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직업이 춤꾼입니다
내 춤의 색은 투명색
by
춤에 춤추는에세이스트
Oct 29. 2021
아래로
오늘 처음으로
나는 내가 춤추는 걸 보면서
영감을 받는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춤을 추는 순간 눈치보지 않고
온전히 나를 맡긴다.
https://youtu.be/Ak4qkAQm27o
어쩌다 운좋게 몸이 잘 돌아간게 아니라
몸이 돌아가고 움직이는 거야 평소와 똑같았지만
내가 스스로 즐겁다.
내가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 모습을 알아주고 좋게 바라봐준다.
어찌 된 일이지?
조금도 아 왜 저렇게 몸이 못 생겼지,
얼굴 표정이 왜 저렇지,
왜 중심 못 잡지? 다리가 왜 저것밖에 안 올라가지?
라는 3분 남짓의 영상속에서도 수십 수백가지의 단점과 못마땅한 점만
찾아 꼬집던 내가...
그토록 춤에 있어선 깐깐하고, 옹색하게 나를 판단하던 내가..
부족하다면 한없이 부족한 나를 참 사랑하고 있다.
그냥 이렇게 춤을 추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추는 춤을 사랑하고 있다.
춤을 추는 순간을 사랑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트레이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춤을 사랑하고 있다면,
춤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면,
더 높은 성장을 위해 기본기를 갈고 닦지 않아도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몸으로 깨달아졌다.
나만의 춤.. 진짜 내가 추는 춤, 이제 시작이라고.
우연한 계기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때가 되서 의식적으로 알게 된 느낌이다.
처음 춤을 시작하던 나에겐
아직 전혀 현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았던 가능성과 아무런 기본기도 없는 몸이 있었고,
춤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나에겐
아무런 가능성도 느껴지지 않는 내 몸뚱아리와 매일 악다구니로 노력하는 피와땀이 있었고,
7년째가 된 지금, 춤 배우기를 멈추고 정체되어 있던 나에겐
있는 그대로의 나와 그에 맞춰(표현할 수 있도록) 단련할 수 있을 몸과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니까 결국 나도 없고, 기본기도 없던 지난한 7년의 세월속에
나도 못 찾겠고, 기본기도 완벽하게 숙달하지 못하겠었는데
이젠 나도 좀 알겠고, 기본기야 뭐.. 그렇게 크게 집착하거나 애쓸 필요없단걸
알게 됐다.
탱고를 담기엔 내 그릇이 너무 컸다.
현대무용도, 카니발댄스도, 그 무엇도.. 그 어떤 선생님의 그릇속에도
억지로 나를 구겨넣기엔 내가 너무 자유분방하고 에너지가 큰 사람인 걸
이젠 분명히 알겠다.
에너지가 크다 작다 떠나서 그냥 모양새가 이리저리 모나고 튕겨내져서
어느 그릇에도 담기지 않았었다.
왜 난 인고의 시간을 견디지 못할까..?
스스로 자책했다.
원래 무용이란게, 예술이란게 텍스트화되고 교과서화 될 수 없기에
혼자선 배울 수 없고 누군가 밑에서 그의 제자로
도제식으로 배울 수 밖에 없는 걸..
'더럽고 치사해도 네가 성취하고 싶으면 버텼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버틸 이유가 하등 없었다.
굳이 그러지 않은 내가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 나가줘서 참 다행이다.
외로웠고, 많이 방황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여전히 내가 그 속에 있다고 생각해봐..
그 작은 세계가 춤의 전부라고,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을거야.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있는 자리가 가장 빛난다고 여길테니까.
나도 그들과 같이 속좁고 자존심만 높아진 댄서가 되었겠지.
아무리 실력이 좋아진들 그 좁고 깊은 우물속이었을거야.
난 우물을 튀어나와 정글을 만났어. 바다로 가려고..
내 실력이(기본기가) 그렇게 엄청나게 뛰어나고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무용을 통한 메시지가,
내가 표출하고자 하는 그 느낌이 잘 전달되기만 하면 되.
그럼 그 이상의 기본기가 굳이 필요치 않아.
