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의 구조
오전 9시 40분경, 아버지의 영어 교습소를 알리는 전단 광고지를 다 돌린 뒤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각 1층 세대마다 도장이 찍힌 전단지를 조심스레 꽂고 오늘도 우리 동네의 작은 상가에 문을 열었다.
아침에 착용한 옷의 등판은 땀으로 젖었으며 다소 숨이 차고 지치기도 했었다. 시원한 커피를 한 입, 두 입 빨대로 쭉 들이키며 더위를 식혔다. 한 편으로는 이 공간을 채워줄 아이들을 기다리며 다소 들뜬 마음도 생겼다.
오늘따라 왜 이리도 날이 좋은지 햇살은 따사롭게 비췄다. 전단지를 정리하고 교습소의 전등을 켜며 따뜻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 낯선 두 남자가 들어왔다.
자신들은 한전 직원이라고 소개를 하며 갑자기 다짜고짜 "도둑전기 쓰셨어요."
"네...?" "무슨 말씀이시죠?"
피식 웃으며 나에게 다시 한번 강조를 하며 이야기를 했다.
"도둑전기요?"
그 말은 들은 나는 얼어붙었다.
도둑이라니.
살다 보니 내가 도둑이 되는 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았다.
나는 전기도둑이 아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작은 이 공간에서 정직하게 시작을 준비하던 사람일 뿐이다.
한전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전기요금이 미납이 되었어요. 그런데 도둑전기를 쓰셨다고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미납이라니요?"
"하... 참... 요금이 몇 달 밀려서 저희가 전기 들어온 거 확인하고 일부러 전선을 잘랐다고요."
"네? 와서 일부러 자르셨다고요? 왜 저희에게 얘기도 안 하시고요?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어요!"
그들은 어이없는 듯, 표정 변함없이 자기네들은 절차에 따라 밞은 것뿐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꼬 오히려 잘못은 우리 책임이라며
"별다른 허가도 없이 전기를 다시 연결했으니 전기도둑이죠. 그냥 쓰신 거예요. 이거 자릅니다."
"뭐 해! 바로 잘라!"
나는 당황해서 잠시 멈춰달라며 다급하게 이야기를 했다.그러면 어떤 식으로 절차를 밟아야 하냐, 저희는 정말 몰랐던 일이다.
이걸 왜 미리 고지를 안 하셨냐며 가타부타 점점 언쟁이 높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알지 못했다.
전등이 꺼진 건 단순한 공사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 공간을 위해 애써주고, 힘써 주시 분들이 떠올랐다.
우리 교습소의 다급한 사정을 알았기에, 그에 맞춰 전력을 복구한 것뿐이다.
그리고 한전 직원 두 분은 책임 회피만 할 뿐이었다.
간판이 올라간 뒤에 자른 적은 없다고 얘기하며 cctv확인해 보라며, 자기가 찍혀있지 않겠냐며.
아무렇지 않은 듯, 죄의식 없이 얘기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 가족과 관계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간판이 없을 때 자른 거다.
cctv를 확인해 보시라며, 편의점 벤치에 앉아 어떤 남자 두 분이 계속 보는 것도 우린 봤다며 가볍게 얘기하는 걸 듣고, 나는 너무 놀랬다.
우리가 의심했던 두 사람을, 그들이 먼저 얘기했다.
그러자 나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일부러 협력업체에 맡겨서 자르게 시키신 거예요?"
돌아오는 답변은
"아니요? 저희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몰라요. 저희가 직접 잘랐다니깐요."
그러나 전선을 작업하는 통로 주변은 cctv도 없고 우리가 알 길이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면서 계획적으로 우리에게 통보도 없이 이렇게 잔인하게 전선을 자른 것이었다.
이로 인한 손실과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에게 넘겨졌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날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있다. 사진에도 기록이 남아있었다.
간판이 올라간 후에 부모님과 교육청 실측보고 때문에 치수를 재고 불을 다 켜보고 전등까지 확인했던 것을.
그 과정을 내가 사진에 기록한 것도 있었고, 휴대폰으로 반사되어서 비친 매립등까지 사진으로 남은 점 등.
