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춤에 춤추는에세이스트 Feb 27. 2021
난 무용하는 친구들 중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없다.
다들 그냥 이름 알고, 만나면 인사하고 얘기 좀 나누는 정도지..
떨어져있을 때 연락할만큼 서로 무용에 대한 가치를 나누고, 함께 할 친구가 없다.
한 명? 있나.. 근데 그 친구와 작품을 하거나, 움직임과 몸에 대한 것 자체에
대한 얘길 나눌 수는 없었고..
그런 줄은 알았지만, 그게 진짜 나에게 아쉬운 부분이란 걸 몰랐다.
난 나 자신과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해석하는 걸 잘 못한다.
아침에 엄마,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매주 수요일 저녁 심리상담을 받는데
선생님과 나눈 대화에서 그 내용이 마음에 남아..
어젯밤엔 들은 정신적 스승님의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나의 존재를 알기 전에 가치부터 알아버리는 건 모순일 수 있다.
언니가 내 말을 듣고 정확히 정리해줬는데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너무 답만 듣고 살아온 거 같다.
예를 들어, 7살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세상 모든 일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픔도 다 환영해야할 기회다. 아픔을 긍정해라." 라고 배웠다.
난 그게 답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하는게 맞는 줄 알았다.
삶의 시기별로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찾기도 전에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의 정답은
"오직 참나를 찾고, 참나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 다른 모든 것은 욕망과 거짓, 허상일뿐 휘둘리지 말것!"
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휘둘리는 나는 잘못 됐고, 오직 내가 깨달은 것들만 부모님께 말해야 했다.
부모님은 내가 아픈것, 외로운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지 않은 인간적 욕망에 대한 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니까.
안 그래도 사랑이 없는 부모님이 내가 그런 말까지 했다가 더 나를 멀리할까봐 두려워 그런 포장지라도 써야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으니 늘 그렇게
괜찮지 않은 나를 괜찮은 나, 나이에 비해 성숙한 나로 포장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포장지로 모든 이들을 만나다보니,
그게 나라고 여겼다.
오직 참나를 찾아 가는 나. 오직 깨달음을 향해 가는 나..
그런 나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인간이라고.
그런데 그럴수록 세상을 사는게 그토록 허무하고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왜 살지? 우리가 이미 온전한 존재이고, 삶에 오는 모든 것들은 이미 긍정적 이유만 있다면
그래. 그게 정답인 줄 알겠는데 알았는데. 그럼 더이상 삶을 살아갈 필요가 없을텐데.."
난 답을 아는데 왜 난 이 삶을 살아야하지?
의미없고, 힘들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왜 살아야 하지?
난 정답은 들었지만, 정작 그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게 8살 때부터 날 따라다닌 존재의 물음이 되었다.
마치 내가 내 몸에 갇혀있는 듯 하고, 왜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다시 낮이 오는지 도저히 모르겠고.
과학적으로 그게 설명이 된다 할지라도 그 사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왜 여기 갇혀있어야 하는지가 설명이 되질 않았다.
엄마,아빠 라는 사람이 나의 부모이고, 나는 계속 이들과 살아야하며 내일이 되면
또 학교를 가야하고, 배고프면 먹어야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게 너무나 괴롭고 힘겨웠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늘 반복하며 살아간다는게..
이 나이 이때껏 그 질문을 늘 품었고, 늘 물었으나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답을 들어도 하나도 와닿는 답이 없었다.
어쩌면 난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하는 답의 영역 안에서만
계속 조금씩 표현만 다르게 하는
답들이 내게 와지는 느낌이라..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이 그저 뻔하디 뻔한 답변의 릴레이였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 삶을 가장 크게 지배한 생각은 허무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 혼자만 느끼고 살아가는 것 같은 외로움.
왜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난 여태껏 그것이 타고난 기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심리상담 선생님은 본인은 마음공부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심리학을 공부하고 수많은 사례결과를 본 관점에서 나를 보자면
그것은 아동기 방임상태에서 와지는 아동기 우울증이라고 느껴진다 하셨다.
그 나이대에 아이들에게 그런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는,
본인을 본인이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아이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란 것에 한번 놀라고...
그 다음 이어지는 선생님의 질문에 또 놀랐다.
그래서 난 힘들어도 마음공부를 해야한다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사는게 외롭고 너무 괴로우니까 부모님도 싫고 학교도 싫고 내 존재 자체가 싫은데
그런 내가 할 수 있는게 주입식 어거지 교육일지라도
마음공부를 하고 "참나"자리에 가면 괴로움,억압 모든 것을 벗어
온전한 자유에 이르른다고 하니 난 그 자리에 가닿고 싶어서,
지금 나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마음공부를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게 내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겠냐고..
선생님은 내게 조용히 이렇게 물으셨다.
"수덕씨, 수덕씨가 지나가는데 방치된 7살 남짓의 유치원 아이가 보여요. 그럼 그 아이는 보호의 대상일까요?
깨달음의 대상일까요?"
난 아무말도 못 하고 실성한 미친놈처럼 계속 크허허헣허헣허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 눈에선 계속 눈물이 났다.
상담을 받는 내내 말 한마디 한마디 꺼내기가 너무 힘들고 싫었다.
숨이 막히고 눈물만 났다.
난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삶의 의미는 죽어라 찾는데, 답을 손에 들고 사는 느낌.
사람들의 말을 듣는게 아니라 나이를 먹을 수록 오히려 난 이미 "의미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동의해달란 식으로 내 논리가 얼마나 합리적인지 들어보란 식으로 따지고 들었다.
특히나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한없이 부정적인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 새로운 생명체는 안 태어나도 무관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을 증명할 역사적, 자연환경적, 인류적, 영적 그 어떤 이유들도 다 준비해놓고 말이다.
근데 실컷 말하고 나면 그 결론의 자리에선 늘 허무함과 찝찝함만이 남는 것이다.
내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채 "난 잘 살아왔다, 난 잘 살고 있다" 생각하며 살았다.
실은 난 삶의 의욕이 전혀 없는데 그냥 유년시절부터 날 지배한 감정인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되게 삶의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아침에 가족에게
난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왜 그리 서럽던지..
엄마는 왜 여태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으나,
난 내가 그런줄도 모르고 살아와서 그랬다 답했다.
생각을 들기 보다, 놓기가 이렇게 어렵다..
왜 난 이런 사람이 됐을까?
만약 어렸을 적에 내가 받고 싶은 사랑과 공감을 충분히 받고,
답이 아니라 내 삶의 시기를 살아갈 방법을 같이 찾아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지금 내 삶은 많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