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더라도 세상은 바뀐다

by 김선애

지난 2022년, 서울 지하철 열차 안에서 열차에서 금지된 행위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말이 포함돼 있었다. ‘수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이란 뜻이다. 그러니 그 안내방송은 성추행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강요하는 성차별적 언어였다.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떳떳하지 못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서울교통공사와 국토교통부에 민원을 냈다. 지하철을 포함해 모든 철도기관의 안내방송에서 ‘성적 수치심’이란 표현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꿔달라고. 그러나 나의 의견을 바로 반영하는 것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나는 이러한 부적절한 용어의 교체를 촉구하는 글을 그해 <한겨레>에 기고하기도 했다.


이후 2년 동안 지하철 안내방송에서는 ‘성적 수치심’이란 표현이 계속 나왔다.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2024년에는 국민 아이디어 공모제에 이 표현을 교체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올해 어느 날, 지하철 열차 내 방송에서 열차에서 금지된 행위를 알리는 것을 듣는데, “성적 불쾌감을 일으키는 행위”라고 용어가 교체된 것이 아닌가! 반가운 일이었다. 아마 나 외에도 여러 사람이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를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자고 요구한 결과, 이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느리더라도 세상은 바뀐다. 우리가 행동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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