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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과 성격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감도 높은 취향의 소유자가 돈을 잘 못 쓰는 것에 대하여

by 춤추는 목각인형

난 '오로지 나를 위한 소비'를 잘 못한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성격이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비에는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엄마 아빠께 드리는 용돈, 친구들 선물,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그냥 건네는 소소한 마음의 표현까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할 때마다 행복하다.


이상하게 유독 나를 위해 돈을 쓸 때만 사람이 참 궁색해진다. 얼마나 못 쓰냐면, 5만 원 이상만 넘어가도 고민을 한다. 정말 맘에 들어도 여러 번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러다 결국 못 살 때가 많다. 장담하건대 거의 모든 지름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한 번에 & 하나의 아이템에 5만 원 이상 썼을 때 '아 나 오늘 과소비했네. 한동안은 좀 아껴 써야지'라고 다짐한다.


최근에 구매한 'dol(돌)' 목걸이. 5만 원. 예상치 못한 수입이 생겨 소소하게나마 질러보았다. (출처: @dol_official)


근데 또 취향과 안목은 높은 편이다.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만 센스 있다는 칭찬도, 옷 잘 입는다는 소리도 종종 듣고, 내 아이템에 대한 주변 반응이 꽤 좋다. 나의 취향과 안목에 걸맞은 소비에 좀 더 적극적이라면 지금의 내 공간과 내 모습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를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한테 돈을 잘 못 쓰는 나 자신이 때때로 스트레스다. 늘어난 대출 이자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어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를 위해 시원하고 기분 좋게 카드를 긁을 법도 한데, 매 번 주저하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


이런 내가 나와 취향이 신기하리만큼 똑같은 동료를 매일 볼 때, 근데 그 사람은 돈을 잘 쓰는 사람일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기분 나쁨이나 불쾌함은 아닌데 묘하게 거슬린달까? 상대가 내 앞에서 자신의 소비를 자랑할 때 나는 '예쁘다 갖고 싶다 부럽다' 한 껏 칭찬한다. 자신의 소비에 더욱 확신이 생길만한 그런 리액션 말이다. 진심이 아예 없진 않지만 좀 헛헛한 것도 사실이다. 나도 갖고 싶은 것들인데 심지어 내 장바구니에도 담겨 있는 것들인데, 나는 성격 상 절대 지르지 못하는 아이템이라 괜스레 멜랑꼴리 해진다.


Snapinsta.app_273980076_1107216390069133_5578541242104956645_n_1080.jpg 언젠가 그녀가 내 앞에서 자랑했던 르메르 파우치. 근데 45만원? 난 평생 살 일이 없을 듯하다...


그러다 어느 날, '취향을 보여주는 방법이 꼭 소비일 필요가 있나? 소비에는 돈과 성격의 한계가 있지만 글로는 아무 제약 없이, 내가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내 취향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걸?' 싶었다. 브런치에 '취향 일지' 매거진 연재를 시작하기로 한 이유다. 내 취향을 담은 제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시간을 하나씩 기록하며 내 취향을 온전히 또렷하게 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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