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하필, 춤이었을까?

타협하지 않는 이들이 좋다.

그들의 받지 않아도 오로지 주어도 좋다는 예술을 대하는 순수한 사랑과 헌신이 정말 멋지다.

나또한, 그러고 싶었던 거 아닐까.

대중의 사랑을 꼭 돌려받지 않아도 때론 결핍에 욕심도 나겠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 그것을 목적으로 이어갈 수 없는 것.

순수한, 예술이라 하는 것.


나는 어떻게 춤을 시작했는가?

여타 다른 친구들의 계기와는 좀 다르다.

어려서 시작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거의 90%가 똑같다. 부모님이 시켜서,

혹은 무용학원을 다니는 언니,오빠들이 예뻐보여서, 멋져보여서,

하다보니 어느새 이렇게까지 왔다고.


나에겐 무용을 하겠다는 계기가 현실의 어떤 사람을 보고 와진 생각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언젠가부터,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어떤 에너지로 존재하는 내적 욕망에서 왔다.

늦게 춤을 시작한 나에게 어떻게 춤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은 참 많이 받게 되는 너무 당연하고, 단순한 질문인데도 나는 답하기가 항상 난해했다.


마치 나에게 현대무용이 뭐에요? 라고 물으면 전문으로 배우는 지금조차 설명하기 난해한 것 처럼.

원래 말로 표현이 다 안 되기에 그 너머의 더 원초적이고 언어화 이전에 더 근본적인 어떤 의식이나, 느낌들을 표현한 것이 몸짓이 아니었을까?

그 움직임에 반복된 몸의 결과 리듬이 나타나면서 “춤”이라고 이름 붙여 진 것 아닐까.


친구들과 흥겹게 같이 노는 자리에서 다들 추고는 싶으나 창피해 눈치를 보다가

결국 내 등을 떠밀었던 그 때에.

그냥 생각을 내려놓고 움직여버린 몸짓에서..

나도 모르게 느껴진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떤 느낌,

요동치는 심장 너머 깊은 곳에서 끌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신난다는 표현의 어원이 무엇인 줄 아는가?

믿거나 말거나 "내면의 신이 나온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나는 그 순간 정말 신이 났었다. 인생을 다해 그렇게 신난 적이 없었다.

뭔가 내면의 신과 접속한 것 같은 느낌을 그순간, 받았던 게 아닐까..

그 느낌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어 결국 나는 돈보다, 현실보다 춤을. 그 내적욕망을 따르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어왔을 때 이런 대답을 한 적은 없다.

근데 이젠 말하고 싶다.

그들도 귀찮아서 혹은 두려워서 미루고 미루다 언젠가 잊어버린 "그 무언가"가

궁금해서 자꾸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닐까?

그 뜨거운 무언가에 대한 결핍에 무슨 7살애 재롱잔치 시키듯

쉽게 나에게 앞에서 춤 좀 춰보라고, 보여달라고 시키는지도 모른다.

그런 말들이 내겐 무례하고 어이없게 느껴졌으나 이젠

그들의 내적 욕망을 일깨워줄 춤을

그 욕망에 따라 진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글로 쓰고, 춤춰야할 역할이 있다고 느껴졌다.


무언가를 정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미쳤다! 라고 하는 건

인간적 의지를 넘어선 무언가가 그 사람에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

우리 모두는 결국,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살지 않나?

난 미치기로 했다. 더 많이 깊이 미친 놈이 될 것이다.


미치도록 좋아서 추고, 사랑해서 춘다.

그게 진실되고 따뜻하다면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다가가질 것이란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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