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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늘보 Dec 02. 2023

예술은 생각보다 논리적이다

무용 선생님들은 말이 많다. 선생님이 춤의 동작을 보여주면 그걸 따라하기만 되는 거 아닐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항상 동작의 인과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한다. 이는 무용에서 동작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작의 원인과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동작을 해도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동작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컨대 점프라고 다 같은 점프가 아니다. 위로 솟아오르기 위한 점프, 옆으로 이동하기 위한 점프, 아래로 더 깊게 내려가기 위한 점프, 발을 바꾸기 위한 점프… 질감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동작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작의 원인과 원리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몸이 왜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상체의 방향이 바뀌는 이유가 팔이 먼저 움직여서 딸려가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돌아가서 끌려가는 건지, 누가 갑자기 어깨를 친 것처럼 확 바뀌는 건지… 이유도 제각각 다양하다. 그냥 움직이는 몸은 없다. (혹은 ‘의도적으로’ 그냥 움직인다.) 항상 원인이 있다. 인과관계를 이해해야 좋은 춤이 나온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거장들이 학생들의 연주를 들어보고 피드백을 해주는 마스터클래스를 보면 항상 학생들에게 “왜” 이렇게 쳤는지를 묻는다. 왜 서서히 작아지는지, 왜 페달을 밟는지, 왜 템포가 빨라지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제대로 된 논리가 없는 학생은 진땀을 빼기 십상이다. 악보와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선생님의 논리에 밀려버리고 만다. 흡사 토론 수업을 보는 것 같다. 음악 학도들이 악보에 파고들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유다.


명확한 이유가 없는 음악은 관객도 설득하지 못한다. 연주자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관객에게도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 즉흥적이고 감성적일 거라 믿지만 예술은 생각보다 논리적이다. 비논리가 의도된 게 아니라면. 몸의 언어도, 음악의 언어도, 뚜렷한 인과 관계의 논리로 흘러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다. 즉흥과 감성은 그 다음 단계다.


연습할 때는 머릿속이 새까맣게 될 정도로 연마하되,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새하얗게 잊어버려야 한다.
무대 위에서 느끼는 예술가의 자유로움이 결국 적확한 반복 연습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즉흥성이 정확성에 빚을 지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

- 백혜선,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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