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자주 갑작스레 울음이 터지곤 한다.
사람들과 화상회의를 하다가도
멍하니 앉아있다가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도
...
난감해서 더 소통을 안 하려고도 한다.
얼어죽을 자존심은 말도 못하게 세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게 그렇게 수치스럽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아빠가 죽었는데'
남들은 다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나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감정이 있다.
슬픔이 올라올 때
동시에 이런 감정도 올라오기 때문이다.
짜증나.
한심해.
자존심 상해.
왜 슬퍼야 해?"
기이한 일이다..
"아빠가 죽은 것에 왜 이렇게까지 슬퍼야 해?"
울고 있으면서 동시에 화가 난다.
그 슬픔이란 감정을 편안히 못 받아들인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다가
결국 총체적으로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어젠 심리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할 의욕도 안 생기고요.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요.
가만히 있는게 제일 행복해요.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 대한 말을
시작으로 그 원인을 따라가봤다.
"수덕씨 기억속에서 유년 시절의 아버지는 폭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추운 날 팬티까지 벗으라고 해서 밖으로 쫓아내고,
매질을 시작하면 화에 겨워 잘 멈추지 못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런데 수덕씨가 어른이 되니까 폭력을 행사했던 대상이
늙고 병들어서 측은해진거에요.
분노가 쌓인 대상이지만 그 대상이 병약해져버리면
그 대상에게 화를 낼 수 있었을까요?"
날 정말 분노하게 만드는 대상이
병들고 아픈 약자라면..
약자에게 화를 낸다는 건
파렴치하고 잔인한 짓같으니까.
연민의 대상에게 분노를 느끼는 나 자신에게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편하게 슬퍼하라고 말하면
"내가 왜 그 사람을 위해 슬퍼해야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자신을 불쌍하게 만들어 화도 못 내게 만드는 나쁜 사람!" 이라며
자존심을 세워 화를 내고,
편하게 화를 내라고 하면
"그래도 그 사람이 내 아빠잖아요.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어요..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병을 앓고 있는 본인만큼 힘들까" 싶어서
측은해지고 화가 난 나 자신이 죄스러워지는 거였다.
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감정의 굴레..
아마도 그 이유때문에
열정 넘치는 춤추는 에세이스트로 일하려니 의욕은 안 생기고,
그래!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잘 쉬어야 잘 달린다! 라고
쉬려니 불안해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해석해본다.
상담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수덕씨는 많은 상황에서 늘 분노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는데
분노 그 이면을 잘 보지 못해요.
수많은 감정들이 뭉뚱그려져
가장 느끼기 쉬운 분노,화 라는 감정으로
올라오지만
그 상황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슬픔인지, 서러움인지, 서운함인지 잘 분리해서 봐야해요."
그럼 난 답답함에 이렇게 토로한다.
"내가 감정을 잘 분리하지 못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걸 굳이 다 분리해서 바라보면 뭐가 달라지나요?
왜 그래야하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걸리고,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인 것만 같습니다."
근데 희안하게 만 1년의 시간을 지나고 보니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었던 그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니까,
늘 상대를 향해 '쟤는 이상해. 뭔가 문제있나?' 라고 생각하기보단
'저 말이 나에겐 숨막히게 느껴졌구나. 난 생각이 다르구나' 라고
정리되고,
무심코 농담을 가장해 공격적으로 말하던 습관도 고쳐졌다.
스스로 분노조절장애인가? 싶을 정도로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나는거야! 이게 작년 내내
괴로웠던 주제인데
그 분노의 자리가 조금씩 비워질수록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깃든 것 같다.
심리상담을 잘 받다가도 한번씩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 오면 정말 짜증이 난다.
"감정을 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현실의 내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정말 피곤하고, 힘든 작업이군..
언제까지 이걸 해야하지?" 투덜투덜
물론 내가 문제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는다.
어제의 상담 이후로도 내가 당면한 현실은 똑같지만
마음은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아 뭐하지? 이것도 해야되고 저것도 해야되고
생각에 쫓기며 하루를 보내는 걸 반복하다
오늘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분류해서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만큼 해보자
라고 하게 됐다.
그럼 덜 무기력하고, 덜 죄책감을 느껴도 되니까.
그 빈틈에 만족감이 조금은 깃들거다.
왜인지 알 수 없는 무기력보단
알고 겪는 무기력은 무기력해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