다. 하지만 한식을 먹으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튀르키예 음식에 조금 지친 참이긴 했지만, 낯선 나라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 건 여행의 리듬을 깨뜨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바로 옆 건물에 중국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식당은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어김없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메뉴가 있고, 적어도 하나는 입에 맞게 되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식재료도 많고, 향신료 역시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마파두부의 매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떠오른다. 침은 저절로 꿀꺽 소리를 내며 목뒤로 넘어간다.
“오늘 저녁은 중국요리 어때?”
J도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2층으로 올라가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우리를 맞았다. 장난기 어린 웃음이 얼굴에 배어 있다. 상대방도 덩달아 미소 짓게 만드는 귀여움이다. 메뉴판을 보며 닭 요리 두 가지 중 어떤 게 낫냐고 묻자, 그는 아래쪽 메뉴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우리는 목이버섯볶음, 닭 볶음, 마파두부, 계란 볶음밥, 맥주, 그리고 아이란을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부엌 쪽에서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고추기름 냄새가 퍼진다. 낯익은 냄새가 입안 가득 침을 불러온다.
닭볶음 요리는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볶아낸, 한국의 안동찜닭을 닮은 맛이었다. 매콤하고 짭짤한 양념이 밥과 잘 어울렸다. 마파두부도 반갑다. 고소한 두부에 매운 소스가 어우러지자, 회사 근처 중국집의 냄새가 스쳤다. 냄새가 불러오는 기억력은 대단하다. 볶음밥에 소스를 비벼 먹으니 입안이 금세 고향의 온도로 데워진다. 그 순간 또 한 번 깨닫는다. 사람의 입맛이란 결국 기억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정체성이라고.
한국이었다면 이 음식에 5점 만점 기준으로 3점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꺼이 5점을 준다. 남의 땅, 낯선 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익숙함. 그 2점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내 입맛의 정서를 위로받은 값이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왔을 때, 어딘가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아잔이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환청인가? 이스탄불의 그 소리가 이 먼 괴레메까지 따라온 걸까. 창문을 열자 1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작은 모스크의 첨탑이 보인다. 밤의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아잔의 음성은 낮게, 그러나 단호하게 마을을 감싼다. 아나톨리아 반도에 머무는 한 누구도 이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아잔은 단순한 종교 의례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일상의 맥박이다. 알라의 위엄을 알리고,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인간의 하루를 다시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소리. 하루 다섯 번, 아잔은 그렇게 인간의 나약함과 신의 질서를 확인시킨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신이 인간을 놓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인간이 신을 놓지 못하는 걸까.
**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로.
(괴레메를 중심으로 한 인근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