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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늘보 Dec 08. 2023

현대무용의 효능

무용(無用)하지 않은 무용(舞踊)의 효능

어느덧 취미로 현대무용을 한지 8년이 되어간다. 이 사실을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개로 나뉜다. 한 취미를 ‘8년이나’ 했다는 것에 놀라는 반응과 그 취미가 ‘현대무용’이라서 신기해하는 반응.


8년 전 현대무용을 알기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같은 반응일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 발레를 잠깐 배웠던 것 말고는 춤과 거의 연이 없다시피 살아온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체육 시간을 수학 시간 다음으로 제일 싫어했고, 현대무용을 시작하기 전까지 어떤 종류의 운동도 취미로 삼아본 적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종류의 것이 취미가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만큼 나는 몸과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대체 무슨 동력으로 8년이 넘어가는 긴 세월 동안 이름도 생소한 현대무용을 취미로 삼을 수 있었을까? 현대무용의 어떤 마성의 매력이 나를 이렇게 이끌었을까?




현대무용은 운동 효과, 치유 효과, 일탈 효과 등 여러 효능이 있지만 내가 느낀 효능 중 단연코 독보적인 것은 명상 효과이다. 나는 정통적인 방식으로 명상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눈을 감고 신체 특정 부위에 집중하라던가 호흡을 느껴보라는 식의 주문은 번번이 나의 복잡한 생각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무용에서는 명상의 효과를 자주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명상의 효과란 내 몸의 ‘존재함’, 즉 현존성(existence)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하는 몸의 ‘현존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내 몸의 각 부분에 대한 현존성이다. 이를테면 내 팔이 몸통 왼쪽과 오른쪽에 붙어있다는 감각, 다리가 나의 상체를 받쳐주고 있다는 감각, 내 머리통이 몸통 위에 얹혀있다는 감각이다. 대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을 수 있다. 각자의 부위들이 몸 어디에 붙어있는지 우리 모두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과 그것을 새삼 감각하고 인지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경험이다.


우리는 우리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능으로 알고 있다. 이를 ‘자기수용성감각(proprioception)’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체 위치와 방향,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감각을 일컫는다. 자기수용성감각 덕분에 우리는 직접 신체 부위를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아도 원하는 움직임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손을 보고 있지 않아도 다른 곳을 보면서 손으로 물건을 집을 수 있는 게 다 이 감각 덕분이다. 티비를 보면서 밥을 먹고, 딴 생각을 하면서도 양치를 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기수용성감각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기초적인 감각이자 축복이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자기수용성감각을 잃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성은 물건을 하나 집을 때 우선 자기 손을 쳐다봐야 하고, 물건을 집기 위해 어떤 손가락을 접고 펴야 하는지, 손을 들어서 어느 쪽 방향으로 옮겨야 하는지 등 손의 위치와 방향, 운동을 세세하게 계산하고 생각해 내야 물건을 집을 수 있다.


나는 무용할 때 마치 자기수용성감각을 잃은 이 여성처럼 우리 몸의 구성과 원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느낀다. 현대무용은 고전 발레에 비하면 대체로 일상적인 기본 동작을 바탕으로 한다. 일상에서 수없이 해온 움직임도 현대무용 시간에는 갑자기 낯설어진다. 당연하게 행해 왔던 움직임을 해체하고 재정의한다. 몸의 각 부위의 위치, 물성, 움직임에 대해 감각한다. 그리고 그 감각을 인지한다.


내가 말하는 몸의 현존성이란 또한 내 몸이 이 세계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감각을 말한다. 내 몸의 부피와 질량을 감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관점에서 먼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렇게 아주 작더라도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물성을 담당하고 있다. 무용은 내 몸의 물성을 느끼고, 이 세계와 나의 연결성을 느끼는 과정이다.


무용에서는 숨을 언제 들이쉬고 내쉬냐에 따라 움직임의 크기와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호흡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숨이 찰 때 나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나는 호흡하는 동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무용을 하다 보면 신체적 고통이 올 때도 있다. 통각은 내 몸의 물성을 느끼게 해주는, 내가 살아있다는 몸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호흡과 고통을 통해 몸이 현존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인지한다. 


내 몸의 현존성을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로를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서 얻는 효과이지 않을까 싶다.




무용은 결국 내 몸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심리 상담에 대한 수요가 늘고, 내면의 위로를 위한 책과 강의가 넘쳐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몸의 건강은 그저 병의 유무로만 판단한다. 병원의 측정 기계 혹은 의사가 해주는 진단을 통해 수동적으로 검사만 받을 뿐, 스스로 우리 몸에 대해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탐구할 시간을 갖지 않는다.


나의 몸과 소통하는 일은 내 정신을 돌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심리 상담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알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과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몸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온전한 나를 알 수 없다.


무용을 하다 보면 내 몸을 탐구하게 된다. 둔했던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뻣뻣한지, 어디가 불편한지 스스로 알아챈다. 몸의 안부를 적극적으로 묻고 돌보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과도 같다.


때론 어떤 동작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몸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게 된다. 그 답이 나의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어떤 관성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머리로 의식하거나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들을 몸은 다 저장하고 있다. 그렇게 내 몸이 저장하고 있던 과거의 기록들을 하나씩 접하게 되기도 한다. 나를 더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다. 


내 몸을 감각하고 사랑하는 일. 자신의 정신적 상태를 파악하고 컨트롤하는 것만큼이나 신체적 상태와 한계를 아는 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현대무용의 최고 효능이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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