그것도 어쩌면 군더더기이고, 고집이고, 보여주기식 밖에 안될 수 있어.
나 이제 좀 예술가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아.
자존감이 세워진 것 같아.
평소에 늘 맨날 다른 예술가들 만나면 쫄아가지고
"아 제가 늦게 시작해서 잘 못해서요.. 몰라서요.."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해왔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 만나면 속으로 쫄면서 겉으론 되게 괜찮은 척 떠들기도 했다.
이젠 그 2가지 다 할 필요 없단 걸 느껴.
그냥 자연스레 안 하게 될거라 느껴.
더도 덜도 말고, 가감없이 그냥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젠틀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난 원래 계획적이거나 사무적이거나 중간강도에서 꾸준히 가는 사람이 아냐.
가슴속에 영감의 불이 지펴지면 그 순간 해야하고,
불이 꺼지면 행동력이 사라져 하고 싶지 않아. 아니 짜내지 않으면 할수가 없어.
그래서 즉흥적이고, 0아니면 100이야. 그냥 내가 원래 그래..
그런 나를 중간에 어거지로 껴맞추려 하지 않고, 그냥 나는 원래 0에서 100을 왔다갔다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알면
그런 나를 인정하고, 그냥 그런 내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둘 수 있어.
그럼 결국 일주일을 놓고 보던, 한달을 놓고 보던, 1년을 놓고 보던
꾸준히 50km로 가면서, 50정도의 결과치를 내는 사람이나
0에서100을 왔다갔다 하는 나나 만들어낸 결과물은
비슷한 수치이고, 똑같은 성장을 해오기에 나는 그 마저도 꾸준함이라고 봐. 충분히.
그게 나만의 "꾸준함"인거지.
세상은 꾸준히 50의 강도로만 하는 사람이 성공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아.
뭐든 꾸준히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끝없이 탁월해지려는 사람에게
운명도 손을 들게 설계되어 있지.
(지금 뭔가 그분이 오셨다. 오신 상태로 쓰는 글이라 이렇게 뻔뻔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춤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거였다.
춤을 잘 따라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느낌을 춤으로 구현하는게 중요한 거고.
이 뻔하디 뻔한 말을 어거지로 주입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깨달아서 내 입으로 말하게 된게 참 기쁘다.
기본기를 더이상 안 배우겠다는 게 아니다.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테크닉이 얼마나 멋진거고 대단한 건데!
하지만 나에 대한 존중없이 테크닉과 기본기에만 집착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때론 그것들을 완전히 내려놓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것에 대한 조급함과 욕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렇게 아예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는 시간도 틀리지 않고, 선택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이번에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그런 방법을 썼듯이.
그래, 내가 틀린게 아니야.
잘못된 것도 아니고. 놓쳤던 것도 아니고.
그냥 나에게 맞는 선택을 했었던 거야.
네가 정말 필요하면 너는 언제든 다시 좋은 선생님과 동료들을
찾고 만날 수 있고 다시 트레이닝 시작할 수 있어.
그럼 아무것도 몰랐던 초창기의 니 몸과 상태와는 다른
많이 굴려보고 깨져봐서 다듬어진 너로 다시 시작하게 되겠지.
너는 생각보다 춤이 참 잘 어울리고, 잘 추는 애야.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
생각보다 넌 더 지혜롭고, 명민하고, 민첩하게
네게 맞는 삶을 살고 개척해가고 있어.
뭔가가 막히고, 답답하고, 유난히 안되는 부분이 있다 싶으면
마치 병목현상처럼 그 부분이 이제 막 터져서 흘러가려고,
압력이 차올라서 그런거더라.
가장 너다운게 가장 아티스틱하고, 가장 유니크하고, 가장 사람들과
쉽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야.
(ps, 오늘의 영감포인트 - 핫펠트의 Summertime
https://www.youtube.com/watch?v=f5YzxDvm67A
keyword
영감
예술
에세이
10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춤에 춤추는에세이스트
직업
프리랜서
춤추며 여행하고 글을 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인문적 삶을 살려니 인생이 도전적 실험이 되네요.
구독자
145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 끝까지 춤췄는가?
같은 댄서의 입장에서 스우파를 보며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