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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바라본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고 싶어

스페인 워킹홀리데이 28일차 Feat, 고마웠어요 틴더남

그의 시선에 담긴 내가 좋았다.
그의 말 속에 담긴 내가 좋았다.
그의 마음에 담긴 감사함이 좋았다.


스페인 친구들의 압박에 못 이긴척

재밌겠다며

처음 깔아본 틴더와

아무런 기대없이 만났던 첫 카탈란(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사람을 칭하는 표현) 남자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전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33살 바닷가 항해사 청년과

30살 정처없이 방황하며 꿈을 이루겠다고 스페인에 온 춤추는 청년이 만났다.



그는 2 전 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항해사인 그는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배와 바다를 사랑한다고 한다.


나에게 자신이 항해했던 일들과

계절별로 스페인을 여행할 때 어디가 좋고 어디가 별로인지,

앱을 통해서 온도와 습도, 풍량과 풍속, 위성지도를 보는 방법을 알려줬다.




어색하기 그지없어 '안되겠구만..' 싶었던 커피한잔과

아주 조금즘은 대화할만하겠다 여겼던 팔라푸르젤 거리를 걸어다닌 순간과


그 날 바르셀로나로 돌아가야하는 나를 기차역까지 차로 태워주며

이야기 하다가 행선지를 바꿔 그의 고향인 로세스에 같이 가게 된 것과


해질 무렵 같이 언덕의 끝에 올라 해안 만과 마을을 내려다본 순간과

아르헨티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으며 쓸데없는 소릴 떠들며 점점 편안해진 순간과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향한 그의 집에서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모든 순간 나를 조심스레 공주님 대하 챙겨준 순간과


오늘 카다케스에 가고싶단 나의 말에 단숨에 준비를 마치고

고갯길을 넘어 드라이브를 했던 순간과


그 드라이브 내내 내가 틀었던 모든 음악들을 좋아하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나를 보는 걸 좋아했던 순간과

카다케스에 도착해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정말 나를 예쁘게 담아줬던 순간과

다시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역에 데려다 주겠다며 피게레스로 향하다

물이 필요해 잠시 들렀던 가게에 오크통 가득 동네 와인이 가득했던 가게와

(아늑하고 끝내주게 향긋하고 끝내주게 저렴했다)


피게레스 카페테리아에서 저녁을 먹으며 나눴던 서로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마지막 카페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천천히 지난 시간 함께하며 느꼈던 감사의 말로 이별을 준비할 때..


그는 말했다.

“너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요 몇달간 난 감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거든.

근데 니가 정말 너무 편하게 아무런 압박감없이 자연스럽게 대해줘서

너무 성숙한 태도로 대해줘서 나에게 문제가 없단걸 알았어”

(더 아주 자세히 다양한 말을 전했지만 생략하기로 하자..)


나도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었다.


“넌 충분히 정말 나를 잘 챙겨줬고, 너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 즐거웠어.

실은 작년에 정말 안 좋은 연애를 했었거든.

그 관계를 놓아버려야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걸 알면서 놓치 못해서 정말 괴로웠어.

그 덕분에 나에게 그런 정말 약한 부분이 있단 걸 배웠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

정말 많은 걸 배운 좋은 시간이었지만 가슴은 갈가리 찢겨졌었지.

근데.. 니가 날 대하는 그 따듯하고 배려심 넘치는 태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말, 모든 행동에서 내 마음이 치유된 것 같아.

내가 원래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된다는 걸 안 것 같아”




그는 내 말을 들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좋은 사람 많이 만날거야.

서핑을 할 때를 떠올려봐.

높은 파도에 닿기까진 정말 무섭고 엄청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겪겠지만

그 위에 올라섰을 때 너무 행복하잖아.

어쩌면 그동안 너는 파도위에 오르기까지 고통을 겪은 걸거야.

앞으로 좋은 사람 많이 만날거야.

 앞으로 스페인에 1년이나 있을 거잖아.

좋은 사람 많이 만날 테니까 충분히 즐겨.”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가치를 알아봐주고,

나도 잘 인정하지 못 하는 내 좋은 모습들을 표현해주고 좋아해주고,

나를 아껴주는 남성에게 들으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난 그를 통해

그동안 계속 정붙이지 못 하고 여행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던

이 스페인을 좀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것 같다.


문득 갑자기 돌아온 이 대도시 속에

그저 사진만 보고, 기간에 맞는 곳을 결정해 오게 된 숙소가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이 숙소를 사랑하게 됐다.


충분히 새롭고 짜릿한 그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을 줄 알고,

그렇기에 순간을 살면서

떠나간 것들에 남겨둔 아픔들을

받아들이는 것.

아플 줄 알면서 만나고,

사랑하지만 이별해야함을 아는 것.


낑낑대며 짐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가슴속에 올라오는

수많은 "이럴 걸, 저럴 걸" 싶은 생각과

슬픔들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니 감정 너무나 당연해.

그러니 슬퍼해도 되"



감기가 낫고 돌아온 이 도시를.. 이번엔 정붙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

2주를 있게 될까, 3주를 있게 될까? 아니, 살게 될까?

난 정말 2월 초에 카나리 제도에 가게 될까?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두렵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좀 더 이 알 수 없는

여행을 사랑하게 된 느낌이다.





“니가 여행온지 3주가 넘었다고 하는데 뭔가..

즐거움을 못 찾은 것 같고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즐겁게 해주고 싶었어.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

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1박2일 함께한 모든 시간 나를 챙겨줬고, 내가 원하는 곳에 다 데려다줬고,

콘텐츠에 필요하다며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미리 요청해둔 내 말을 기억하고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늘 사진찍어줄까? 물어봐줬다.


그의 사진속에 담긴 나는.. 정말 행복해보인다.

스페인의 생활이 익숙해보인다.

"1년동안 여행하다가 언제든 다시 생각을 정리해야할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을 때,

언제든 우리집에 와서 지내다가도 되.

너와는 이성으로도,

그냥 친구로도 얼마든지

함께 있고 싶어.

이 곳이 너의 휴식처(Shelter)가 되면 좋겠어"


내가 영화감독이라

너무 길어 글로 다 전할 수 없는

어제 처음 만나

오늘 헤어진

 모든 순간들을

가감없이 필름에 담고 싶다.


고마워.

오랫동안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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