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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늑대마냥

스페인 워홀 23일차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오기 전,

정말 많은 인사와 선물을 받았다.

몇번의 환송회를 하고,

몇개의 케잌을 먹었는지 정확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것들을 받았다.


이렇게 분에 넘칠만큼 감사한데..

난 어떻게 나누고 살아야 하지?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작년부확실히 관점이 바뀐건

'더 사랑을 줘, 더 관심과 인정이 필요해'

이런 마음에 사로잡혀 살았던 게 돌아봐지고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왔단 걸 깨달으며

나는 어떤 걸 가진 사람일까?

어떻게 나누고 살아야할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하지만 ㅋㅋ

 평생 살아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안 바뀌듯이

늘 난 부족한 사람이고,

람들의 관심이든 돈이든

뭔가로 채워넣어야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너무 오랫동안 품고 살다보니

마치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살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건 내가 갖고 태어난 몸과 같은 사실이 아니라,

그렇다고 여기는 생각일 뿐이고

생각은 언제든 품에서 떨쳐버릴 수 있는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근데 왜 나는 계속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가 ㅎㅎ



매일같이 구글지도를 켜서 지도를 보는데

문득 스페인 전체로 놓고보니 실제로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스페인은

남동쪽 끄트머리 카탈루냐 지방뿐이고,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 단순한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는게

좀 황당했다.


집안이고 집밖이고 춥고 어설퍼서

계속

이 추위를 피하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아

다양한 곳을 여행하겠단 열정이

올라오지를 않는다.


마치 물먹은 장작마냥,

변방의 늑대마냥,

카탈루냐 지방 끄트머리

친구네 집에 머물며

쫌쫌따리 근처 도시와 동네, 바닷가 구경을 다니며

이 추위마저 싫으니 카나리 섬이나

가야겠다 라는 그 생각도

계속 스페인 본토의 정서를 정말 느끼고

이 역사,문화,사람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보단

다 때려치고

제발 몸 좀 따듯하게 녹이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힌

변방의 외로운 늑대 한 마리와 다를게 없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 많고,

겨울은 언젠가 가고,

결국엔 봄이 온다.


오늘은 팔라모스 라는 바닷가 마을에

갤러리 전시와 작은 콘서트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얘기를 하며

한국의 청년들이 너무 안타깝단 말을 전했다.


"오직 서울에만 집중된 기형적인 인구밀도는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결혼 출산 연애 모든 것이 다 부담스럽다.

서울 시민으로 살기위해 필요한 비용과

서울 시민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댓가 사이에는 괴리가 너무 크다.

내일이 불확실한만큼

스스로 어떻게든 더 빠른시일에

안정을 쟁취하겠다는 마음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확언을 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문장들이 주를 이룬다."


그냥 어떻게든 일을 구하고 배우고 살아야 하니까

서울에 사는 건데..

그 아무런 특색이 없는 회색 건물들

주변 건축물과 아무런 개연성없이 들어선

낡은 것 새 것 뒤죽박죽

비슷한 층수로 다닥다닥

끊임없이 펼쳐진 빌딩과 상가와 빌라와

아파트 단지들..

빌라에 살면 왠지 가난한 것 같고,

아파트에 살면 훨씬 안전하고 훨씬 있어보이는..

하지만 그 모든 똑같은 규격에 똑같은 모습으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있으면

초등학고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

그리고 아파트..


그 똑같이 규격화된 건물들에

똑같이 규격화된 창문을 보고 있자면

닭장과 다를게 뭔가 싶다.

숨이 턱 막힌다..


그럼에도 서울에 살다보면 나도 아파트에 살고 싶어진다.

왜냐면.. 아파트가 아니고서야

안전하고 깨끗하게 그나마 어느정도

여유공간이라 할만한 나만의 면적을 갖기가 힘드니까.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하고 싶었다.

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1만km의 거리를 떠나오는 비행을 한건데

그럼에도 떨칠 수 없는 건

나는

지난 과거, 생각, 감정, 습관들을 모두 데리고 다니기에.




세상에 완벽한 곳이 어딨겠나?

어느 하나를 얻고 싶으면 하나는 내려놓게 된다.

모든 것을 한번에 다 누릴 수 없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럼 여행따위 필요없나?

어차피 여행하면 많은 걸 포기해야하는데?

어디서든 그냥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있으면 되는 거 아냐?

그 말도 인정하고, 그 선택에 존중을 표하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얻게 되는 그 어느 하나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일 수 있고,

내려놓게 되는 어느 하나가 나에게 정말 안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지역을 살다보면

좀더 긴 시간 머물며 지금 이 곳에서 생활하면

내 삶의 시기에 도움이 되겠구나. 잘 맞겠구나.

싶은 곳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에 있는 지금.. 5년 전의 남미가 그립다.

무수한 침략과 애환의 역사가 한국과 닮아서

남미를 좋아하나?

침략을 가하는 스페인의 입장이 공감이 안되서 그런가?

라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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