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을 듬뿍 담아
올해 1월 말 회사에서 인센을 받았다. 작년 한 해 죽어라 일한 보상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나. 우리 팀은 회사에서 돈 제일 많이 버는 팀인데. 회사 실적이 작년만 못했다는 이유로, 본부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이유로 이것밖에 못 받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래도 보상은 보상이다. 작년 한 해 고생한 나를 위해 인센 중 딱 100만 원만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매 달 나가는 대출 이자를 포함한 고정 지출비, 생활비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써보기로 했다. 원래 나는 나를 위한 소비를 잘 못하는 사람인데, 최근 들어 내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이 스스로를 어떤 테두리 안에 옭아매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난 돈을 못 쓰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안 쓰는 사람이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이 100만 원으로는 내 취향을 듬뿍 담은 소비를 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소비 말이다. 옷 욕심이 많은 것 치고는 옷이 별로 없는지라, 맨날 눈팅만 하고 하트만 누르고 사지 않았던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들을 하나씩 사들였다.
내가 이번에 고른 브랜드는 시엔느, 파사드 패턴, 던스트, 포터리 우먼이다. 심플& 베이직의 정수를 보여주는, 나의 취향에 딱 맞는 브랜드들이다. 포터리 우먼은 이번에 알게 된 브랜드인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포터리 우먼 룩북 그대로 내 옷장으로 옮겨 오고 싶을 만큼 푹 빠져버린 브랜드를 알게 된 것도 이번 소비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다시 봐도 너무 잘 샀다. '고민해서 산 보람이 있네, 맞아 나 이런 스타일 좋아하지, 이런 스타일이 나라는 사람을 잘 보여주지' 싶다. 아직 좀 남은 돈으로 뭘 사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단 한 푼도 남김없이 끝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써야지. 애정이 깃든 소비로 내 취향을 계속 들여다보고 나라는 사람을 세심히 살펴야지, 라고 다짐해본다. 돈 쓰는 거 즐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