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이란, 그리고 춤이란
나의 두 오랜 친구와 연인에게
by 춤에 춤추는에세이스트 Sep 22. 2020
나에게 글이란 불알친구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항상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담아두었다.
이제 돌아보니 친구가 없어서 더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다니던 시골학교에는(내가 병설유치원을 졸업한 다음 해에 학생수가 부족해 분교가 될 만큼)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았는데 그 마저도 키가 작다는 이유로,
학급에 유일한 여자라는 이유로,
본교로 이동 수업을 다닐 때에는 우리 학교 애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들로 따돌림을 많이 겪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느라 항상 바쁘시고 항상 피곤하셨다. 해가 뜰 때부터 완전한 어둠이 내려와 더는 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을 하곤 낡은 세렉스를 타고 작업복이 흙과 땀에 절어 돌아오셨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저 멀리서 아주 작은 엔진 소리만으로도 산을 넘어 밤길을 달려오는 저게 우리 엄마 아빠 세렉스인지, 남의 집 세렉스인지 느낄 수 있어 차 불빛이 보이기 전부터 마루에 달려 나가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잣나무가 우거진 가로수길 입구를 가로질러 차가 마당에 들어오면 똥강아지처럼 방방 뛰며 엄마! 아빠! 빨리 오세요! 를 외치며 품에 뛰어들면 부모님의 몸 가득 배어있던 땀냄새와 흙냄새가 지금도 기억난다. 아직까지도 그보다 더 살아있는 냄새를 맡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셌는데
그렇게 나에게 글이란 유일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고, 그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늙어 죽을 때 까지도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 줄 순수한 친구다.
서울에 자취하며 이어진 잦은 이사와 알바 살이 끝에도 매일 마셨던 맥주 한 캔 보다 더 큰 위로가 된 건 글이 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나면 하루의 여독이 싹 가시고 긴장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몸도 매일 샤워를 해야 하듯, 내 마음도 샤워가 필요하니까.
지금까지 거의 매일같이 오늘 하루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그에 반해 춤은 나에게 평생 사랑을 약속하고 싶은 결혼 상대라고 할까.ㅎㅎ
이젠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서 과한 욕심은 많이 내려놓고, 그가 없는 내 일상은 더이상 내 삶이 아닌 것 처럼 편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하는 한 평생 공들여야 하고, 매일매일 관심과 정성을 다해야 하는 사랑하는 연인 같다.
퍽하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내 몸과 싸우고, 상처 받고, 아파하다가
결국
있는 그대로를 알아봐주지 못 하고 욕심만 앞세운 것에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
매일 더 많은 동작을 해내길 욕망하고, 더 탄성이 좋은 근육을 갖고 싶어서 안달하다가 다 소유할 수는 없음을 깨닫고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해 그 부분을 바라보고 사랑하려 노력한다. 안 되는 부분, 부상을 입은 부분도 살살 달래며 안고 갈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춤을 대하는 열정과 통찰을 바탕으로 기본기를 최대로 끌어올려 언제나 최상의 작품을 짜기 위해, 매일 몸과 최상의 관계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에게 글이 숨 쉬듯이 편한 걸 보면 마음의 친구 같고,
춤은 운명적으로 내 인생에 나타났으나 아직은 완벽히 가질 수 없어 애타게 하는 연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