여러 가지 우리에게는 입증할 만한 사진이 있었다.
부모님과 자리를 뜨고 점심을 먹으러 간 그 사이에, 불이 나간 것이다.
전기가 끊긴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책임을 회피했고 간판 올라가기도 전에 자른 거라며 cctv확인해 보라며 다짜고짜 따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도 봤었다면서.
그럼 왜 고지도 안 해주고 절차상의 순서도 없이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갔다.
자기네들은 책임이 없으며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거라며 앵무새 같이 말했다.
우리는 도대체 누가 이 전선을 잘랐는지, 왜 고의로 이렇게 했는지.
그동안의 갖은 스트레스와 조사로 지쳐갔는데, 범인은 잡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교습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강박감, 이 공간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cctv를 설치한 뒤로, 신경을 곤두 세울 수밖에 없던 날들이 떠올랐다.
억울함과 분함의 감정은 분노로 나왔고,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나는 언론보도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이런 식의 행정 절차는 불합리하기에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니, 그들의 돌아오는 태도는 그저 한 여자의 지독하게 광기를 부리며 얘기한다는 식의, 피식 웃고 고개만 돌리고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누가 그 고지서를 떼어갔는지, 왜 현장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전선을 아무도 모르게 끊었는지를.
왜 그 단전 사실을 누구에게도 명확히 알리지 않았는지를.
상가 관리소장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나
"이런 건 세대별로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 전기 쪽은 전 모르죠... 몰라요..."
한전은 상가 관리소장이 확인하고 얘기하는 부분이라 모를 일이 없다고 확신을 가지며 이야기했다.
그럼 저희 아파트 상가 관리소장님과 통화를 해달라고 하니,
"제가요? 제가 왜 통화를 해야 하죠. 저희가 왔다고 먼저 상황 설명하고 전화를 주셔야죠."
"네? 지금 제가 어떤 상황을 설명해야 할까요. 오히려 더 잘 아시는 분인데 왜 전화 통화를 안 하겠다고 그러십니까."
"먼저 저희가 누구라고 소개를 하신 뒤에 전화를 바꿔주셔야죠."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꼬리물기식으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한전 직원 한 사람은, 부하 직원에게 자르라며 EPS를 열고 뜯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의 고함소리와 고성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결국 남편까지 내려와서 얘기하겠다고 하니 나와 대화를 했던 직원은 계속
"제가요? 제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죠? 어머. 저 무서워서... 더 이상 대화 못하겠네요." 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부동산에 전화하니 이 사실을 전혀 인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임차와 임대 간의 문제로 점차 확산되고 있었다.
한전은 계약했을 때 왜 잘 알아보지 그랬냐고, 알아보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이라 그저 주장할 뿐이었다.
책임은 끝내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으며 단지 피해자에게만 남겨졌다.
아버지는 놀라셨고, 어머니는 한전에 강력하게 민원을 하며 전화로 여기저기 알아보시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이쯤에서 그만하자. 여기서 그냥 묻자"라고 얘기하셨다.
그런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민원을 넣고, 임대인이 다급하게 밀린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확인을 받은 뒤,
다시 전선을 복구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제야 다시 연결해 주었으며 불이 들어왔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묻고 싶다.
전기요금을 고지 없이 미납 상태로 두고, 사람이 있는 걸 보면서도 계획적으로 아무 말 없이 전선을 자르고,
그 후에야 도둑이라고 몰아가는, 이 구조는 과연 정당한가 것인가.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고 전가하기만 하는, 이 사회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은 약한 이들이 도둑이 되었다.
우리가 창작하고자 하는 이 공간에서, 다양한 구상을 하며 떠올렸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듯했다.
결국 정작 뺏긴 피해자가, 도둑이 된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꿈꾸며 열었던, 이 작은 교습소는 우리 가족에게 새롭게 시작한 삶의 터전이다.
아무런 경고 없이 그들이 판단하는 '죄의 공간'으로 바뀌는 데는 단, 3초뿐이었다.
나는 그래서 오늘 다급하게 기록해 본다.
나, 우리 말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혹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기를.
그리고 침묵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는 소중하게 지킬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