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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늘보 Nov 20. 2023

예술에서의 꼭짓점 잇기

글쓰기의 시작은 매번 다르지만 대체로 나는 어떤 메시지, 구절, 사건, 인물 등 조각 몇 개를 떠올리고 시작하는 편이다. 전체 그림이 그려진 채로 글을 쓰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나 쓰고 싶다는 강한 욕망은 언제나 어떤 생각의 파편으로부터 시작하지, 완성된 글을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글쓰기는 생각의 파편들을 두서없이 흩뿌려 놓으며 시작된다. 어엿한 ‘글’이 되려면 이 파편들을 엮어야 하는데, 이 단계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내가 ‘꼭짓점 잇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된다. 어릴 적에 숫자가 달린 꼭짓점을 이어야 그림이 완성되는 학습지를 푸는 기분이 든다.


나는 매번 이 작업이 제일 어렵다. 가장 포기가 많이 일어나는 단계다. 하지만 꼭짓점 잇기 없이는 그저 의미 없는 파편적인 메모나 소재만 남을 뿐이다. 꼭짓점만으로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고, 아무도 이해시킬 수 없다.


좋은 글은 보통 이 꼭짓점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글이다. 독자는 그저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그림을 그리기까지 작가가 어떤 꼭짓점을 찍었는지 최대한 몰라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꼭짓점이 다음 꼭짓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아름다운 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 선들이 모여 어엿한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피아노를 칠 때 음표 사이를 최대한 매끄럽게 연결하면서 음악을 완성하려는 것과 같다. 피아노는 꼭짓점 잇기의 예술 그 자체다. 악보에 찍힌 수많은 음표들은 개별적으로 연주하면 음 한 개일 뿐이다. 이 꼭짓점들을 어떤 템포로, 세기로, 감정으로 이어갈지 따라 다채로운 음악이 탄생한다. 음표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곧 음악이고, 그것이 가장 어렵다. 음표는 개별적인 음으로 튀어서는 안된다. 완성된 음악 안에서 음표들은 각자의 연결점으로서만 기능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음악으로 청중에게 들려야만 한다.


무용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동작 혹은 포즈들을 꼭짓점으로 본다면 그것을 어떻게 잇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질감의 안무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어렵다. 동작의 연결을 얼마나 매끄럽게 이어서 하나의 완성된 안무로 관중에게 보이느냐에 따라 안무의 질이 달라진다.


“생각이 바로 곡이 되진 않아요. 그게 문제죠.
작곡을 시작하면 늘 그 점 때문에 괴로워요.
생각은 이미 있지만 더 다듬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고 찾아내야 해요.”

-엔니오 모리꼬네


꼭짓점을 찍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것을 잇는 것에서부터 진짜 고통이 시작된다. 창작자는 다양한 실험과 실패 끝에 어엿한 그림을 완성해야만 한다. 꼭짓점만으로는 아무도 이해시킬 수 없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꼭짓점을 얼마나 요철 없이 매끄럽게, 때론 빠르게 이을 수 있는지에 따라 갈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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