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능인이 쉽게 빠지는 함정과 그 너머의 이야기
스스로 이런 과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1. 하고싶은 분야가 한가지가 아니다 못해 너무 많은 사람
2.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성(혹은 덕질능력)을 이것저것 가진 사람
3. 한동안 어느 한 분야에 푹빠져 있다가 또 다른 분야로 갈아타 그것에 푹 빠지는 사람
4. 하고싶은 일 중에 제일 하고 싶은 것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매우 곤란해하고 굳이 그래야하나?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이들은 아마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 타인에게 잘 이해받지 못한다. 오히려 "철들어. 하나만 해도 제대로 할까말까한 주제에"라며 비난받기도 한다.
2, 주변에 자신같은 사람이 아예 없진 않지만 마음을 나눌 친구가 적다고 느낀다.
3, 이렇게 살아도 되나.. 멈춰서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만의 길을 가려한다.
4, 사서 고생한다.
5, 남의 말에 경청은 해도 주입은 절대 안 받는다.
6, 속도와 색깔은 제각각이지만 기어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위에 글을 읽고 "맞아 맞아!"란 생각이 들었다면 독자분께선 나와 같은 다능인이시다.
앞으로의 세대는 절대 한우물파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기성세대가 사회를 전반적으로 자리잡아있는 보수적인 일반 한국 사회에서
"다능인"들이 타인에게 잘 존중받고, 호감적으로 다가가지지 않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다능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이 많은건지, 그냥 하고 싶은게 많은 건지..
늘 가능성과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그걸 다 생각하느라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차라리 몇가지 감당가능한 일에만 집중하면 그런 스트레스가 없을텐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해서 살 수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텐데.
왜 난 매번.. 몇가지 일들이 안정화가 될랑말랑하면 하기 싫고 귀찮아지는지.
안정적이어지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여기는지..
내가 예술을 취미로 하는 사업가인지,
예술을 하기 위해 사업을 시도하는 예술가인지.. 그 걸 구분하는게 의미는 있는지?
어느 순간 일은 너무 많고 고민도 깊어지니
예술이 나를 하는지, 내가 예술을 하는지..
정작 내가 뭘 하고 싶고, 뭘 해나가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여기까지가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지 못할때 일어나는 "윤수덕"이란 다능인의 일반적인 부정적 반응이다.
그러나 이 다능인은 자신의 이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위해
새로운 삶의 태도를 취하기로 한다.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 구분 짓지 않고 삶에서 나에게 와지는 대로
나를 내맡기고 주어진 일을 해보기로 한다.
와지는 대로 살아보자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가만히 위에 다능인의 부정적 반응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점이 있다.
생각이 계속 과거, 혹은 미래에 가있다는 것이다.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건 결국 어떤 일을 해도 똑같을 것이다. 나는 그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너머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난다.
난 지금 어지럽게 고민하고 있는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우선순위를 메기려고 하니까
선택과 집중을 늘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그 차원보다 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결국 그 모든 다양성에 대한 욕망이 행복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그런 거라면 지금 이순간 그 감정을 나에게 느끼게 할 수 있는 권능이 내게 있다는 걸 안다. 그것을 매일 리추얼하고, 명상하며 마음의 힘을 기르고 잡념을 알아차린다. 감정을 잘 흘려보내고, 내 안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련의 업다운들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다능인이라서 그래! 이제 더는 춤을 가르치는게 하고 싶지 않은거야! 라고 쉽게 생각하려 하는 나를 관찰했다. 무언가에서 자꾸 피해가려하는 모습을.. 그게 무엇인지 관찰하니 그랬다.
당장 눈앞에 닥친 수강생분들을 책임지고,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들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한분한분 성격이 다 다르고 자신의 몸에 대한 부족함을 안고 다가오시는데 수강생분들 개개인에게 맞는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상담할지 그것에 너무 어려움을 느낀다. 그런 사실을 볼때 그런 수강생분들을 차분히 지켜보고,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단 마음이 조급해지고 부담스러워져서 빨리 문제를 끝내고 싶어하는 나를 본다.
평생 해본적 없는 타인을 챙기는 영역이 시작하자마자 쉬울리가 없다. 어려우니까 난감하니까 점점 부담되고, 피곤해진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인정해. 일단 그 마음부터 인정하고, 차분히 바라보고 잘 달래주는 게 필요하겠다.
나보다 나이가 늘 더 많은 분들을 상대하며 그들이 인생에서는 선배여도 나에게는 돈을 지불하고 배우러 온 사람들이고, 난 그들에게 전문가이자 몸과 건강에 있어선 믿고 맡길 멘토인데,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능인의 함정 그 너머의 이야기
마이클 싱어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
내맡기기 실험으로 바라보면 지금 이순간에 어떻게 나는 주어진일을 차분히 해나가야하는 것일까?
지금 이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해결하고 싶지 않아 자꾸 다른 일을 할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중요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산만해있는 마음을 다잡고, 직면한 문제를 푸는 것이다.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욕망하면 할수록 끝없이 괴로워진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것도, 하는 것도 괴로움이 된다.
어떤 일을 해도 괴롭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하고 싶은 일에 늘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보고, 새롭게 펼쳐지는 상황들에 설레고 이상적 미래를 꿈꾸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걸 실험해봤다.
분명 놀라운 순간들도 있었으나, 한 줌 스러질 빛나는 추억일 뿐 현실은 결국 다 비슷비슷해진다. 모든게 이상적으로만 되어지지 않는 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고 있다.
결국엔 내가 얼마나 “지금” 주어진 상황을 잘 직시하고 나아가느냐가 내게 맡겨진 일이자,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 아닐까.
마주하기 싫은 그 사람을 어떻게 잘 대하느냐,
원치 않는 상황을 어떻게 웃으며 대처하느냐.
행여 그 순간은 100% 진심이 아닐지라도 부정하는데 자꾸 힘을 싣지 않아 보는 것.
내 정신력이 받쳐주지 않더라도 처음엔 대화의 기술으로나마 대처해보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에 대한 이해를 부탁하지 않는 것.
낮은 차원에만 머물러있다가 더 높은 차원으로 가는 것은 그동안 키워보지 않았던 근육을 키우듯 불편하고 어색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날개짓을 멈추면 그대로 다시 원래의 차원에 머물거나, 그보다 더 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원하는 차원에 높이 머무르며 편안하기까지 바라는 것은 훨씬 다음 단계일이다.
그것을 생각하고 바랄 단계가 지금은 아니다. 내 수준을 알고, 어색하고 힘들어도 날개짓을 멈추지 말자.
지금은 궤도에 진입할 높이 오를 근육을 키워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