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다섯 살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집에 큰 불이 났었다.
그날은 방에서 혼자 일어나 TV를 틀고
좋아하는 만화가 나오는 채널을 돌려보며
엄마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엄마는 돌 지난 어린 동생을 품고 함께 자느라
아침잠을 이기며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결국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나였다.
집에 불이 났던 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고 조용히 소리를 줄이고 보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리고 항상 궁금했던 그 물건을 바라보며
'한번 해볼까?' 했던 고민 뒤에 이어진 행동은 지금으로선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참 대담했다.
거실에는 작은 협탁이 있는데 그 위에 성냥개비통, 담뱃갑과 라이터가 반짝이며 한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종이개비를 들며 냄새를 맡아본다.
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종이를 찢고 갈색의 마른 잎가루들을 비벼본다.
엄마가 자주 태우던 뜸 냄새와 비슷했다.
다섯 살 아이에게 집중력은 30분 채 안된다.
재미있는 만화여도 한 곳을 계속 바라보며 집중하기 쉽지 않다. 담배개비도 만화처럼 시시해졌다.
다시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협탁 위에 놓인 성냥개비와 라이터, 담배를 가지고 온다. 그녀의 아빠가 엄지손가락을 돌리며 켰던 것처럼 라이터를 켜본다. 하지만 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비벼봐도 쉽게 켜지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라이터 구멍 끝에서 철컥 불이 타오른다.
아빠가 한 행동을 기억하며 한 손으로 담배를 잡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에 껴서 붙여본다.
탄다. 계속 탄다.
‘어? 왜 빨간 불이 둥글게 타고 내려오는 거지?‘
'멈춰야 하는데 타는 건가?'
끄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는 재빨리 소파 쿠션 사이로 던졌다. 그리고 쿠션을 다시 들어 타다 만 담배를 바라본다. 꺼진다. 불은 언젠가 꺼질 수 있다.
아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번에는 성냥개비를 여러 개 꺼낸다.
통 주변을 빠르게 탁! 탁! 부딪히며 긁어본다.
불이 한 번에 탁. 붙었다.
재빠르게 타고 내려오는 작은 나무개비가 뜨거워진다.
‘앗! 아앗. 뜨거워!’
빠르게 소파 쿠션 사이를 들어 닫고 털썩 그 위에 앉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확인을 해본다. 불이 꺼졌다.
시간이 흐르고 불장난으로 시작된 놀이가 끝났다.
다시 졸린 미연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잠이 든다.
쿵쿵쿵.
쿵쿵 쿵쿵. 쿵. 쿵! 쿵!! 쿵쿵쿵!!
“문 열어! 빨리!!!. 미연아! 빨리!”
“엄마야! 지금 빨리 문 안 열어? 빨리! 문 안 열거야?”
다급한 소리가 문 건너 들렸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 겨우 뜬 눈으로 문을 바라본다.
그리고 하다가 만 놀이가 생각이 났다.
‘엄마한테 혼날 텐데…. 어쩌지.’
작고 소심한 아이는 꽉 잠긴 문을 열지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미연아… 제발 빨리 문 열란!!! 말이야!!! 불났어!”
잠긴 문을 뒤로 겁먹은 그녀는 얼른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돌돌 말아 감싼다.
그녀의 기억은 큰 불이 났던 그날 이후로 사라졌다.
조금은 볼 줄 아는 그녀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불이 얼마나 났는지 집 안은 온통 검은 잿더미로 까맣게 물들었다.
구경 나온 아파트 동네 주민들 그리고 놀란 경비원 아저씨가 사정을 묻는다.
바쁘게 움직이는 소방관들과 큰 수건을 온몸에 둘러싼 그녀의 엄마가 보인다.
그리고 동생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동생은? 내 동생 어디 갔지?’
눈으로 동생을 찾는 사이 일하러 나갔다가 들어온 그녀의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새하얗게 질린 채 집 안을 둘러보는 그는 경찰관과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연이 또한 겁에 질린 채 엄마를 애타게 바라보지만 누구 하나 그녀를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외면받으며 그날의 기억도 외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