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민 그리고 부사수의 대답
우리 팀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쉽고 탄탄한 논리로 상대를 잘 설득할 줄 아는 사람, 손이 빨라서 보고 문서를 뚝딱 만드는 사람,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본인이 먼저 나서 챙기는 사람...내가 생각하는 우리 팀 사람들은 저마다의 강점이 뚜렷한데,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다 하는데. 그럼 나는 뭘 잘하지?
혼자서는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동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 제가 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내 고민을 듣더니 다들 의아해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요. 제가 1년 동안 본 차장님은 기획도 제작도 잘하는 사람이에요. 보면서 많이 배워요. 그래서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고요."
"아... 그런가요?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대답했지만 갈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 나를 내 부사수는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 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일이 잘 안 됐다. 호기롭게 시작한 새해 첫 주인데 실수도 많이 하고 손도 머리도 다 굳어버린 것만 같아 좀 우울했다. '나 왜 이걸 놓쳤지?' '이거 하나 정리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이어지는 하루하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투두 리스트를 지웠다는 후련함에 물들어 있던 금요일 저녁, 같이 고생한 부사수와 회의실에 단둘이 남아 있을 때였다.
"차장님, 차장님이 최근에 본인이 뭘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날 바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얘기를 못했어요. 차장님은 뭐랄까, 저희 팀의 중추 역할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너무 놀랬다.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내 하소연 같은 고민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며 먼저 말을 꺼내는 용기도 다 놀라웠다. 부사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희 팀은요. 차장님을 거쳐야지만 일이 돼요. 예를 들면... 회의 때 저희 각자가 의견을 내놓잖아요? 차장님은 그 의견들을 정리해서 해봄직한 걸 만들어 내세요. 본인의 의견만을 정답이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각자의 생각을 합쳐 더 좋은 걸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요. 그래서 생각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한참을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나와 일하며 좋은 점들을 이야기했다. 일도 마음도 정말 힘든 일주일이었는데 내가 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다시금 힘이 났다. 그리고 배울 점이 계속 늘어나는 사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일하면서 생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그 고민을 잘 들어주고 덜어주는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런 동료들이 곁에 있는 덕분에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나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더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 말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주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