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시콜콜한 작은 일상들, 그 새로움에 치인다

스페인 워킹홀리데이 30일째

어젠 서커스와 음악을 듀엣으로

잼형식의 파티가 있어

밤을 새워 친구들과 놀다가

피곤해서 혼자 집에 가려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가고,

중간에 길을 잃고,

결국 호텔 바에 들어가 햄버거 하나를 시켜놓고

2시간을 꾸벅이며 졸다 먹다를 반복하며

지하철 첫차 타고

아직도 어두운 아침길,

익숙치 않은 숙소 길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어

새벽 6시 반에 집에 오느라 글을 못 썼다..


다시 돌아온 바르셀로나에서

점점 현지화가 되어가고,

하루하루 즐거운 순간들을 만끽하는 중이다.


사람잡던 감기도 다 나았겠다,

써늘한 집안도 좀 익숙해지고

날씨도 조금씩은 더 따뜻해지며

카나리 제도에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정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직도 적응해야할 것들은 계속 있지만..

그렇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것들만 가득한 것에서

조금씩 그 불편함을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되면서

점점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하나같이 새롭게 재밌게 발견되어진다.

그토록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건축물을 앞에 두고

오늘 재충전한 핸드폰 요금제가 갑자기 안 되서

돈을 찾아야 되는데 송금을 못해

와이파이도 데이터도 안 되 열받아 쩔쩔메는 것도 재밌고,

매일 새로운 식재료들과 소스로 조금씩 새로운 요리를

해먹는 것도 재밌고,

숨이 턱 막히는 한국의 지하철에 비해

스페인 제2의 도시라 불리는 꽤나 복잡하다는 바르셀로나도

퇴근 시간대도 너무나 널널해서

충분히 앉아갈 수 있는 것도 재밌고,


지하철역 이름이 Besos 인 것도 재밌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입맞춤역]이 된다.

왜 한국사람들은 지하철 역이름을 그렇게 지을 생각을

안 했을까?

동네이름이 그렇게 시적일 수 있다는게 재밌다.




드디어 나 혼자만의 방이 생겼고,

집을 셰어하는 친구들이 비워주어

부엌서랍장과 냉장고에 나만의 칸이 생겼다.

신이 나서 장을 보다가 너무 많이 사서

내가 미쳤지.. 하며 낑낑대고 혼자 들고 가는데

앞서 가던 아이 엄마가

"내가 도와줄게. 걱정마!" 하시더니

장바구니 손잡이 한 쪽을 벌떡 들어주셨다.

아랍쪽에서 이민 오신분 같았는데

네발 자전거를 타는 6살 남짓 되보이는 딸아이와

아이엄마와 이야기 나누며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집앞까지 바래다주셨었다.

처음엔 살떨리던 ATM 돈꺼내는 일도 쉬워졌다

정말 세상은 나에게 이토록 친절하다!

늘 내가 필요할 때, 내가 힘들 때, 뭣모르고 헤매일때,

적시적소에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주신다.

세상은 이미 다 되어있다.

다만 내가 시선을 돌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과 돌봄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내 삶의 시간들처럼

나도 늘 그때 그 순간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역할로 나타나고 싶단 생각을 한다.

뭘 하지? 어떻게 도우면 되지?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엄청 거창하고 심각하게 생각할 게 없단 걸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않으면 난 어제도, 오늘도

맥주가 마시고 싶은 친구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맥주를 사서 나눠마셨고,

오늘 생활비가 부족한 친구에게 별말없이 100유로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곧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며칠 머무는 친구에게

나 넓은 방을 빌렸으니 내 방에 와서 자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저녁 음식을 하면서 새로 만난 하우스메이트에게

혹시 저녁 아직 안 먹었으면 내가 한 요리를 나눠먹자고

말을 건넸다.

나는 받기만 하고 나누는 게 없는 것 같지만

실은 난 많은 걸 나누고 있단걸

지금 글을 쓰며 깨닫는다.

너무 받는 것에만 잔뜩 감사하고, 신경을 쓰다보니

내가 나누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지는 생각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내가 스페인에 정 못 붙이고 힘들어할때

차를 끌고 바닷가로 데려다주는 친구처럼,

혼자 장바구니 무게를 감당 못하고 낑낑댈 때

나눠 들어주는 이웃처럼,

그 순간 혼자서 어떻게 안 되는 것들을 누군가

그 딱 필요한 그 순간에 해준다면

대단하고 거창한게 아닐지라도

엄청 감사한 일 아니겠나..

그리고 난 그걸 지금 잘 하고 있단 걸 깨닫는다.


스페인에 오고 늘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에게 먼저 도움을 주는,

마음을 나눠주는 이들을 만나니

나도 왠지 점점 긴장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나를 바라본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