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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약방 Mar 01. 2022

그림책을 읽으면 어디로든 문이 열려요!

'마법침대'와 '골목이 우리를 데려다 줄거예요'

그림책을 읽으면 어디로든 문이 열려요

   

 책방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였어요. 공사를 할 때부터 드나들며, 책방을 자주 찾는 아이가 있었어요. 존 버닝햄의 ‘마법침대(시공주니어)’를 가장 좋아한다며 후박나무 가지 위가 자신의 아지트라고 말하던 아이였어요. 

 후박나무 가지 위라니, 그냥 들어도 넘 거짓말처럼 낭만적이어서 저는 실제 후박나무가 있다는 책방 앞 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정말 아이 하나가 앉아도 될 만큼 크고 굵은 가지를 가진 오래된 후박나무가 학교 운동장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주말 아침이면 가장 먼저 책방 문을 두드리며, 저를 깨우던 아이였습니다. 일요일 어김없이 찾아온 아이와 그림책을 소리내어 몇 권 읽다 아이에게 책방을 맡기고 잠시 책방을 비웠던 적이 있습니다. 책방에는 가끔 손님들에게 드리기도 하고, 판매도 하는  사탕을 몇 봉지 놓아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나갔다 돌아온 사이, 바닥에 사탕들이 우르르 쏟아진 채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아이가 먹고 싶은 마음에 봉지를 뜯었다 실수로 사탕이 쏟아지자 당황해 도망쳤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허락없이 함부로 만지거나 먹어선 안된다는 것을 아이 역시 알고 있었겠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 책방에 놓아둔 제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책방엔 항상 “함께 나누어 먹어요”라는 메모와 함께 누구든 먹을 수 있는 사탕과 과자를 놓아두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는 책방에 놓인 과자를 편안하게 먹고, 종종 자기도 몇 개 가져다 두었다며 제게 자랑스럽게 이야길 하곤 했어요. 함께 먹는 과자와 사탕을 놓아두기 시작하니 그 과자와 사탕을 먹고 싶은 건너편 초등학교 아이들이 책방에 더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아이들은 함께 그림책을 나누는 시간이 많아지고, 책방을 돌보는 책방지기들이 되어주었지요.


 존버닝햄의 ‘마법침대’는 어디로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침대에요. 우연히 산 침대에 쓰여 있는 주문을 외우면 마음껏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지요. 


 저는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퇴근 후나 주말에 책방에 옵니다. 그래서 종달리의 책약방은 ‘사람 대신 책이 지키는 책방’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책약방에 후박나무 아이는 하교길에 책방에 와서 손님들과 그림책도 함께 읽고, 이야기도 나눈다고 합니다. 책약방이 그 아이에게 후박나무나 마법침대가 되어주는 것일까요?


 책약방 책방 벽에는 낡은 문짝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 문의 이름은 ‘어디로든 문’이에요. 만화 도라에몽에 등장하기도 하는 ‘어디로든 문’은 가고 싶은 곳을 말하거나 생각하고 문을 열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문입니다.

 책방에 온 아이들에게 ‘‘어디로든문’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열 수 있는 문이라며, 이 문을 열 방법’을 찾아보잔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에 홀딱 홀려선 손잡이를 잡아당겨도 보고 두드려도 보며 어떻게든 문을 열려 애를 씁니다.

 어떤 아이에겐 그림책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 하고, 다른 아이에겐 힘으로는 열리지 않는 마음을 보아야 열리는 문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함께 그림책을 펼쳐요. 그림책의 세계로 들어서는 건, 바로 마음을 보는 시간이거든요. 


 함께 읽었던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길상효글, 안병효그림, 씨드북)’라는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사라져가는 골목의 따스한 정취가 가득한 그림책이에요. 하지만 골목을 따라 걷다 모퉁이를 돌게 되었을 때 마주치게 되는 것은 정겹고 따스한 풍경만은 아닙니다. 부모의 고함소리가 담 너머 골목에 울리는 장면을 보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지금 내가 느끼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집과 집을 둘러싼 동네에서 찾아봅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집 근처에 있는 것, 부모와 함께 살진 않지만 나를 아껴주는 할머니가 계신 것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림책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망설이지 않고, 그 문을 여는 순간, ‘나’, ‘나와 친구’, ‘나와 가족’, ‘내가 사는 마을’,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그 어떤 곳’이든 데리고 갑니다.

 후박나무 가지와 마법침대, 어디로든 문과 그림책, 그리고 책약방이 있는 골목. 

 그림책을 읽으면 어디로든 문이 열려요어디로든 문을 열고 골목을 따라가면넉넉히 나를 품는 후박나무 그늘 같은 책방이 있지요!”


.작은책 3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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