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이 잘 살자는 말, 진심일까?

코로나 양성 판정 자가격리 2일 차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지난 3주간

그 어느 때보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는데,

나가봤자 1시간 남짓 주 2회

힙합댄스 배우러 다닌 게 전부였다.


마스크 한번 내린 적이 없이 조용히 수업만 듣고,

우울한 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늘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는데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물론 음성이길 바랬지만

양성이란 결과가 나왔을 때

별다른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안 그래도 사람 만나는 활동하거나,

일하고 싶지 않았는데

밖에 안 나가도 될 핑계가 생겼네.

다행이다. 좀 더 쉴 수 있겠다.'

몸은 아픈데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콘텐츠는 만들어야지..

콘텐츠는 계속 업로드해야지 생각은 해도


보란 듯이
나 여기 있어요
나 이런 사람이에요


그렇게 외치는 행위를 잘 못하겠다.

보란 듯이,

나를 알리고,

나란 사람을 알아달라고

외치려 해도

내가 누구인 줄이나 알고 해야 하는 건데,

난 요즘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나다움이란 거, 나답게 산다는 거"

그걸 모르겠다.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던 가장 큰 대상은

아빠였다.

아빠에게 가장 멋있고, 폼나는 딸이고 싶었다.


우리 집은 가난해
아빠는 평범하고, 너도 별다른 재능 없이
평범하게 태어났어
가난하고 평범하면 그 그릇에
맞춰 살아야지
큰 꿈을 갖는 건
허공에 떠다니는 헛된 희망 같은 거야



늘 예술가로 성공하고 싶단 꿈을 말했고,

말하며 설레어 웃는 나를 보며

아빠는 반복적으로 말했다.


그런 아빠에게 보란 듯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와 내가 살았던 시대는 다르다고.

아빠가 틀렸다고.


가난한 유기농 농사꾼,

평생 자본주의와 도시 문명을 싫어하고 부정하며 살았던

아웃사이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단 걸.

"보란 듯이"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 같은 부모님에게
정신적 공감도,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무책임한 가정에서
어쩌다 어른이 되었어도,
삶을 바꿀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헛된 희망이 아니라,

실존하는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




한편으론,

파킨슨으로 매일같이 말라가고, 몸이 굳어가는 아빠를 보며

'우리 집에서 절대적인 약자는 아빠구나..

내가 아빠를 지켜줘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딸이어도 한 번도 앙탈을 부린다거나,

일이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그 자신이 가족에게 도움은커녕 민폐가

된다 생각해 괴로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살이를 할 때도 "아빠 나는 잘 지내. 이제 돈도 잘 벌어!

나 이제 사람들 가르칠 만큼 춤 잘 춰. 나한테 배우는 학생 많아."


남미에서도 살 때도 "아빠 나 콜롬비아에서 제일 큰 공연장에서 공연했어.

콜롬비아 대통령도 보러 왔었어!

원정공연 갔는데 귀빈 대접도 받았어.

5성급 호텔에 숙박했어."

이런 식의 아빠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일만 골라 말했다.


"보란 듯이" 란

때론 내 자존심이었고,

때론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빠가 1월 7일에 11년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19살 때부터 30살이 되는 해까지였다.




거의 눈물도 나지 않았던 장례식을 치르고,

한 2주간 여행을 떠났던 1월은 괜찮았다.

워낙 오랫동안 아빠가 죽을 것을 알았기에

치료할 수 있단 생각조차,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이별을 오래 준비해서 괜찮은가 보다. 했다.


그가 살아있을 때도 나는 늘 내 힘으로 살아야 했기에

의지할 수 있었던 적이 없기에

아버지의 죽음, 부재에 있어선 정말 의연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겨진 내가

아빠에게 "보란 듯이" 성공하려고 애쓰며 살았단 걸 잊고 지냈다.


그의 존재가 버팀목보단

짐처럼, 정말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훨씬 많았기에

이제 진짜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 한편 시원하기도 했는데..


2월이 되니 뒤늦게 후폭풍처럼

아빠가 정말 없구나. 이 세상 아무 데도 없구나.
앞으로의 내 삶은 아빠가 없는 삶이구나.

그제야 실감이 나고,

슬픔과 상실감이 밀려왔다.


그런 상태로

일터로 돌아와 일을 시작하려니

내가 하는 일들에 엄청난 회의감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같이 불편하고,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는 누구지?
세상 모든 사람은 다 각자 개성이 있을 텐데..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있는데
나다운 건 뭐지?


내 존재감에 대해 의문이 든다.


그동안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내려 했던 내가

진짜 내가 아닌 것 같은

허무함이 든다.


보란 듯이 살아왔는데
그 말은 틀린 것 같다.
그동안 성취하고자 애쓴 그 모든 꿈엔 정작
내가 없었다.


이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겠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나"로서 산다는 감각이

너무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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