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게 브런치 글을 읽었다는 말을 건네왔다.
나답게 살고 싶다곤 했지만
아직도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교양으로 읽는 서유기]를 읽었다며 책의 결말을 들려주었다.
막연히 동양적 판타지와 해피엔딩인 줄 알았던 소설
그 마지막에 오묘한 점이 있었다.
비바람과 천둥에 젖은 경전을 말려 수습하는데
<불본행경>만은 돌 위에 그 몇권이 찰싹 달라붙어서 영
떨어지질 않았다.
애를 써서 떼어 낸 끝에 맨 뒷장이 찢어져버렸다.
그런 연유로 <불본행경>은 불완전하고,
경이 널려있던 그 돌에는 아직 글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삼장은 이를 매우 후회하여 자기네의 태만과 부주의를
책망해 마지 않았다.
그러자 손오공이 이렇게 말했다.
"본래 천지가 완전하지 못한 것인데 어찌하여
경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경은 이제야 돌에 붙어 찢어져서 불완전이라는
천지의 오묘함에 따른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메시지,
내가 처한 상황이
찢어진 경전 같다고 친구가 말했다.
그 글이 나는 이렇게 해석되었다.
그 경전을 손에 넣으면 끝인가?
경전을 읽으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나?
정말 중요한 건 그 경이 아니라,
경을 찾아나서며 81수의 고난을 넘은 게
그들을 깨닫게 한게 아닌가
아빠에게 보란듯이 멋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내겐 정답이었고,
그래야만 한다는 간절함이었지만
이젠 그 정답과 간절함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의미부여하며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지난 경험들에서 깨달은 것이 많다.
찢어진 경전을 다시 이어붙이지 않아도 된다.
경전이 없어도 괜찮다.
어젠 아버지의 49일 천도재의 마지막 날이었다.
자가격리중인 언니와 나는 방에서
둘 만의 조촐한 마지막 추모식을 지냈다.
내가 정한 추모식 순서에 아버지께
전하는 추모사가 있는데 달리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서유기를 읽은 얘길 들려드렸다.
세상의 진리가 모두 담겨있다는 경전도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고, 찢겨지는데
애초에 경전 안에 답이 있다 한들
경전만 읽고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천둥과 비바람을 맞고 걸어가는 길 위에
나라는 사람의 "쓰임" 있지 않을까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나 의미에 집착하는게 아니라
그냥 세상에 잘 쓰여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 삶에 쓰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가?
이젠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