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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스네일 Mar 02. 2019

집순력 만렙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해



한때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즈음에는 혼자 카페에 가는 것은 물론이요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일마저 혼자 했다. 그런 생활 중에 유일하게 불편했던 건 불판에 구워 먹는 류의 ‘2 인 이상 주문 가능’ 메뉴를 파는 음식점에 혼자 갈 용기까지는 안 난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기의 내게 대인관계 욕구가 없었던 것은 또 아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SNS  속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사진들을 뒤적거리며 둥그렇게 움츠러들곤 했다. 나는 인간 세상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사람을 만나 이것저것 하다 보면 즐거움 대비 정신적인 소모가 더 크게 느껴졌다. 정말 편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있을 때조차도 그 자리를 즐기기보단 뭔가 애써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역시 혼자가 편하지’ 하며 누가 부르기 전엔 잘 나가지도 않고,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는 일도 없이 대부분의 일들을 혼자 했다. 심지어 통화마저 잘 하지 않고 문자나 메신저를 주로 이용하다 보니 어느 날 밤엔 문득 ‘아, 오늘 사람하고 말을 한마디도 안 했구나’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안쓰러운 장면이 연상될 만도 한데 내겐 그런 생활이 별스러울 것 없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집순이, 집돌이들은 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심리적 에너지가 충전되고 반대로 바깥순이, 바깥돌이들은 외부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개인의 성향에 따라 휴식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다르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 정서적으로 소진돼 있는 상태라면 친구와의 약속도 휴식이 아닌 하나의 ‘처리해야 할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노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타인 앞에서 사회화된 모드의 나를 사용하는 데에 적잖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주말인데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집순이, 집돌이들은 무척 당황스럽다. 어리석은 중생이여, 집에만 있으면서도 하루를 얼마나 다채롭고 흥겹게 보낼 수 있는지 진정 모른단 말인가!


서로 다른 성향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설령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 내 마음을 잘 보살피려면 내가 가장 편안한 방식대로 에너지를 충전하면 된다.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지낼 때 나 자신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잘 살필 수 있다. 그들에게 내 상황과 마음을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하기만 한다면, 진짜 내 사람들은 그 시기를 충분히 기다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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