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우연히 SNS 알고리즘이 조금씩 장악했던 짧은 영상들.
그리고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남편이 시청한 방송후기는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다시 보기를 했다.
하이라이트라고 여겨질 화를 조금씩 뽑아서 봤는데 꽤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나의 첫 에세이를 브런치에서 시작해서 쓴 내용들이 겹쳤을까.
다소 무거운 내용도 있었고 살면서 내가 겪은 일들도 썼기에 약간의 동병상련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10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과 함께 봤다.
그게 어제의 일이었다.
지금도 그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을 떠나서 순간적인 감정이 올라오니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옆에서 코를 팽팽 풀며 훌쩍이다가 나중에는 꺽꺽 거리며 울었다.
결국 그 끝에 나는 코피를 흘렸다.
코를 하도 풀어서 점막이 헐고 피가 났다.
망자를 그리워하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천도하는 행위.
그렇게 무당은 굿을 하며 남아있는 가족과 대화를 하며 한을 풀어줬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 자기의 몫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명줄은 타고나지만 무당을 통해 조상신을 기리고 기도를 올린다.
좀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프로그램명은 "운명전쟁 49".
49인 안에는 무당을 포함해 타로마스터, 역술가, 관상가 등 섭외하여 서로 대결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최후를 가려 승자를 축하해 준다.
우승상금이 걸려있기 때문에 그만큼 혼신을 다해 에너지를 쏟는다.
출연자의 과거를 맞추고 미래를 내다 봐주는 걸 볼 때면 소름이 쫙쫙 돋는다.
자기가 모시는 신이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거나 그림처럼 보이는 '화경'으로 점사를 본다.
나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운명'.
그걸 단정 짓자니 거칠다.
희망이 없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운명의 틀을 깨고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의심스럽다.
순간의 선택이 결과를 낳고, 우리는 그 결과에 웃기도 울기도 하는데 이게 다 '운'이라면.
조금 비참한 생각이 든다.
누구는 노력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거기에 운이 작용했다고 치면.
누구는 노력을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그 운이 비껴나갔다고 치면.
그 운을 왜 공평히 주지 않는 것일까.
열여섯 살.
아직 꽃도 피지 못한 나이였다.
병이 있었지만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던 아이.
그런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그렇게 떠났다.
망자의 말을 전하는 무당과 그 말을 듣는 아버지.
그리고 좋은 곳으로 천도하기 위해 놓아주는 마지막 대화.
나는 장면을 보며 오래 울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서로를 붙잡고 사는 것 같다.
영원할 것 같던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은 떠난다.
그런데 나는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방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만,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채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제 본 마지막 화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