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과 바다

바다와 우리 사이

by 소극적인숙


돌아오지는 않는 답장에 기다린 지도 몇 달이 흘렀다. 윤찬은 여전히 수연의 안부를 알고 싶었다. 장례를 치른 뒤,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면, 그 길을 따라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그래서 계속 마음이 쓰였다. 혹시라도 수연이 잘못된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밥 한 끼라도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남는 시간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따뜻한 봄이 오고 난 자리에. 여름이 왔다. 습기와 뜨거운 공기가 채우는 계절이었다.




한 때 그들의 여름은 시원하고 달콤했다.

또래 20대에 불타오르는 감정보다는 차분한 배려와 응원이 있었다. 그리고 서로가 존중해 주었다.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윤찬은 늘 수연을 그냥 따라다녔다.


무작정 차를 끌고 함께 동행을 하며 그녀의 발이 닿는 곳은 어디든, 그 어떤 말과 보탬 없이 수연이 가는 곳을 따라갔다.


어떤 날, 바다를 보고 싶다는 수연의 한 마디에 차에 무작정 태웠다. 수연은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도 덤덤하게 넘겼다.


"그냥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왜 따라왔어."


윤찬은 그녀의 조용한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윤찬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걱정되어서 그래... 그리고 나도 바다 보고 싶었어. 같이 보자..."


"근데 윤찬아, 되돌아갈 때는? 난 숙소를 예약해 놨는데... 너는?"

둘 사이의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서로 시선을 피하며 수연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당장 이곳에서 숙박을 할만한 곳이 없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이대로 되돌아가기엔 늦은 밤이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마... 괜찮아. 너 들어가는 거 보고 돌아갈게. 아니면..."


"아니면?"


"혹시 네 방에 소파 있어? 아님, 나 바닥에서 자도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불편하잖아."


"진짜로 괜찮아. 근데 너 옷은 있어?"


"난 그냥 혼자 올 생각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준비 안 했지. 1박 2일로 머물다가 돌아가려고 했어."


수연은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다.

그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윤찬은 장거리 연애 중이던 여자친구와 정리 중이라 했지만, 애매한 관계가 그녀에겐 부담스러웠다.


왠지 신경이 쓰이는 이 감정...

아무리 오래도록 본 사이지만 친구라 하기엔 가까웠고, 연인이라 하기엔 서로가 선을 넘지 않았다.

우정도 아닌 사랑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에 대해 선을 명확히 긋고 싶었다.


"너 설마 내 방에서 같이 자겠다는 건 아니지?"


"음... 맞아. 네가 생각한 거 맞아. 근데 오해하지 마. 절대 건드리지 않을 거니까."

윤찬은 아무렇지도 않게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수연은 그런 윤찬이 조금 미웠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건가? 그 여자친구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그렇게 끌림도 없는 건가. 조금 너무하네...'



수연은 해맑게 웃는 윤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심장이 두근대는 걸 느꼈다.


앞머리가 살짝 내려온 반듯한 이마 사이로 짙은 눈썹이 보였다. 그 눈썹결을 따라 그의 눈꼬리와 하얀 얼굴이 더 빛이 났다. 콧날 끝으로 내려오는 입술은 도톰하고 붉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심장이 뛰는 거지?'


그런 수연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몰라주는 윤찬은 휴대폰으로 주변 위치를 검색하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수연아, 여기 주변에 전통시장이 있어. 주변에서 먹을 것 좀 사고 너 갈아입을 옷도 사자."


당황한 수연은 무슨 갈아입을 옷이냐며 윤찬을 때리며 타박했다.

그런 윤찬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너 그러면 아무것도 안 입고 잘 거야? 내가 있는데? 잘 때 입을 옷이라도 다른 거 입고 자야지."


"너 뭐야... 이상해... 나한테 무슨 감정 있니? 수상한데..."


"별 생각을 다한다. 저쪽에 브랜드 매장들 있는 곳에 가보자. 아! 저기 전통 시장이 보이는 곳으로 가보자!"

윤찬은 수연의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강원도 속초 전통시장은 북적이고 활기가 돌았다. 그곳에서 수연이 좋아하는 떡을 시식하며 포장을 하였고, 맛집이라는 튀김 집에서 줄을 서며 기다리는 시간은 꽤 설레었다.


윤찬은 마치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수연과 동행하는 이 기분이 낯설지만 안정감이 들었고, 마음은 간질거렸다. 수연과 함께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 분위기에 취해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흰 피부와 어울리는 옷들을 추천해 줬다. 그리고 윤찬도 자기에게 어울릴만한 옷들을 고르며 신이 난 듯 보였다. 수연은 윤찬이 왜 저럴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묘하게 느껴졌다.


마치 연인 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수연은 윤찬의 정리되지 않은 여자친구가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각자 쇼핑을 하고 윤찬이 사준 티셔츠와 반바지를 보는데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낮에 봤던 푸른 동해 바다의 청량함과 파도의 소리는 자연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처럼 음을 타는 거 같았다. 새하얀 거품, 시원한 냄새, 더운 날의 기온, 까슬거린 모래알 사이로 꼼지락거렸던 발가락까지...


하나둘씩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윤찬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수연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시선을 따라 내려갔다. 한 여름밤은 달콤하고 꿀 같았고 그리고 몹시 더웠다. 바다와 함께 수연을 마음속에 천천히 담고, 윤찬이 수연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돌아가자, 수연아. 거기 리조트 쪽으로 네가 데려가줘."


"어...? 지금 바로 들어가게...? 조금 더 있다가... 좀 더 바다 보다가 들어가자."


"시간이 늦었는걸, 밤인데 날도 추워지고 밤공기가 차."


"알겠어. 짐을 좀 챙겨서 가자, 너 차 안에..."


"내 차 안에 짐이 있을게 뭐가 있어. 그냥 지금 바로 가면 되는데."


"그렇구나..."

수연은 계속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윤찬은 답답했는지 먼저 리조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 수연도 함께 뒤따라갔다.


"왜 자꾸 뒤 따라와? 옆에서 걷지. 네가 안내해야 알지."


"응... 알겠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난 뒤 잠시 이 둘의 대화가 멈췄다.

로비층까지 내려오는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느껴졌는지.

층수가 내려갈수록 심장은 더 두근거렸다.


입술은 바짝 말랐고, 숨은 천천히 내쉬며 서로가 눈치를 보는 거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다음에 어떤 이야기와 행동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는 채로.

그리고 윤찬이 먼저 말을 꺼냈다.


"수연아... 몇 층이야?"


수연은 조심스럽게 1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몇 초가 어찌 흘렀는지 모르도록.


"이쪽이야... 오른쪽으로 돌면 내가 예약한 방 호수 쪽이야."


윤찬은 수연을 마주 바라보며 눈웃음을 띄었고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를 보여줬다.


"그렇구나, 그럼 네가 안내해 줄래?"

문 앞에 닿은 그 여름, 둘만의 밤이 시작되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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