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를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섬에 살다 보니 하늘을 올려다보다 비행기를 발견한 일이 잦은데. 지금껏 천천히 나는 것은 비행기요. 빠르게 똥 빼며 날아가는 건 제트기라 생각했다.
“어! 제트기다!”
“저게 제트긴지 어떻게 알아요?”
“빨리 가잖아요? 똥 빼면서! 비행기는 천천히 가고! “
“이 사람아, 제트기도 비행기에 한 종류예요. “
아. 세상엔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큰 범주가 있고 작은 범주가 있다 하였던가. 호랑이도 고양이과 포유류인 것처럼. 옛 그림에 자주 그려진 호랑이가 사실은 고양이라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알게 뭐람.
그렇다 하더라도 비행기와 제트기에는 다름이 있고 차이가 있는 거 아닌가? 사람도 사람마다 다르듯이. 아, 이런 대화가 아니었던가. 에라이.
순간 무식함이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왜인지 모를 당당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어릴 적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무식한 건 널리 알려. 그래야 배워.”
나는 나의 무식을 온 세상에 알리리라.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때가 생각난다.
한편으로는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경험으로 배운 것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을 행복해했던 나인데. 지금은 왜인지 지식에 집착해 가는 듯하다. 마음의 쉴 빈 공간을 지식으로 채우고자 함은 어떠한 욕망이 작용한 것일까. 알아야 하고, 알고 싶은 이 마음은 점점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굳어지게 한다.
“하늘에 검은 새 한 마리가 온 하늘을 망친다. “
이 대사는 미스터선샤인에 나오는 대사이다. 비유하자면. 하늘에 나르는 비행기가 온 하늘을 망치는 것일까. 아니면 비행기가 온 하늘을 망친다는 나의 생각이 하늘을 망치는 것일까.
질문이라는 영역이 지식에 닿기보다 지혜에 닿기를. 매 순간 자연스러운 질문이 이르기를. 상대의 마음속 그림 한 폭을 바라보며 질문이 나타나는 것이 지혜의 순간이며 그에 답을 구하는 것은 용기이라.
대화란 무엇일까. 아직은 대화를 하려 하면 뚝딱거리기 일쑤이다. 낯도 많이 가리고 말을 꺼내기보다 듣기를 선호하는 입장이라 말의 경험 또한 적다. 그래서 더욱 여러 사람 동시에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어렵다 어려워.
지난한 순간을 만나게 되면 몸도 마음도 참 턱없이 쪼그라진다. 그럼에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살아감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지금 출근길 버스에 올라타있다.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 모두에게 그럼에도 살아가는 힘이 느껴져 덕분에 나도 살아감에 집중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