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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스네일 Feb 02. 2019

불안한 행복보단 안전한 불행이 낫겠어

나는 불행한 운명인 걸까



우연적 불행 앞에 ‘운명’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순간 모든 것이 쉬워졌다. 팔자 탓 뒤로 숨고 나면 더 이상 행복을 꿈꿀 필요도, 당면한 처지를 개선하려 노력할 이유도 없어지니 참 편리했다. 비관론의 달콤함을 알게 된 나는 그간 겪어 낸 불행한 사건들을 정성껏 모아 한데 꿰어 그럴듯한 신조를 만들어 냈다.


‘그거 봐. 내가 이번에도 이럴 줄 알았지. 역시 난 이렇게 살 운명인가 봐.’


행복이 남의 옷처럼 낯설게 느껴져도 모르는 체 내버려 두었고, 기쁨을 누려야 할 순간에도 지금이 언제 다시 사라질지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불행에 있어서만큼은 촉각이 한껏 민감해져 있으니 실제로 안 좋은 일이 닥치기라도 하면 더 강한 감정 반응과 함께 뇌리에 깊게 새겨졌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진 감정적 기억들이 오랜 시간 굳어지면 불행에 익숙해지는 잘못된 사고회로가 고착화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은 쉽게 믿음이 되고, 믿음은 곧 사실이 되기도 한다.


신의 모습을 평범한 이웃집 가장에 비유해 인간사를 위트 있게 풀어낸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는 머피의 법칙에 대한 재밌는 상상이 등장한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몇 가지 ‘보편 짜증 유발의 법칙’을 같이 만들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125조 : 빵은 잼을 바른 면이 꼭 바닥에 떨어진다. 혹은 잼을 바르고 보면 꼭 빵 겉면이다.

2129조 : 욕조에 들어가기만 하면 꼭 전화벨이 울린다.

2218조 : 마트에서 계산할 땐 항상 옆줄이 더 빠르다.

2231조 : 짜증나는 상황은 꼭 한꺼번에 닥친다.


우리가 ‘선택’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비관주의는 대부분 사실도 아닐뿐더러 자신의 의지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변화에 따를 좌절과 상처가 두려워 마음이 약해질 때 피어나는 두려움을 먹고 비관주의는 자라난다. 그러나 간혹 그 마음이 내게 현상 유지를 선택하게 만들더라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시 힘을 내는 데는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넘어진 아이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웃어 주면 아이도 따라 웃는다. 그렇듯 우리가 불행한 일에 강하게 반응할수록 내 안에서 관념화되기 쉬워진다. 그 함정에 빠져 가짜 사고가 나를 휘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보드라운 행운의 순간들을 더 충분히 느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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